누군가 당신의 메일로 매일 한 편의 글을 보내준다면 어떨까

일간 이슬아 수필집
글 입력 2019.06.22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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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간'과 '구독' 시스템



‘일간 이슬아’는 하루에 한 편 씩 이슬아가 쓴 글을 자신의 구독자에게 메일로 보내는 프로젝트다.


‘구독’이라는 독특한 시스템으로 진행되는데, 월 1만원의 구독료를 보내면 매일 하루 1편씩 글이 구독자의 메일함으로 도착한다. 1편 당 500원인 셈이다. 이 책은 이슬아가 봄부터 가을까지 6개월 간 쓴 약 120개의 글을 엮은 책이다. 이슬아는 말한다. “아무도 나에게 글을 쓰라고 청탁하지 않았지만 쓴다. 날마다 뭐라도 써서 보낸다”




2. 이슬아는 누구인가



“이 사람도 이렇구나, 와 이런 사람도 있구나” 에세이는 항상 그런 맛에 읽는다. 내 삶이 너무 지겹고 평범하게 느껴져서 혹은 잠도 오지 않는 깊은 밤, 나를 직접적으로 들여다보기엔 너무 괴로워서, 남의 글을 빌려 나와 비슷한 점을 찾고 다른 점을 찾으면서 이상하게도 위로를 얻는다. 이슬아는 나와 달라도 너무 달라서 위로가 된 경우에 속했다.


답십리의 자동차 부속품 상가에서 태어나 주변엔 온통 상인들 뿐이었던 그의 어린시절, 그는 베니스의 상인들을 읽고 셰익스피어처럼 이야기를 파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애인과 마음껏 사랑할 공간을 얻기 위해, 그 월세를 마련하기 위해 22살에 누드모델을 하고 글을 쓰는 사람. 내가 읽은 그는 사랑을 위해 대가를 지불 할 줄 아는 사람이다. 부모와 '섹스'에 대해서 그토록 거리낌없이 이야기하는 사람, 최소한 자신에 대해선 솔직한 사람.


어떤 일에도 크게 반응하지 않고 대체로 무던하게 반응하는 것이 처세술이라고 배워온 나와 달리, 그는 결핍보다 과잉에 가까운 환경에서 자라 자신의 세상에 대해 잘 반응하고 한 껏 표현하는 사람이다. 한 입 베어물면 시큼하고도 달짝지근한 것들이 잔뜩 나올 것 같은, 농익은 자두 같은 글을 쓰는 사람이다. 그는 내게 자꾸 다음 장을 넘기도록 했다.




3. 그가 사람을 보는 방식



- 부모를 이름으로 부르는 사람


그가 사는 세상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다가온다. 그 이유는 그가 아주 성실한 관찰자이기 때문이다. 이슬아는 곁에 있는 사람에 관해 자신의 애정을 담으면서도 최대한 객관적으로 말해보려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부모에 대해 엄마, 아빠라는 역할의 평가 대신 웅이, 복희라는 이름으로 사람 자체에 대해 애정을 담아 쓴다.



내 아빠의 이름은 상웅이다. 서로 상자와 수컷웅자를 쓴다. 일곱 살 무렵 웅이는 센베이 과자를 무척 좋아했다. 시장에서 얇게 구워서 파는 갈색 과자 말이다. 할아버지는 가게에서 사먹고 오라며 동전을 조금 쥐여주었고 웅이는 집을 나섰다. 그런데 어쩐지 해가 지도록 웅이가 돌아오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걱정이 되어 밖에 나가보았다. 깜깜한 길을 한참 걷자 저 멀리 골목길 어귀 전봇대 밑에 어린 웅이가 서 있었다. 그는 밝은 조명 밑에서 뭔가를 유심히 읽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다가가서 자세히보니 그것은 센베이 과자가 담겨 있던 종이봉투였다. 책장이나 폐지를 한 장씩 떼어서 풀로 붙여 봉투로 쓰던 시절의 이야기다. 봉투를 붙이는 일을 부업으로 삼아 돈을 버는 사람들도 있었다. 웅이는 그 봉투에 적힌 재미난 이야기들을 읽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던 것이다. ・・・ 비록 안 웃기기는 해도 그를 사랑할 이유는 아주 많다. 나랑 맞담배를 피우니까. 사시사철 내 노브라를 지지하니까. 무엇보다도 매일 부지런히 삶을 맞이하는 사람이니까. 그는 휴일에도 일찌감치 일어나 담배를 피우며 똥을 싸고 샤워를 한다. 그러고는 검고 숱 많은 머리를 깔끔히 넘긴 뒤 한 시간 넘게 베이스 기타 연습을 한다. 아마추어 직장인 밴드에서 베이스를 맡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뭔가를 꾸준히 할 줄 아는 사람이다.


86쪽, ‘웅이'



복희는 1976년 가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났다. 어린 복희의 얼굴은 빵빵하게 익은 홍시 같았다. 잣골에는 잣나무뿐만 아니라 감나무도 많아서 복희는 많은 단감과 홍시를 먹고 자랐다. 그녀는 초등학교때부터 본격적으로 부엌일을 했다. 부뚜막 아궁이에 나무를 때서 보리밥을 하고 그 불이 꺼지면 숯 위 남은 열기에 뚝배기를 올려 찌개를 끓였다. 복희는 날마다 밥을 지어서 동생 세 명의 입에 풀칠을 해주었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복희는 많은 이들의 끼니를 지으며 지낸다. 복희가 잘 하는 것은 아주 많은데, 음식 하는 일에서는 특히 찬란하고 탁월하다. 열 아홉살 때 복희는 국어교사가 되고 싶었고 관련학과를 갈 수 있을 만큼 성적이 좋았다. 대학 합격통지서가 복희네 집에 도착했다. 하지만 등록금을 낼 돈이 복희네 집엔 한 푼도 없었다. 어떤 행운도 일어나지 않은 채로 등록금 납부 기한이 지나갔고 복희는 대학생이 되지 못했다. 그날 복희는 소주 세병을 들고 다락방에 올라가 문을 걸어 잠근 뒤 3일간 나오지 않았다. 3일 뒤 다락에서 내려온 그녀는 비빔밥을 양푼 한가득 비벼 먹고 구직을 시작했다. 문학을 전공했다면 복희는 과연 어떤 글을 썼을까. 그게 너무도 궁금해질 때가 있다.


93쪽, ‘복희’



- 애정의 이유를 애정을 담아 설명하는 사람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해, 사랑하는 것들에 대해 묘사하는 것들이 참 좋다. 자신이 왜 그것을 사랑하는지 알고 있고, 그 애정의 이유를 애정을 담아 설명한다.



누군가나 어떤 것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서 물으면, 누구를 사랑할 때 나는 첫째로 걜 보는 게 좋아서 황홀했다. 걔가 먹고 자고 말하고 듣고 쓰고 읽고 그리고 일하고 옷을 갈아입고 샤워하고 키스하고 자고 잠꼬대를 하고 다시 깨어나서 살아가는 모습. 잠시 내가 나라는 걸 까먹을 정도로 그 모습이 멋지고 귀엽고 한심하고 좋았다. 그다음엔 걔나 나를 본다는 사실이 황홀했다. 걔가 내 앞에 앉아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를 해주고, 나랑 눈을 마주치며 차 마시는 걸 바라보는 것. 혹은 내 눈을 마주치기만 하고 아무 말도 안 하는 걸 바라보는 것. 그래서 나를 더욱 못 참게 하는 것. 걔 눈에 내가 어떻게 비칠지 상상할 때면 너무 기대되고 너무 불안했다. 예쁠까 봐. 아님 사실은 별로일까 봐. 좋은 섹스란 나르시즘의 극치일지도 몰랐다. 상대 앞에서 내가 야할 걸 확신하는 순간에만 가능했다. 네가 그렇게 봐주는 동안엔 내가 아는 나보다 근사해질 수 있다. 그 다음으론 뭐가 황홀했냐면, 걔가 하는 말을 들으면서 그의 기분과 그의 사고의 지도를 따라가는 게 황홀했다. 사랑은 어쩌면 그 사람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려고 애쓰는 것, 걔가 되어 살아보는 상상을 끝없이 해보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가 살아온 우주를 조금 공유하는 동안 나는 겨우 넓어지고 깊어졌다.


178쪽, 편지의 주어




 

4. 박리다매 아닌 다다익선



그의 할아버지는 상인 답게 값싸고 자잘한 걸 여러 개 팔 생각하지 말고 비싸고 큼지막한 것을 가끔 파는 고가 정책을 지향하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박리다매가 좋다고 했다. 질에 자신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한 편에 오백 원씩 받으며 매일 여러 명에게 글을 보내고 양으로 승부를 보기 위해 매일 쓴다고 했다.


내가 읽은 그의 글은 박리다매보다는 다다익선에 가까웠다. 120개의 글을 다 읽고도 그가 너무 궁금해서 1000개에 달하는 그의 인스타그램 게시글을 연어 하게 만드는 그런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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