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추남, 미녀. 반대편에서 바라본 우리의 공통점.

글 입력 2019.06.21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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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열린 <추남, 미녀>는 동명의 아멜리 노통브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연극이다. 연극이 소설으로 만들어질 때, 소설의 서사성을 살리기 위해 연극은 배우들의 독백을 바탕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추남, 미녀> 역시 배우들의 독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극을 진행했다.


뿐만 아니라, 극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을 두 명의 주연배우가 모두 연기했다. 단 두 명의 주연배우의 대사를 중심으로 극이 진행되기 때문에 조금은 지루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추남, 미녀>는 다양한 요소들을 통해 극의 재미를 높임과 동시에 극의 내용에 대한 직관적인 이해를 이끌어냈다.


우선, 극의 중간 중간 다양한 영상들을 삽입했다. 예를 들어 극의 초반, 데오다가 대기실에 갇혀 빠져나갈 길을 찾는 영상을 CCTV 화면처럼 무대에 띄워 인물의 등장을 보다 드라마틱하게 연출했으며, 데오다와 트레미에르가 자신들의 과거에 대해서 독백을 할 때 배우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영상을 무대에 띄움으로써 관객들에게 인물들의 인터뷰를 보는 듯 한 느낌을 줌과 동시에 배우들의 독백에 대한 집중도를 높여 주었다.


또 인물의 과거를 컴퓨터 폴더에 정리한 듯한 영상의 연출은 보다 직관적으로 그 인물에 대한 이해를 가능하게 해 주었다. 더불어 데오다의 랩, 트레미에르의 독백 도중 내려오는 샹들리에 등의 요소들도 역시 관객들의 웃음과 감탄을 이끌어내는데 충분했으며, 인물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상징적인 요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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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다양한 재미요소들이 효과적으로 그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탄탄한 서사와 플롯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 <추남, 미녀>는 그 서사와 플롯 역시 극의 주제를 잘 전달하는 극이었다고 생각한다.


우선 <추남, 미녀>에서는 못생긴 남자 데오다와 미녀 트레미에르가 극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여기까지는 여느 이야기의 뻔한 주인공들이다. 그러나 데오다는 못생겼음에도 불구하고 똑똑하며 사랑받는 인물이며, 트레미에르는 예쁘고 똑똑하지만 다른 이들에게 미움을 받는 인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이야기는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흥미롭게 흘러간다. 이 연극 플롯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두 인물의 서사가 반대방향으로 진행된다는 것이었다.


미녀 역의 트레미에르는 자신을 안고 있는 할머니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봤던 것처럼, 유년기 때부터 자기 자신이 아니라 타인에게 집중한다. 이 때문에 말을 익히는 게 늦어지고, 자기 자신을 돌보는 데 소홀하다. 아름답지만, 이는 타인에게 일방적으로 보여지는 겉치레일 뿐 스스로에게 적용되는 아름다움은 아닌 것이다. 이 때문일까, 아이들은 트레미에르의 아름다운 얼굴에 사랑을 느끼기보다는 미움을 느끼게 된다. 아이들의 괴롭힘에 시달리면서도 사랑의 열병을 앓게 된 트레미에르는 몸의 불능을 느끼게 된다. 늘 아름다웠던, 즉 외면적으로 완벽한 트레미에르에게 몸이 망가진다는 것은 상상도 못한 충격이었을 것이다.


더불어 그 동안 자신을 사랑해주던 할머니도 세상을 떠난다. 하지만 이 몸의 불능과 할머니의 상실을 이겨냈을 때, 트레미에르는 자기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내면의 아름다움에 눈뜨게 된다. 이와 같은 트레미에르의 서사에서는 스스로 빛을 내는 아름다운 보석이 그녀의 서사를 형상화하는 중요한 상징으로 작용한다.


반면 데오다는 유년시절 타인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집중한다. 이 때문에 데오다는 형용하기 어려운 매력을 가지게 되고, 수많은 이성들에게 구애를 받게 된다. 이 과정에서 데오다는 점점 자기 안으로 침잠해 들어가고, 수많은 이성들과의 교제에도 불구하고 타인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자신의 척추를 고쳐주던 물리치료사에게 사랑을 느끼면서 데오다는 몸의 불능에서 벗어남과 함께 타인을 이해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각 개체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새가 데오다의 서사를 형상화하는 중요한 상징으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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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타인에서부터 스스로의 내면까지, 스스로의 내면세계부터 타인까지, 이해의 폭을 반대로 넓혀온 주인공들은 극의 마지막에 만나 서로에게 사랑을 느끼게 된다. 이 때 이들의 만남은 지금까지의 그들의 삶을 공간적으로 형상화하는 연출을 통해 그려진다. 막의 시작에 데오다는 1층에 갇혀있다가 2층으로 탈출하고, 트레미에르는 2층에 서 있다가 1층으로 내려간다.


이렇게 완전히 다른 지점에서 출발한 그들은, 점점 이동하면서 처음에 서로가 서 있었던 공간에 들어가게 되고, 결국 둘은 같은 지점에서 만난다. 사랑에 빠진 데오다와 트레미에르가, 극이 진행되는 동안 줄곧 벽이었던 무대의 한 면을 무너뜨리고 큰 ‘거울’속으로 들어가는 것도 매우 상징적이다.


이 연극에서는 2개의 거울이 나온다. 하나는 극의 진행중에 나왔던 거울로, 데오다와 트레미에르가 자신들의 외면을 인식하게 되는 유년기 때의 거울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들이 함께 만나 벽을 무너뜨리고 마주하는 거울은 ‘편견’이라는 일종의 벽을 무너뜨리고 마주하는, 자신의 본모습을 인식할 수 있게 해주는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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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추남, 미녀>는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탄탄한 플롯과 스토리라인, 재미를 더해주고 극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게 도와주는 각종 시각적, 청각적 요소들로 알차게 꾸려진 연극이었다. 지금은 막을 내렸지만, 만약 다시 돌아온다면 꼭 주변 친구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극이다.


 

[권묘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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