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참신하다, 그러나... - '춘향전쟁' [공연]

ASMR과 레트로, 판소리의 조합
글 입력 2019.06.21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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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전, 레트로, ASMR, 폴리 아티스트, 판소리. 이 모든 것들이 한 데 묶인 극, 바로 ‘춘향전쟁’이다. 이 많은 요소를 어떻게 녹아낼까 궁금하기도 했고, ‘폴리 아티스트’라는 생경한 직업이 가질 매력도 기대되었다. ASMR과 레트로, SNS상에서 가장 인기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소재까지 더해졌다기에 전통과 현대의 극적인 화합을 기대했다.

물론 무대 위의 ASMR, 정말 참신하고 다채로웠다. 극이 시작할 때부터 무대를 채웠던 작은 음성들은 낯섦과 동시에 익숙했다. 그 소리들이 모두 너무나 평범한 도구에서 흘러나왔기에 이번에는 또 어떤 소리가 나올까 기대되기도 했다. 영화의 음향을 담당하는 폴리아티스트의 일과 매력, 특이하고 참신했다. 한 번도 접해본 적 없었던 직업이어서 더욱 그랬다.



그러나...


하지만 참신함, 거기까지. 독특한 소재로 뽑아낸 서사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아쉬움이 있었다. 동시에 개봉한 ‘춘향전’과 ‘성춘향’, 이 영화들의 전쟁을 ‘음향’으로 전면돌파 한다는 것이 극의 주요 줄거리다. 그래서 극이 진행되는 동안 ‘춘향전’에 사용되는 음향들이 하나둘 탄생하고, 관객들도 음향의 하나가 되어 영화와 극을 완성한다.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줄거리였기에 폴리아티스트와 음향이 극의 중심축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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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레트로’였다. 최근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과 같은 SNS상에서 6~70년대 분위기의 레트로 카페와 식당들이 유행했다. 쨍한 민트색 벽, 서툴게 마감된 모서리, 겪어본 적도 없는 60년대의 향취가 물씬 풍기는 것만 같은 소품들까지. 하지만 평범함을 거부하는 레트로 컨셉을 향한 시선이 꼭 곱지만은 않았다. 너무 작위적인 것이 아니냐는 비판과 위생에 관련된 지적이 바로 그것이다.

‘춘향전쟁’도 이러한 비판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다. 중간 중간 관객들을 60년대로 끌고 가려던 대사들은 오히려 극의 몰입에 걸림돌이 되었다. 아직 영화 동시녹음이 되지 않던 때라 음향을 따로 녹음해야 했던 상황들, 현 시대의 영화와는 사뭇 다른 화질과 분위기, 자잘한 소품에서 나오는 과거의 향기, 이 극의 배경이 60년대라는 점은 꼭 대사가 아니어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왜 굳이 시점을 이리도 강조하는가, 에 관한 의문점은 서사 막바지에서 해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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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주제의식이 없어도 좋았을 것을


앞서 말했듯 이 극의 매력은 폴리아티스트라는 소재에 있다. 그리고 그가 만들어내는 소리에도. 80분 동안 극이 ‘소리’에만 집중했더라도 완성도가 훨씬 높아지지 않았을까 싶다. 굳이 주제를 사회적으로 확장하지 않아도 괜찮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가 이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것도 다 4.19 때문인 건가?’ 식의 대사가 나오지 않았어도 충분히 좋은 극이 되었을 터다.

반공영화와 춘향전, 물론 이 두 부류의 영화가 상징하는 변화, 절대 작지 않다. 그 변화의 무게도 절대 가볍지 않다. 그러나 이 무겁고 거대한 이슈를 영화 음향과 연결하는 과정이 매끄럽지가 못했다. 사람들의 ‘진짜 소리’는 결국 사회적 목소리라는, 자유가 파생한 시민들의 음성이라는 주제의식도 나쁘지 않지만, 서사가 낳은 주제라기보다는 주제가 낳은 서사에 가까웠다는 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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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ASMR과 폴리아티스트로 고조되었던 재미와 흥미가 거대한 주제 앞에서 조금씩 맥을 못 추게 되었다는 점도 아쉽다. 주인공들이 회포를 풀며 영화와 사회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펼치는 장면은 정말 ‘주제를 위한 서사’로 보였다. 주제의식을 포기했더라면 한층 깔끔하고 가벼운 극이 탄생하지 않았을까. 결국 극이 전개되는 동안 시대 배경을 강조했던 이유는 이 주제의식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극이 의미 있는 이유는 참신한 시도 때문이다. 판소리와 레트로, 그리고 ASMR이라는 이질적인 소재를 한 데 묶은 것 자체로 참신했다. 더불어 세대를 아우르는 소재라는 점도 의미가 있다. 정동극장 ing 시리즈에서 거둔 최대의 수확도 이와 같지 않나 생각한다. 뮤지컬 ‘적벽’에서도 보았듯, 판소리라 하여 단순히 어렵고 힘든 ‘과거의’ 장르가 아니고 충분히 새로울 수 있다는 것을 ‘춘향전쟁’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

세대를 아우르고 장르를 넘나드는 시도는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언제까지 ‘나이 꽉 찬 유부녀’ 식의 대사를 듣고 웃어야 할지, 극의 감수성까지 과거로 회귀할 필요는 없었는데, 하는 아쉬움도 남았지만.



시놉시스

1961년, 서울. 통행금지 직전. 내일이면 그 유명한 춘향전쟁! 김지미 대 최은희, 홍감독 대 신감독, 국제극장 대 명보극장!

영화 ‘성춘향’ VS ‘춘향전’을 둘러싼 숙명의 대결이 펼쳐지는 역사적인 순간이 다가오는데! 그런데 이때, 영화상영 준비에 한창이어야 할 신상옥 감독이 한양녹음실의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알고 보니 영화 ‘성춘향’의 폴리아티스트 세형이 원본 필름을 들고 잠적해버린 것이었다. 개봉은 내일, 과연 신감독은 무사히 필름을 극장으로 옮길 수 있을 것인가? 세헝은 도대체 왜 필름을 가지고 잠적한 것일까? 과연 이 소리전쟁의 승리자는 누가 될 것인가?

※ 이 작품은 당시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여 작가의 상상력으로 구성한 픽션드라마입니다.


공연정보

공연일정: 2019. 6. 5 ~ 6. 23

공연시간: 화 - 토 8시, 일 3시 (월 쉼)

공연장소: 정동극장

스태프: 작·작사 경민선, 작곡·음악감독 신창렬, 연출 변정주, 작창 김봉영, 기술연출 김용국, 무대 남경식, 조명 이주원, 음향 조의근, 영상 김일현, 의상 김보영 외

출연: 신감독·소리꾼役  김봉영, 오단해 / 이세형(폴리아티스트)役  오대석, 김대곤

러닝타임: 80분(예정)

관람료: R석 5만원, S석 3만원

주최/제작: (재)정동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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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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