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표현 불가능한 화가, 박서보 [시각예술]

글 입력 2019.06.20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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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에서 이미지는 사라졌다. 더 이상 실제와 똑같이 그렸다는 말은 중대한 칭찬이 아니다. 대신, 작가들은 기존에 그림을 읽어내는 데 쓰였던 관습화된 범례들이 전통적인 위계질서 내에서 생겨났음을 인식하고 그것을 해체하는 데 주력하며 통 알아볼 수 없는 그림을 그려낸다. 미술관을 둘러보면 그림이라고 하기도 뭐한 정체불명의 선과 면들이 즐비하다.

박서보의 미술도 이러한 맥락에서는 매한가지일지도 모른다. 그는 앵포르멜(informal, 비정형)과 실험 미술의 물결이 한 차례 휩쓸어간 한국 화단에 점차 평면적인 회화와 동양적 사고에 대한 관심이 번지면서 태동한 단색화 열풍의 주역이다. 연필 선이 죽죽 그어진 그의 캔버스에는 아무 형상도 보이지 않으며 어떤 물체를 묘사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현대미술의 흐름을 그대로 반영하듯, 재현이 사라졌다.

그러나 그의 세계를 조금 더 온전히 설명하기 위해선 그가 재현을 넘어 표현 자체를 거부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전통이 해체된 곳에 자신을 투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마저 해체한다는 점에서 여타 현대미술 회화와 어딘가 다른 결을 느낀다. 오히려 더욱 진일보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표현 불가능한 화가, 박서보의 전시에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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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 국립현대미술관은 박서보가 실천한 미학적 역할을 이렇게 명명한다. 수행한다는 것은 행실과 학문을 닦는다는 의미이며, 닦는다는 것은 힘써 배운다는 뜻이다. 또한 ‘수행자’의 번역어인 ‘endeavor’는 시도하고 노력한다는 뜻이다. 박서보는 무엇을 힘써 배웠고, 시도했고, 노력했던 것일까.

박서보의 수행이라 하면 대부분 묘법과 같이 반복적인 줄긋기를 통한 자기 수행의 과정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묘법 이전에 구축되었던 그의 미술세계에서도 수행은 치열했다. <원형질> 연작으로 급변하는 세계에 대한 불안의 정서를 검은색의 앵포르멜 추상으로 표현했다면 <유전질> 연작에서는 화려한 오방색으로 앵포르멜과 비정형에 대한 권태를 표현하며 기하학적 추상을 만들어냈다. 자기비판을 성실히 거듭하며 끊임없이 실천적 반성에 임한 것이다. 힘써 배웠고, 시도했고,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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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보, 원형질 No.1-62, 1962, 캔버스
박서보, 유전질 No. 7-69-70 : 1970



한국적인 형상과 비(非)형상, 원형질과 유전질


원형질 연작은 박서보의 초기 미술 세계의 정점이자 한국 추상회화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설명된다. 박서보가 파리에 체류했을 시 제작되었다고 판단되는 원형질 연작은 프랑스 앵포르멜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한편, 당대 한국의 전후 극한의 상황과 정서를 그 어떤 것보다 생동감 있게 표현했다. 절규와 죽음의 상황에서도 실존을 모색한 이들의 어두운 내면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존을 위해 끝끝내 약동했던 불굴의 의지를 박서보는 검은색으로 덧칠한 캔버스를 기운차게 찢어발기며 대담하게 드러냈다.

1960년대 중반에 이르러 박서보는 본인이 천착한 앵포르멜과 비정형의 시효가 끝났다고 판단하며 검은색 이외의 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형상이 주가 되고 그 외의 것이 종속되는 관습의 타파를 목적으로 한 앵포르멜이 역설적으로 또 하나의 관습으로 고착되자 그에 권태를 느낀 박서보는 화려한 색깔의 기하학적 추상을 등장시킨다. 유전질 연작이다. 인체의 형상이 뚜렷이 드러나는 유전질 연작은 형상이 부재하면서도 무채색이었던 원형질 연작과 대척점에 서 있다. 그러나 박서보는 원형질 연작에서 전후 상황을 다뤘던 것과 마찬가지로 전통적인 오방색을 통해 한국적인 정서를 계속해서 자아내기도 한다.



차마 글이 되지 못해 그림으로 남겨진 획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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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에 이르러 박서보의 그림에서 색은 사라진다. 정확히 말하면, 색에 대한 관심이 사라진다. 1970년대 단색조 회화 작가들의 공통점은 널리 알려진 것과 같이 백색으로 대표되는 단색을 사용했다는 것이 아닌, 색에 대한 무관심이다(실제로 박서보는 백색 이외의 다양한 색으로도 묘법을 수행했다). 색이 사라진 곳에 박서보는 글이 되지 못해 그림으로 남겨진 획을 그어 넣었다. 연필로 선을 긋거나 한지에 먹을 바르고 마르기 전에 한지를 내려치는 방식 등으로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획을 그었다. 특정 관습과 문화에 얽매일 수밖에 없는 문자라는 매체는 세속 초월적인 수행의 수단이 될 수 없었다. 대신 그것은 그림으로 남았다. 획이 가득한 화폭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지난한 수행의 시간이 어떤 것의 도래를 기다리며 날짜를 센 흔적처럼 빼곡히 기록되어 있다.

색에 대한 무관심과 더불어 박서보를 포함한 단색조 회화 작가들은 공통적으로 탈주체화를 시도했다. 서구의 추상회화가 재현이 해체된 곳에서 자신의 새로운 생각을 주장한다면, 단색조 회화 작가들은 자신의 생각을 무화(無化)시켰다. 박서보를 일컫는 수행자라는 별명에서 종교적인 의미가 유독 강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자신을 내려놓고 목적 없이 반복적인 선 긋기에 무아지경으로 골몰했던 그의 화법이 무위 순수의 세계를 추구하는 노장사상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박서보의 화폭에 이제 ‘나’는 없다. ‘나’의 수행, 그 흔적만이 남았을 뿐.

어떻게 작가의 수행이 동시에 관객의 수행을 끌어낼 수 있는 것일까? 한낱 배설된 감정에 지나지 않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박서보는 어떤 것도 주장하지도, 표현하지도 않는다. 후기 묘법 시기에 이르면 그는 도구를 사용하며 자신의 손길을 완전히 배제하는 데 매진한다. 그가 만약 수행의 결과와 효과를 화폭에 구구절절 늘어놓았다면 그 곳에 관객이 서있을 곳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결과가 아닌 자신이 무화되는 수행의 과정을 화폭을 통해 기록했다. 즉, 미술관에서 우리가 대면하는 것은 그가 수행한 과정이지 결과가 아니며, 과정과 직면한 우리는 수행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며 결과마저 스스로 맺을 수 있게 된다. 작가의 수행이 관객의 수행으로 옮겨가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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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보는 현대미술이란 모름지기 이야기를 내세우기보다 관객의 이야기를 빨아 당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말대로라면 그는 현대미술의 조건을 더할 나위 없이 멋지게 충족해낸 근대초극의 산증인이다. 우리는 미술관에서, 특히 현대미술을 마주할 때 얼마나 많은 어려움과 좌절을 경험하는가. 그러나 박서보는 이성과 합리로 점철된 근대를 탈피할 목적으로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정신’을 택한다. 관객은 ‘정신’만 있다면 그의 세계를 무리 없이 경험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을 수 있게 된다. 얼마나 멋진 전위인가.

단색조 회화의 물결이 휩쓸고 지나간 후 일부 작가들은 박서보의 수행 지향적 미술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으며 사회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점을 들어 비판했다. 이야기를 할 곳 자체가 형성되지 않아 말 한마디 한마디가 소중했을 당시의 위압적 사회 분위기를 미뤄보았을 때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박서보의 획은 무의미하게 보였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야기가 너무 많아 오히려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는 시대를 지나고 있다. 말해줄 사람보다 들어줄 사람이 필요한 지금, 그래서 박서보의 획은 유의미하다. 그는 보이지 않기에 더욱 선명하다. 그가 뚜렷하게 희미해지는 곳에서, 우리의 이야기는 아스라이 피어오르고 있다.



참고문헌

김현화 「박서보의 <원형질>연작 연구 : ‘절규하는 인간의 영상’」
서보미술문화재단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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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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