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람'답게, 보다 '어른'답게 [TV/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보고
글 입력 2019.06.18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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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은 아이들은

너무 일찍 커버려.

그게 보여. 그래서 불쌍해.

걔의 지난날들을 알기가 겁난다.


- 나의 아저씨, 박동훈 대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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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 '어른'이 되었다고 말할까? 단순히 스무 살을 갓 넘긴 시점을 말하려는 건 아닐 테다. 신체적 나이와 정신적 나이가 언제나 비례하지는 않으니 말이다. 보통 '어른'이 되면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나름의 기준으로 이해한다. 이 때, 자신을 대하듯 타인을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성숙한 '어른'이라고 하기에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자신의 기준을 어느 정도 내려놓고 타인을 대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인간미를 가진 성숙한 어른이 된다는 게 쉽진 않다. 성숙함은 내려놓을 수 있는 내 기준의 폭이 늘어나면서 쌓인다. 세상은 그걸 가능하게 만들 정도로 호락호락하진 않다.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극복하지 못하는 일들도 많다. 계속 부딪히고자 하는 노력들이 버거워 주저앉아 버리는 경우도 있겠다. 좋지 않은 일을 반복하지 않으려고 이기적인 사람이 될 가능성도 있다. 꼭 좋은 어른이 되지 않아도, 엄밀히 따지자면 충분히 잘 살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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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석 감독, 박해영 작가의 『나의 아저씨(2018)』는 힘든 삶의 무게를 버티는 사람들의 관계에서 어른이 '어른'으로 성숙해지는 모습을 담았다. 많은 등장인물 중에서도 '박동훈'과 '이지안'의 삶이 아무래도 드라마의 주요 이야기겠다. 박동훈은 자신에게 수많은 힘든일이 몰려와도 묵묵히 삶을 버티며 사는 40대 인물이다. 이지안은 일찍이 삶의 무게를 짊어지느라 마음의 문을 완전히 닫아버린 채 하루하루를 사는 20대다.

드라마는 조금 작위적으로 보일 정도로 등장인물을 고단함의 끝으로 내몬다. 그 끝에서 동훈과 지안은 힘든 삶을 '잘' 버티고 이겨낸다. 이때, 동훈은 조금 더 많이 산 사람의 입장으로 지안을 동감해준다. 실은 지안이 속깊다는 걸 알게 되기 때문이다. 지안은 그런 동훈이 일관적으로 자신을 대하는 모습을 보고 동훈을 진짜 '어른'이라고 생각한다. 변함없는 마음으로 어떠한 경우에서라도 내 편이 되어 준 느낌으로 대해주는 게 이유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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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인 줄거리도 두 사람만을 놓고 보면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외적인 흐름은 박동운의 이야기다. 한직으로 밀려난 동운은 무너질 뻔한 가정을 추스르고, 출세해 결국 자신의 사업을 성공적으로 꾸린다. 반면, 내적인 흐름으로는 이지안의 이야기다. 지안은 돈을 벌려는 목적으로 한 도청으로 동훈을 알게 되면서 동경하는 마음으로 그를 사랑한다. 그리고 냉소적으로 사람을 믿지 못하던 마음의 벽을 허물고 성숙한 어른으로 한 발짝 나아간다.

지안의 달라지는 태도를 보면 두 사람이 '어른'으로 보다 성장하는 모습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지안은 자신의 할머니가 동훈을 좋게 생각하는 걸 두고 "잘 사는 사람들은 좋은 사람 되기 쉬워"라고 잘라 말한다. 그저 불쌍하다는 마음에 자기만족으로 베푸는 보편적인 호의라고 생각할 뿐이다.


그런 지안은 처음으로 '착하다'라는 소리를 동운에게 들으며 서서히 변한다. 회차를 거듭하며 할머니에게 승진을 목전에 둔 동훈을 "나랑 친한 사람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게 좋"다고 눈물을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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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뜻을 살펴보면 『나의 아저씨』가 건네는 어른의 모습은 더 명확해진다. 어른은 '다 자란 사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기에 덧붙여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말과 행동이 다르지 않고 한결같은 사람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면서도 마음이 다 자라서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어른이다.

동훈이 끝까지 지안을 보듬어주려한 행동도 같은 맥락이다. 동훈은 지안이 의도를 했는지를 상관하지 않고 일관되게 지안을 감싼다. 어렸을 때 받은 상처로 일찍 커버렸다는 생각. 그 생각은 지안이 마음의 벽을 허물게 된다면 잘 자란 어른으로 발돋움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한다. 지안이 도청 사실이 나중에야 탄로났을 때, 동훈이 지안에게 건넨 말은 그런 마음을 잘 보여준다.


사람 알아버리면,

그 사람이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어.

내가 널 알아.


- 나의 아저씨, 박동훈 대사 中



동훈은 자신이 뱉은 말을 한결같이 지켰다. 말로는 하기 쉬울지 몰라도, 끝까지 지안이 좋은 어른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도왔다. 물론 지안이 자신의 힘든 순간을 함께 나눌 수 있었던 존재였다는 고마운 감정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걸 넘어 상대방이 진심으로 행복하기를 바란다는 점에서 고마움과는 조금은 결을 달리한다. 어쩌면 그런 모습은 두 사람이 서로를 좋아하는 건 아닌지 생각하게 만들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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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는 두 사람이 서로를 단순히 좋아했다는 로맨스로 결말을 맺지 않아 의미가 더 크다. 물론 지안은 여전히 동훈을 좋아하는 것처럼 보인다. 몇년이 지난 후에도 동훈을 보며 수줍어하는 모습에는 좋아하는 감정이 서려 있다. 그러면서도 연인처럼 좋아하지는 않아 보인다. 헤어진 이후로 아무런 연락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짧은 순간 두 사람의 재회는 마침내 제대로 '어른'이 된 지안이 '어른'인 동훈을 만난다는 인상이 더 강하다.

동훈도 마찬가지다. 지안과 멀어진 이후 동훈은 처음으로 이제껏 힘들었던 나날들을 떠올리며 집에서 소리내 운다. 줄곧 감정 내색을 하지 않던 사람이 그런다는 점에서 다가오는 의미는 크다. 그러면서 동훈은 아내와의 관계도 원할하게 해결하고, 사업을 새로 꾸리면서 행복하게 산다. 무표정이기만 했던 표정에 웃음기가 한가득한 모습을 보면 그렇다. 그런 모습들은 오히려 '지안'을 통해 동훈 역시 보다 나은 어른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다는 걸 보여준다.

연인도 아니고, 가족도 아니지만, 서로를 그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사이. 친구라기에는 어감이 가벼워보일지도 모르는 사이. 단순히 아저씨라고 하기엔 먼 거리처럼 느껴질 수 있는 사이. 그래서 드라마의 제목이 어쩌면 『나의 아저씨(2018)』인지도 모르겠다. 두 사람은 힘든 일을 함께 겪으면서 '어른'이 되었다. 서로가 행복하기를 바랐고, 진심으로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이젠 정말로 즐겁게 행복하고,또 행복할 일만 남았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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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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