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비올라 판타지, 김세준 박진형 듀오 리사이틀

글 입력 2019.06.15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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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3일 목요일, 적당한 6월 중순의 평일에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을 찾았다. 목프로덕션의 기획공연 중 하나인 김세준 박진형 듀오 리사이틀 무대를 보기 위해서였다. 비올라 판타지라는 부제대로, 프로그램은 비올라의 다양한 면모들을 보여줄 수 있는 레퍼토리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고전시기부터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아주 폭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주겠다는 기획의도가 엿보이는 선곡이었다.

특히나 1부를 구성하고 있는 훔멜, 에네스쿠, 보웬의 작품은 이번 리사이틀을 가기로 결정한 이후로 처음 들어보게 된 작품들이었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신선하고 낯선 작품들이었는데, 미리 들어보니 심지어 굉장히 아름다운 작품들이어서 흥미로웠다. 이런 놀라운 작품들을 연주할 김세준과 박진형의 조합이 객석을 어떻게 사로잡을 것인지를 상상해보는 게 너무나 기대가 됐다.




PROGRAM

J. 훔멜 / 비올라와 피아노를 위한 환상곡 사단조, Op.94
J. Hummel / Fantasie in g minor for Viola and Piano, Op.94

G. 에네스쿠 / 비올라와 피아노를 위한 협주적 소품
G. Enescu / Konzertstück for Viola and Piano

Y. 보웬 / 비올라와 피아노를 위한 환상곡, Op. 54
Y. Bowen / Fantasy for Viola and Piano, Op.54

R. 슈만 / 환상소곡집, Op. 73
R. Schumann / Fantasiestücke, Op.73

P. 힌데미트 / 비올라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Op. 11, No. 4
P. Hindemith / Fantasiesonate, Op.11, No.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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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올리스트 김세준


김세준과 박진형은 이번 듀오 리사이틀의 시작으로 훔멜의 비올라와 피아노를 위한 환상곡 사단조를 선곡했다. 이 작품은 비올라 연주 레퍼토리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고전 비올라 곡이라고 한다. 고전 시기에 나온, 중요한 비올라 레퍼토리인 곡을 첫 곡으로 선곡한 것은 김세준의 근간부터 보여주겠다는 의지의 반영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모차르트 테마를 담아 고전적인 분위기가 있으면서도 환상곡답게 아주 다양한 분위기의 선율들을 보여주면서 낭만주의적 정취도 같이 느낄 수 있는 이 곡은 비올라의 선율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시작은 박진형의 격정적인 터치에서부터였다. IBK챔버홀을 강렬하게 강타하는 박진형의 도입부에 이어 김세준 역시 화려하고 힘 있는 선율을 그리며 등장했다. 강단있는 선율들이 이어진 끝에 김세준과 박진형은 아주 자연스럽게 모차르트 테마로 넘어갔다. 훔멜이 만든 이 환상곡은 정말 접속곡(potpourri)이라는 환상곡의 별칭이 딱 맞을 정도로 아주 자연스럽게 또다른 주제의 선율들로 넘어간다. 그 다양한 분위기들을 그려내는 데 있어 김세준과 박진형의 호흡은 너무나 완벽했다. 첫 곡이라 조금은 긴장할 법도 한데 그런 기색은 전혀 없었다. 그들이 주고 받는 호흡만 봐도 얼마나 준비됐는지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아주 만족스러운 시작이었다.

*

이어지는 에네스쿠의 작품은 훔멜의 작품에 뒤이어 들으면 특히나, 현대에 지어진 작품이란 걸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독보적인 분위기의 곡이다. 서정적이고 차분한 분위기로 시작하는 도입부에서는 김세준이 그려내는 비올라의 선율이 주가 되었다. 그러나 순식간에 아주 강렬한 음색과 기교의 향연으로 분위기가 전환되었다. 음의 진행이 예측한 방향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과 다소 특이한 음계의 사용에서 에네스쿠가 루마니아의 민속음악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게 여실히 느껴졌다.

아주 부드러운, 마치 프랑스 인상주의 음악에서 느끼는 그 어느 순간의 포착처럼 편안한 패시지가 이어지다가도 김세준은 다시금 변화무쌍한 비올라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강렬한 선율 속에 녹아 있는 비올라의 기교를 보며 듣는 것은 감상의 재미를 더해주었다. 김세준이 그려내는 그 오묘한 소리는 끝없이 새로운 이 작품의 매력을 더욱 극대화시키는 듯했다. 그 변화무쌍한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만들어가는 박진형의 피아노 역시 뒷받침되었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와 닿았던 것 같다. 이 작품이 끝나고 인사할 때 김세준의 비올라 활의 현 하나가 끊어져 있을 정도로, 정말 극적인 연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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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김세준과 박진형은 보웬의 환상곡을 연주했다. 1부를 구성한 세 작품 중에서는 가장 긴 곡이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1부에서 가장 흥미롭게 들은 연주이기도 했다. 보웬의 작품은 비올라가 보여줄 수 있는 스펙트럼이 얼마나 넓은지를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작품 같았다. 훔멜의 작품을 들을 때에는 김세준이 들려주는 비올라의 선율과 소리 그 자체가 매력적이게 와닿았다. 에네스쿠의 협주적 소품에서는 김세준이 보여주는 비올라의 기교가 특히 두드러졌다. 그런데 보웬의 작품에는 앞선 비올라의 매력들에 더하여, 김세준이 보여주는 서정성까지 담겨 있었다.

보웬의 활동시기를 생각하지 않고 들으면 마치 이 작품은 당연히 낭만시기의 작품일 거라 생각하기 쉬울 것 같다. 그만큼 낭만주의적인 요소가 강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앞선 훔멜, 에네스쿠의 작품보다 고전적인 형태의 악곡 느낌을 가지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악장이 나뉘어져 있지 않은데도 마치 3악장 형태를 취하고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 속에서 그려지는 템포의 변화, 다양한 선율에 더하여 김세준은 이 작품을 연주하며 객석에 비올라의 여러 얼굴을 다각도로 조명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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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는 슈만과 힌데미트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1부와 2부는 같은 듯하면서도 대비되는 구석이 있었다. 사실 살펴보면 2부에 힌데미트의 소나타를 제외하고는 1, 2부에 모두 환상곡들, 정확히 말하자면 형식에 많이 얽매이지 않은 작품들이 포진하고 있다. 그런데 1부에는 그 중에서도 더 자유분방한 형태와 분위기의 곡들이 자리매김하고 있었고 2부는 그보다는 더 정형화된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당장에 슈만과 힌데미트의 작품은 모두 전형적인 3악장 형태를 취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프로그램북을 보기만 해도 사뭇 다른 분위기일 것이라는 걸 쉽게 예측할 수 있다.

그리고 예상했던 것처럼, 2부의 시작은 1부와는 사뭇 달랐다. 슈만의 환상소곡집은 서정적이고 섬세한 분위기가 가득하다. 김세준과 박진형의 연주도 1부에서 보았던 화려함과 강렬함에서 벗어나 동화적이고 시적인 느낌으로 바뀌었다. 상냥하고 고요한 김세준의 선율은 아주 우아했다. 전개가 점차 발전되어 가는 과정에서 부드럽고 힘있는 동시에 활기가 넘치는 선율이 이어지기 시작하자 김세준과 박진형의 호흡이 다시금 빛나보였다. 3악장의 풍부함 끝에 선율이 고아한 종결을 맞이하기까지, 1부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에서 주고받는 김세준과 박진형의 음악적인 대화가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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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듀오 리사이틀의 대미를 장식하는 곡은 파울 힌데미트의 비올라 소나타 작품번호 11-4였다. 처음의 도입부만 들어도 20세기에 만들어진 음악이라는 걸 유추할 수 있을 정도로 조성의 전개가 굉장히 독특한 이 작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기 낭만주의의 정취 역시 느낄 수 있다. 특히 1악장은 환상곡다운 면모를 아주 과감히 보여주는데, 김세준은 힌데미트의 1악장을 연주하며 이번 무대에서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정서를 펼쳐보였다. 김세준의 선율과 박진형의 터치는 굉장히 절묘하게, 매우 오묘한 조화를 이루며 어우러졌다.

2악장은 1악장에 비해 선율과 리듬이 명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개가 지루하지 않은 이유는 변주되기 때문이다. 그 변화무쌍한 순간들을 그려내는 김세준의 연주는 그야말로 천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3악장 역시 변주로 구성되어 있는데 재현부답게 다시금 익숙하게 나오는 주제가 더욱 발전된 것을 느낄 수 있다. 다만 훨씬 더 극적인 느낌이 강렬해지는데, 김세준의 강렬한 연주와 박진형의 반주로 그 불협화음 같으면서도 이어져가는 선율이 아주 인상적이게 와닿았다. 확실히, 이번 무대에서 연주한 작품들 중에 보웬의 작품과 함께 가장 비올라의 스펙트럼을 확장시킨 작품이었다. 그만큼 김세준이 보여주는 모습들도 압도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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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다양한 환상곡들로 비올라의 매력을 한껏 느낀 뒤 김세준이 객석에 풀어낸 앵콜곡은 두 곡이었다. 두 번째 곡은 피아니스트 박진형과 함께 한, 슈만의 피아노와 비올라를 위한 그림동화 op. 113 중 4악장이었다. 그런데 사실 첫 앵콜곡이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이 곡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바로 가르트 녹스(Garth Knox)의 푸가 리브레(Fuga libre)였다.

본 무대를 보면서 비올라의 음색과 선율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느꼈던지라, 내심 무반주 곡이 없는 게 아쉽다는 생각을 했다. 박진형과의 호흡을 보는 것도 좋지만 김세준의 독주도 볼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렇게 생각할 사람들이 있으리라는 걸 그는 미리 예측했던 게 분명하다. 첫 앵콜곡이 무반주 비올라 작품이었던 걸 보면 말이다.

힌데미트에 이어 바로 들은 작품이 이렇게 현대적인 푸가라니. 시작은 아주 섬약한 선율로부터 시작했다. 그런데 섬약하기만 할 줄 알았던 시작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아주 강렬한 음들이 중간중간 삽입되기 시작했다. 김세준은 그 엄청난 간극을 정말 자연스럽게 연주했지만, 그게 실제로 연주하려면 얼마나 어려울 지는 불보듯 뻔했다. 놀라운 테크닉이었다. 그 뒤에 이어지는 격정적인 선율에서는 화이트 노이즈마저 자유롭게 가지고 노는 그의 엄청난 기교를 볼 수 있었다. 힘 있는 피치카토와 강단있는 음의 전개를 넘나들며 김세준은 놀라울 정도로 현을 컨트롤하며 마치 기계로 음을 만진 것만 같은 소리까지 전해주었다. 김세준이 얼마나 현을 잘 컨트롤했는지 후반부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일부 음들은 마치 목관 소리를 듣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런 주법은 처음 보았다. 그 엄청난 간극을 넘나드는 중에 놀랍도록 모든 것을 통제하고 있는 김세준의 모습에 전율이 일었다. 격정적인 그의 연주가 끝나자마자 브라보를 연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

다시금 생각하건대, 김세준 박진형 듀오 리사이틀은 선곡부터 프로그램 구성, 연주자 개개인의 역량까지 무엇 하나 빠짐이 없는 무대였다. 심지어 앵콜까지도 완벽하게 객석을 뜨겁게 달구었다. 이번 무대를 통해 비올라의 화려함과 따뜻함 그리고 놀라운 잠재력을 보여주려는 것이 김세준의 목표였다면, 이는 충분히 달성되었을 것이다. 정말 압도되지 않을 수 없는 무대였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김세준과 박진형의 조합으로 무대를 볼 수 있을까. 김세준이 몸 담고 있는 아벨 콰르텟과 박진형의 조합으로도 아주 즐거운 실내악 무대가 꾸며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든다. 이제 7월에 핀란드에서 아벨 콰르텟으로서 무대를 꾸밀 김세준, 그리고 올해와 내년에 걸쳐 유럽 연주활동을 펼칠 박진형의 이후 행보도 너무나 기다려진다.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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