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어딘가 불편한, 조화로운 뒤틀림 - 베르나르 뷔페 展

글 입력 2019.06.12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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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반”에서 벗어난 “일반적인”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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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얼굴을 그린 건 맞다. 내 눈에 보이는 그림은 일반적으로 내가 사람이라고 인식하곤 하는, 누군가를 그린 작품이다. 캔버스에 드러난 인간의 형상은 분명히 ‘인간임’을 속성으로 갖고 있다. 하지만 대상이 그러한 속성을 지닌 존재임을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것과, 이 때 떠올린 일반적인 대상의 이미지가 일치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그림에 나타난 대상은 인간이 맞지만 내가 일상적으로 머릿속에 떠올리곤 하는, 생물학적인 형상으로서의 인간은 아니다. 비정상적으로 긴 얼굴, 부자연스러운 이목구비의 위치들과 생김새, 목각 인형이 가질 법한 뻣뻣한 목—통상적인 자연스러움에서 한참 멀어진, 하지만 인간임이라는 특징은 유지하고 있는 기이한 형상이다.

 

그림을 같이 보던 친구는 미술 사조로 따지면 어디에 속하냐고 물어봤다. (미대생 아니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확신이 서질 않았다. 야수파나 아방가르드의 색깔도 묻어나는 것 같고, 큐비즘도 얼핏 보이고, 추상화는 확실히 아니고. 대체 이 사람은 생전에 어떤 그림을 그렸을까—하는 호기심에 이것저것 자료를 찾아보니 “구상회화”를 화폭에 녹여낸 화가라고 한다.


최근 전공 공부를 하면서 미술사의 전반적인 흐름도 같이 공부했는데, 구상회화는 처음 들어보는 사조였다. 분명히 현대미술에 속하는 사조는 맞는데 대체 “구상”이라는 단어는 이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무슨 그림이건 나름의 구상을 거치지 않는 작품이 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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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자유구상 - 1980년대 프랑스 현대미술의 표현론


 

조금 더 자세히 찾아본 결과 이 구상회화를 가리키는 정확한 미술사적 용어는 “자유구상”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니까 자유구상이라는 미술 사조에 의해 탄생한 작품을 구상회화라 부르는 것 같다. 이 기법은 1980년대 프랑스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회화적 흐름을 일컫는다.


신고전주의를 비롯해 미술 작품을 만들기 위한 일종의 형식을 제안하는 사조들과 달리, 형식의 틀에서 벗어나 예술가 개인의 “자발적인 표현”으로 작품을 구상한다는 점에서 자유구상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사조의 설명에 따르면 때로는 저속하고 공격적인(!!) 표현도 서슴지 않는다고 했다.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이 항상 윤리적이고 맑은 법이란 없으니.)

 

작품을 창작하는 예술가 개인의 내면을 중시하는 이 사조는 미니멀 아트나 개념미술, 팝아트로 이어지는 추상미술에 대한 반발로 생겨났다. 방금 예시를 든 추상미술들의 전반적인 특징은 작품의 전시적인 성질들에 예술적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앤디 워홀의 <브릴로 박스>라는 작품을 떠올려보자. 작품이 만들어질 당시 미국의 대형마트에 가면 흔하게 볼 수 있었던 비누상자를 미술작품이랍시고 그대로 가져다 놓은 것이다.


이러한 워홀의 행동은 무엇이든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사고에서 기인하였다. 마트에서 판매하는 생활용품이든 길가에 버려진 쓰레기든, 특정한 미술 사조의 기법을 토대로 그려낸 작품이든—예술가가 예술 작품이라고 부르기만 한다면 그것은 예술이 된다. 이처럼 현대의 추상미술들은 예술 작품을 결정할 기준이 해당 작품에 부여되는 예술가 개인의 해석(A는 예술작품이다—와 같은 가치 판단.)에서 비롯한다고 보았다. (전공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을 언급할 수 있어서 신난 에디터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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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반대편에는 전시적 특징을 포기할 수 없었던 작가들도 분명히 존재했다. 이들 역시도 작품의 비전시적 특징에서 우러나오는 서사적인 교훈, 교육적인 내용들을 긍정하긴 했으나—이러한 것들을 보다 직관적으로 파악하게 해줄 전시적 특징들의 중요성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추상미술들은 전시적 특징을 완전히 배제하고 예술가의 해석으로 작품의 내재적인 의미를 파악하도록 했다.


그러나 자유구상을 선택한 작가들은 일차적으로 당대 사회의 대중문화 이미지를 차용하거나 당대에 거론되었던 정치 ․ 사회적 사건을 화폭에 드러냄으로써, 해당 작품에 내재된 서사를 파악하기 이전에 ‘예술 작품인 것 같다’는 직관적인 느낌이 들도록 했다.


또한 의도적으로 유아적인 묘법을 사용하고, 시공간을 왜곡하거나 물리법칙을 무시하는 등 작가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을 더욱 직설적으로 캔버스 위에 표출하였다. 이 점은 당장 뷔페의 그림 몇 개만 살펴봐도 알 수 있다. 그의 작품은 현실세계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그림이라기보다, 만화 속의 한 장면을 그려낸 그림이라는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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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불편하지만” 조화로운 뒤틀림


 

앞서 설명한 자유구상에 기반을 두어 창작된 베르나르 뷔페의 그림들. 전시를 보러 가기 전에 살펴본 그의 몇 가지 작품들은 주로 인물이나 정물을 그린 것들이었다. 아직 많은 작품을 보지는 못해서 그가 그려내는 대상들이 대체로 어떠한 특징을 지니는지 정확하게 말하기란 어렵다.


하지만 이 점 하나는 확실하게 느껴진다. 그의 그림은 왜인지 모르게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작품에 드러난 대상은 원래 그 대상이 지니는 일반적인, 물리적인 형태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인간의 형상보다 훨씬 괴이하고, 꽃병이나 기타, 가구 등—집이나 학교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소품들의 모습도 현실의 그것들과는 달리 형태가 왜곡되어 있다. 때때로 섬뜩하다는 인상도 준다.

 

그렇지만 이러한 뒤틀림에도 불구하고 통일성이 느껴진다. 자연적이고 물리적인 질서를 따름으로써 발생하는 통일성은 아니다. 물리 세계의 법칙을 의도적으로 무시함으로써 발생하는 부조화에서 따라 나오는 통일성이다. ‘부조화가 낳은 조화’라는 역설적인 말로 그의 작품을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겠지만,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뷔페가 대상의 틀을 구성할 윤곽선을 뚜렷하게 표현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선을 어떻게 사용하는가는 그림에 나타난 대상들의 선명도를 좌우하는 요소 중 하나다. 부조화로 점철된 가운데에서도 조화를 형성하는 이유는, 이처럼 감상자의 머릿속에 화면 속 대상의 존재가 인식되도록 윤곽선을 뚜렷하게 그렸기 때문이 아닐까.



*



베르나르 뷔페 展
- 나는 광대다 : 천재의 캔버스 -


일자 : 2019.06.08 ~ 2019.09.15

시간
11:00 ~20:00
(19:00 입장마감)

*
매월 마지막 월요일 휴관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1층

티켓가격
성인 : 15,000원
청소년 : 12,000원
어린이 : 10,000원

주최
조선일보사
Fonds de Dotation Bernard Buffet
㈜한솔비비케이

후원
주한프랑스문화대사관
주한프랑스문화원

관람연령
전체관람가




[이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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