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같은 계절, 서로 다른 사람들: 드라마 "봄밤"에 대한 단상 [TV/드라마]

글 입력 2019.06.12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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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드라마의 내용을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최근 방영을 시작한 MBC 드라마 <봄밤>이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6월 6일 방영분이 8.4%의 자체 최고 시청률(닐슨코리아 제공)을 기록하면서, <봄밤>은 인기 드라마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봄밤>은 지난해 큰 화제였던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제작진이 다시 뭉쳐 만든 드라마로, 방영 전부터 대중의 이목을 끌었던 작품이다. 특히 전작에도 주연을 맡았던 배우 정해인(유지호 역)의 재출연과, 다양한 연기로 주목받은 배우 한지민(이정인 역)의 합류 소식은 시청자들의 기대감을 높이기에 충분했다.

공식 홈페이지의 회차 정보를 참고한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오래된 연인 사이인 정인과 기석은 서로에게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던 중 혼자 아들 은우를 키우며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약사 지호가 정인의 눈에 띄게 되고, 둘은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게 된다. 정인은 지호가 기석의 대학 후배임을 알게 되고, 지호도 정인이 기석의 연인임을 알게 된다. 둘은 서로에 대한 마음을 정리하려 하지만, 쉽지 않다. 기석의 집안에서 자신과 기석의 결혼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던 정인은 결국 기석에게 헤어지자고 말하지만, 기석은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불편한 기류 속에서 정인, 지호, 기석 세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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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분히 전형적이고, 소설적인 이 드라마는 한 가지 반전을 가지고 있다. 바로 일말의 사실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봄밤>은 무엇보다도 '일상'의 모습을 그리려 한 드라마다. 때문에 <봄밤>에는 사실적인 느낌을 내기 위한 여러 드라마 기법들이 동원된다. 가령 식당 주인이 쓰레기를 버리는 장면과 같이, 드라마 전개와 관련이 깊지 않은 장면들이 종종 극 중간에 의도적으로 삽입된다. 또한 드라마의 장르적 특성을 감안해도, 구어적 표현의 사용이 타 작품에 비해 도드라진다. <봄밤>은 실제 대화에서 사용되는 문장 구조와 일부 비문들, 구어 표현들을 그대로 차용하여 드라마의 대사에 녹여냈다. 이러한 선택은 작품에 사실감을 더한다.

이러한 사실감과 함께, 극 전체를 관통하는 회갈색 색감은 전체적인 드라마의 정서를 형성, 전제한다. 이러한 색감에 판타지적 요소도 포함되어 있겠지만, 이것이 드라마의 사실감을 위축시키지는 않는다. 오히려 드라마의 평균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시키고, 제작진이 의도한 분위기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보여준다. 회갈색은 특별히 큰 동요나 소음이 없는 이 드라마의 차분하고 안정된 특성을 효율적으로 함축한다.

촬영 및 연출 기법과 맞물려, 드라마의 내용도 꽤나 사실적이다. <봄밤>은 현재까지도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권위주의적 문화와 위계 질서의 폭력을 세심하게 그려낸다. 특히 남성 커뮤니티에서 그러한 관습과 트라우마가 어떻게 답습되어 왔고, 그것이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그 생태를 예리하게 파악하고 있다. <봄밤>은 배우들의 연기력과 더불어 방영 이전에는 기대하지 못했던, 사회 구조에 대한 나름의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현실 묘사가 철저하게 의도된 바인지는 알 수 없겠으나, 만약 엄밀한 현실 반영이 기획 의도의 일부였다면 <봄밤>은 목적 달성을 어느 정도 성공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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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정인의 아버지 태학은 자신의 상사이자, 딸의 연인 기석의 아버지인 영국에게는 꼼짝할 수 없지만, 가정에서는 고함을 지르며 딸들에게 결혼을 강요하는 권위주의적인 아버지이다. 기석은 지호를 비롯한 대학 후배들과의 관계에서는 선배로서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서인(정인의 언니)의 남편 시훈의 비위를 맞춰주어야만 하는 위치에 있다. 또한 시훈은 번듯한 의사로서 사회에서 인정받고 있는 사람이지만, 장인 태학의 비위를 맞추면서 아내에게는 주먹을 휘두르는 가정폭력범이다.
 
긴장된 수직적 위계 구조에서 축적된 억눌림의 감정은, 긴장의 이완과 함께, 폭력적인 방식으로 표출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화살은 당연히 후배, 딸, 아내 등의 상대적 약자를 향하게 된다. <봄밤>은 시청자로 하여금, 하나의 문화가 다양한 관계 양상에서 어떻게 각기 다른 모습으로 발현되는지 생각해 보게 한다. 해당 드라마가 주인공 정인과 지호 외 여타 인물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에 상당히 많은 분량을 할애하는 것은 그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봄밤>을 통해 일상에 너무나 치밀하게 스며들어 익숙해져 버린 이 관습의 작동 기제를 새로이 읽어낼 수 있다. <봄밤>은 같은 사회 구조에 놓인 사람들이 서로 다른 입장과 가치관으로 어떻게 그것을 이해하고, 체득하고, 때로는 거부하는지 관찰하는 재미가 있는 드라마다.

그래서 <봄밤>에는 필연성과 개연성이 있다. (플롯의 진부함은 우선 차치해 두자.) <봄밤>은 플롯보다는, 인물 구도 자체에서 더 큰 현실감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그래서 각 인물들의 상황 대처 방식은 인물들이 현재 처한 상황이나 그들의 성장 배경과 맞물려 대체로 납득이 간다. 작품을 보는 사람에 따라 각자 공감하는 부분이 다를 것 같다는 의견이다. <봄밤>은 일관성을 유지하는 작품이지만, 동시에 매우 다면적인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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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의 모든 등장인물을 점으로 표시하고, 두 점씩 선분으로 이어서 복잡한 입체 도형 하나를 완성한다고 생각해 보자. 각 선분이 뜻하는 '연결'은, 모든 인물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함축할 것이다. 각 선분들의 색채는 선분의 수만큼 다양하지만, 모든 겉면들에는 동일한 색감의 색유리가 덧씌워져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 선분들은 직선이 되어 각기 다른 속도로 무한히 확장된다. 그리고 이 도형은, 모양은 다르나 성질은 같은 수많은 다른 도형들과 만나 '문화'라는 거대한 공간을 만들어 낼 것이다.

<봄밤>이 지은 이 다면체는 익숙한 관습이 함축된, 우리 사회의 온갖 '겉모습'들을 보여준다. 우리는 이렇게 다양하게 외면화된 사회의 본색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리고 어떻게 하면 일상 속에서 이 고질적인 문화의 폭력적 습성을 읽어낼 수 있을까. 이러한 구조 속에서는 누구나, 언제든 피해자가 될 위험에 처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늘상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봄밤>은 다만, 전형적인 한국 드라마 문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오래된 연인 사이의 권태과 뉴페이스가 가져온 설렘 사이에서 갈등하는 여주인공'은 한국 드라마에서 이미 충분히 소비된 설정이다. 더 큰 문제는, 부탁에 못 이기는 척 친구들과의 술자리에 정인을 부르거나, 은연중에 정인을 무시하는 태도가 말투에 배어나는 기석의 캐릭터가, 지호의 세심함과 부드러움을 부각하는 요소가 된다는 점이다. 일명 '똥차 가고 벤츠 온다'는 속어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설정이다. 이는 위에서 언급한 드라마의 통찰력을 단번에 상쇄시키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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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도 마음도 멋진' 남주인공의 출현은 다소 무책임한 선택의 결과이다. <봄밤>이 (의도된 바인지는 모르겠으나) 앞서 말한 뒤틀린 한국 문화의 산물, 즉 위계 구조에서의 폭력성을 정확히 꼬집는 데에 반해, 작품은 그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이 거대한 사회 문제에 대한 명확한 해법을 제시하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드라마에서 지호의 등장이 결국 모든 문제를 호도해 버리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지호도 그러한 문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인물일텐데 말이다.

게다가 설레는 느낌을 주기 위해 따온 일명 '반존대' 어법이나, 센스 있는 두 주인공의 말장난 주고받기를 보여주기 위해 삽입한 대사들이 다소 어색하게 느껴진다. 특정 대사나 장면이 어떤 목적으로 끼워넣어져 있는지 투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분명 이 드라마의 치명적인 약점이다.

그래서인지 <봄밤>은 그 한계가 더욱 아쉬운 작품이다. <봄밤>이 제작진의 전작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흐름을 그대로 가져가는 것은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지만, 동시에 작품의 한계를 스스로 설정해 버리는 선택이다. 특히 기석 역을 연기하는 김준한 배우와 같이, 대사와 행동에 반영된 인물의 심리를 정확히 해석하여 연기하는 출연진이 있어 드라마에 대한 아쉬움은 더욱 크다. <봄밤>의 앞으로의 행보를 눈여겨보는 시청자로서, 작품이 회를 거듭하며 더욱 성장하길 바라 본다.




[이승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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