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에디터 활동의 끝머리에서 [기타]

글 입력 2019.06.12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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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달간의 에디터 활동이 끝나간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그에 몰두하며 최선을 다해보기에는 짧은 시간일지 모르겠으나, 내게는 그 어느 때보다도 길게 느껴진 네 달이었다. 매일 밤 침대에 누워 내일 있을 수업과 과제, 전시기획팀에서의 전시 준비 일정을 생각하면 한숨이 나오기도 했다. 이렇게 할 일이 많은데 글까지 써야 한다니. 주위 사람들에 비해 바쁘게 사는 에디터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예상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매주 완결된 글 한 편을 써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소재 정하기, 개요 쓰기, 초안 쓰기, 탈고하기 등의 긴 과정을 거쳐야 하는 글쓰기는 '할 일 목록'에서 매번 미뤄지곤 했다.

 
게다가 글을 잘 써야 한다는 압박감은 때때로 글쓰기를 두려워하게 만들었다. 나는 무엇보다도, 구조가 뚜렷하고 군더더기가 없는 글, 논지를 읽어내기 어렵지 않은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처음으로 내 글을 공개적인 플랫폼에 게재하는 것이기도 했고, 감사하게도 이 플랫폼 안에서는 쓰고 싶은 글을 쓸 수 있었기 때문에, 이왕이면 조금 더 공을 들여 내실있는 글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바쁜 일정과 바닥난 체력으로는 좋은 글을 써낼 수가 없었다. 신선한 글감을 얻으려면 많이 보고, 듣고, 읽어야 하는데, 이번 기간에는 문화 예술을 여유롭게 향유할 시간이 없었다. 또 깊이 있는 글을 쓰려면 많은 성찰을 거쳐야 하는데, 모든 일을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해치우다시피' 하고 있는 나에겐 이 또한 해내기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얼마 가지 않아 영감의 밑천이 드러난 나는 종종 시무룩해져서는, 글쓰기를 주저하게 되었다. 점점 얕아지는 내 글을 보는 것이 속상했기 때문이다. 내 에디터 활동의 가장 아쉬운 점은 여기에 있다. 결국 쓰고 싶은 글이 아닌, 쓸 수 있는 글을 쓰게 된 것 같았다. 나는 아직 글쓰기를 할 준비가 되지 않은 미숙한 에디터였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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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에디터 활동이 아쉬움만 남긴 것은 아니다. 글쓰기를 하면서 여러 깨달음을 얻기도 했다. 첫 번째로, 몇 편의 글을 쓰면서, 글에는 작자의 감정이 실려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사회 문제에 대해 쓴 글에는 정제되지 못한 화가 묻어 있었고, 내 보통의 어조는 다소 냉소적이었다. 그리고 글을 쓰는 나는 정서가 낳은 말들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아울러 글을 쓰면서 내가 단언적인 표현을 심심찮게 사용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면 '좋은'이라는 말보다는 '썩 괜찮은', '나쁘지 않은' 등의 말을 더 많이 사용한다거나, 위에서와 같이 '소재가 다 떨어지다'라는 표현 대신 '영감의 밑천이 드러나다'라는 관용구를 쓰는 식이었다. 그래서 누군가 나를 날카롭거나 성급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섣불리 그것이 오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둘째로, 글쓰기를 하다 보니 '글은 어떻게 쓰는 걸까?'라는, 원론적인 질문에 봉착하게 되었다. 이 물음은 정확하고, 또 적확한 표현을 쓰고 싶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어떤 정서나 상황, 사물, 인물을 정확히 묘사하려고 하다 보면 글이 장황해지거나, 따옴표와 반점으로 가득차거나, 글에 지나치게 많은 수식어구를 사용하게 되거나, 현학적인 글을 쓰게 되는 일이 빈번했다. 이를테면 말들이 의미의 포화 상태에 놓여, 내가 쑤셔넣은 의미들을 도로 토해내려 하는 듯한 상황이 발생했다. 간결하게 쓰는 것, 아니 간결하게 잘 쓰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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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스로 빚어낸 말이 내가 전달하려는 바를 모두 담으면서도, 서로 모여 군더더기가 없는 문장을 형성하려면 언어가 명확하고 압축적이어야만 했다. 어휘가 아쉬워 국어 사전을 뒤적여 볼 때도 있었지만, 담백한 글쓰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선택받지 못한 말들을 버리면서 괜히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일관적인 어조를 유지하면서도 극단적인 문어체와 구어체가 혼용되지 않는 글을 쓰기가 힘들었다.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쓰면 좋은 글을 쓸 수 있게 될까? 시간과 경험이 해결해 준다면, 글을 백 편이고 이백 편이고 더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글은 써질 때 써야 한다'는, 조금은 게으른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부족한 글솜씨에 대한 핑계일 지도 모르지만, 좋은 문장은 내 언어 능력에서만 비롯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령 표현하고자 하는 정서가 내 언어와 잘 어울려야 하고, 특별히 기분이 좋을 때만 생각이 나는 말들도 있다. 글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대체 어떤 힘이 머릿속에서 수만 가지 단어들을 수집, 분류하고, 윤색하고, 서로 비교하여 특별히 좋은 말을 선별해내고, 어지럽게 조합하는 것인지 정말 궁금하다. '좋은 문장은 신이 내려 주시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좋은 글을 쓰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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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 좋아서 썩 괜찮은 문장을 써냈다 해도, 스스로에게 글의 진정성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정해진 답이 딸린 질문임을 알면서도, 글쓴이의 의도가 독자에게 온전히 전해질 수 있는지에 대해 항상 회의하게 된다. 오독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최대한 줄여보고는 싶은 것이 저자의 마음인 듯하다. 이 사라지지 않는 의구심은 사실 오해로 인한 비난을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 지 모른다. 어쨌든 글을 쓰는 동안 나는 이 간극이 늘 아쉽고, 어려웠다. 어쩌면 글이라는 것은 모두 거짓말이 아닐까?

네 달 동안 열 편 남짓한 글을 쓰면서 더 많이 보고, 듣고, 읽고, 생각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막연히 비평가를 꿈꾸면서도, 글을 쓰며 세상에 대해 더 열심히 탐구하지 않은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글은 꾸준함과 정직함을 안다. 이러한 글에 부끄럽지 않게, 끊임없이 공부하고 성찰하면서 성실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다. 아트인사이트 에디터로서의 경험은 그 원동력이 되어줄 것 같다. 마음껏 행복해하지는 못했지만, 내 글이 포털 사이트 메인 화면에 게재된 것은 다시 없을 특별한 경험이었다. 얼떨떨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읽힐 내 글에 대한 책임감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가장 잘 아는 것에 대해 쓴 글로 얻은 결과였던 터라 더 특별했다.

내 글은 아직 세상에 내놓기 부끄러운 글이지만, 뿌듯함을 안겨주는 고마운 글이다. 글재주는 없지만, 누구의 말마따나 한 편 한 편의 글을 베 짜듯 써내려간 경험은 큰 자산이 될 것 같다. 마지막으로 타인에게 읽히는 것이기보다 제 생각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창구로서의 글을 마음껏 끄적이게 해 준 울타리, 아트인사이트 플랫폼에 깊은 감사를 전한다. 17기 에디터 모집을 맞아, 더 많은 사람들이 아트인사이트 에디터가 되어 글쓰기로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승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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