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동년배’ 드립이 불편한 이유 [문화 전반]

글 입력 2019.06.11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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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살인데 동년배들 다 ~한다.’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유행한 이른바 ‘동년배 드립’이다. 누군가 정치 기사에 남긴 ‘나 10대 청년인데 동년배들 다 문죄인이 싫어한다’라는 댓글이 실제 10대들이 많이 쓰지 않는 ‘청년’이나 ‘동년배’ 등의 어휘를 쓰며 10대를 자칭한다는 점에서 웃음을 유발한 것이다.

쉽게 말해, 젊은 사람인 척 둔갑한 것이 들킨 모습에서 우스꽝스러움이 연출된 것. 처음엔 같이 웃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어딘가 불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이 ‘밈(meme)’의 웃음 포인트가 누군가를 사회에서 분리하는 혐오의 메커니즘을 전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꼰대'와 '틀딱충'


어떤 단어가 특정 문화권에서 유행하는 이유는 문화권의 구성원들끼리 집단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사고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도 마찬가지다. 특정 정치인을 멸칭으로 비난하는데, 네티즌들에게 금방 들킬 거짓말을 어색하게 한다는 점에서 사이버 공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노인이다. 이러한 사고 과정을 거치면서 ‘태극기집회’, ‘박사모’, ‘수구’ 등의 연관어를 떠올리기도 한다.

따라서 이 댓글은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민주시민의 정치적 견해라기보다 맹목적으로 특정 정치인을 찬양하는 추종자의 ‘악플’에 불과하다. 이러한 결론을 도출하기까지의 과정에는 정형화된 ‘애국 보수’, ‘노인’의 이미지가 동원된다. 이 이미지가 사이버 공간을 주로 점유하는 청년층 사이에서 공유되고 있기 때문에 ‘동년배 드립’은 이들의 공감대를 자연스럽게 자극하고 웃음을 자아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이미지는 어떻게 형성되고 공유되었을까? 청년층을 향해 ‘요즘 애들은 노력을 안 해’, ‘나 때는 말이야’ 따위의 공감 없는 조언을 내던지는 중장년층 및 노인층에 대한 반동적 심리로 ‘꼰대’라는 말이 유행했다는 사실을 먼저 언급할 필요가 있다. ‘꼰대’의 유행은 변화된 사회에서 변화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년들의 고초에 귀 기울이지 않는 기득권층에 대한 반발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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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서 기득권층이라는 맥락이 쏙 빠진 채로 나이가 많다는 속성에 대한 부정적 논조만이 옮겨져 ‘틀딱충’이라는 단어가 새로이 탄생한다. ‘틀니’를 ‘딱딱’ 부딪치는 ‘충(蟲, 벌레)’이라는 의미의 이 단어는 ‘일간베스트 저장소(이하 일베)’에서 ‘박사모’를 비난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용어다. 여기서 ‘틀딱충’이 맹목성과 폭력성으로 사회 구성원 간 기본적 합의를 무너뜨리는 극우 세력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 노인혐오의 목적에서 탄생한 단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전자의 대표 격인 집단이 나이가 많다는 점에서만 본인들과 구분되는 사람들을 배제하여 그들의 정치적 행위를 격하하고 본인들의 우월한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약자 혐오를 작동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꼰대’와 ‘틀딱충’은 모멸적 의미라는 점에선 같지만, 용법상 현저히 다른 단어다. 전자는 위를 향한다는 점에서 비판이고, 후자는 아래를 향한다는 점에서 혐오다. 전자는 행위를 비판하고, 후자는 인간을 혐오한다. ‘동년배 드립’의 웃음 포인트가 극우세력의 어설픈 여론조작이 아닌 노인층의 ‘청년 코스프레’에 맞춰져 있는 것이라면, 이것은 자명한 혐오다. 위장했다는 사실 자체가 우스꽝스럽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반대로 청년층이 노인층을 흉내 내는 경우였다면 과연 똑같이 웃었을까? 노인층의 문화를 향유하는 청년에게는 그 나이에 주책이라거나, 나잇값을 못 한다는 등 ‘구분 지음’의 말을 쉽게 건네지 않는다. ‘동년배 드립’은 끼어들지 말아야 할 곳에 끼어든, 주류의 문화에 침투한 비주류를 상대로 그어지는 경계선 같은 놀이의 연장선에 있다.



그 뒤에 숨은 자들


여기서 하나의 가능성을 더 떠올려보자. 댓글을 남긴 사람은 사실 자신의 주체적인 견해에서 비난조의 댓글을 남긴 게 아니라 수당을 받고 사이버 공간에서 댓글로 여론을 조작하는 소위 ‘댓글 알바’였을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댓글의 어설픈 위장에 웃음을 터뜨린 또 하나의 이유는 그것이 댓글 알바의 기계적인 움직임을 연상케 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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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알바나 집회 알바 등 정치 세력의 여론 조작을 위해 동원되는 노동이 떳떳하다고 할 순 없다. 그러나 이들이 쉴 새 없이 조롱거리가 되는 반면 그 뒤에 숨은 사용자는 가시화되지도, 딱히 이슈화되지도 않는다. 정치 기사의 댓글 여론을 조작하는 ‘댓글 알바’들은 종일 일을 해도 최저시급도 안 되는 수당을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집회 알바’의 경우는 더하다. 목욕하고 집회에 참여하면 5만원, 유아차를 끌고 오는 젊은 여성은 15만원의 수당을 준다는 식으로 참가자에게 가격을 매긴다. (* “목욕하고 오면 5만원” 친박집회 ‘참가자 가격표’, JTBC 뉴스 이선화 기자)

시위에 주로 참여하는 노인층이 점점 여론에서 소외되자 이제 노숙자나 여성 등 또 다른 경제적 약자의 노동력을 사용한다. 괘씸하다. 알바의 존재 이유인 사용자에 대한 관심은 놀랍도록 미미하고, 비난의 화살은 오로지 참여자들의 정치적 맹목성을 향한다. 그리고 그 비난은 ‘노인’, ‘여성’, ‘노숙자’라는 꼬리표와 함께 또 다른 혐오로 확대 재생산된다.

애국 보수를 표방하며 특정 정치인을 비판하는 노인층을 향한 것이든, 댓글 알바 종사자를 향한 것이든 ‘동년배 드립’은 두 가지의 가능성에서 모두 노인 및 사회적 약자 혐오를 전제한다. 이 ‘드립’에 모두가 웃음을 터뜨린다는 것은 또한 해당 혐오가 사회 전반에 퍼져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전자의 경우 ‘일베’의 젊은 유저로부터, 후자의 경우 경제적 약자로서의 노인층을 이용하는 사용자로부터 일차적으로 혐오를 기반으로 ‘구분 지음’을 당한다. 만약 극우세력이라서, 혹은 댓글 알바라는 비윤리적 노동의 종사자라는 이유로 비판하는 것이라면 이 두 종류의 ‘사용자’에게 먼저 그 화살을 꽂아야 하지 않을까? 혹시 우리는 이 사용자들과 같은 혐오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다시 세워야 할 것은 우리 바깥의 바리케이드가 아니라 우리 내면의 에토스인지도 모른다. 그 추위에 지팡이를 짚고 투표장에 나서는 노인들은 경멸이 아니라 존경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비록 그들이 나라를 사랑하는 방식은 우리와 다르지만, 나라를 사랑하는 그 열정만큼은 우리의 것보다 더 뜨거울 것이다. 그들 역시 우리처럼 ‘비천한 자들’(les miserables)이다. 왜 우리는 그들을 우리의 협력자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미학 에세이>, 진중권


이들이 실질적으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며, 상처를 받은 자들에게 이들과 협력하자는 말을 쉽게 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궁금하다. 마치 그들이 없는 것처럼 돌아가는 세상에서 이들의 존재감이 유독 부각되는 순간에 대해서 말이다. 여타 약자 혐오와 놀랍도록 같은 양상이며,모든 혐오가 그렇듯이 사라져야 할 혐오다. 이미 분리된 자들에 꽂히기에 화살은 너무 크다. 그리고, 엉뚱한 데를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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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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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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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맑음
    • 너무 공감되는 글입니다.. ‘꼰대’는 행위를 비판하고, '틀딱충'은 인간을 혐오한다는 구절도요. 어느순간부터 논란의 끝이 항상 혐오를 물든다는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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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qww
    • 너무 멀리 간다는 생각이 듭니다. 순전히 동년배 드립 하나만 놓고 본다면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다른 모습으로 위장한 행위'가 조롱거리가 되는 것이잖아요. 근데 그게 너무 티 나니까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것이고요. 왜 굳이 틀딱충이라는 말과 연관지으시는지 모르겠어요. 틀딱충이라는 말로 나타나는 노인혐오가 존재한다는 사실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동년배 드립은 제가 보기엔 단순한 '행위에 대한 비판'에서 비롯하는 조롱이라고밖에 느껴지지 않네요. 사실 조롱이란 것 자체가 대상을 희화화한다는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그 대상을 조롱의 주체와 분리시키는 일입니다. 그런데 위를 향하는 조롱은 비판이고 아래를 향하는 조롱은 혐오라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물론 아래를 향하는 조롱은 그 대상이 조롱의 부정적 영향을 더 치명적으로 받을 가능성이 높지만, 위를 향하는 조롱은 그 부정적 영향이 적기는 하겠죠. 하지만 그러한 이유로 위를 향하는 조롱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조롱 자체의 부정적 효과는 분명히 존재하기에, 비판의 여지는 충분하지만 조롱을 구태여 위를 향하는 것과 아래를 향하는 것으로 양분시켜서 다르게 보는 것은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애초에 동년배 드립을 처음 선보이신 분이 약자층이라고 단정짓는 것도 근거가 부족하지 않나요? 만약 문재인을 싫어하는 어떤 정치인이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그렇게 댓글을 썼다는 것이 드러난다면 그것은 위를 향하는 조롱이기에(게다가 특정인을 콕 집어 하는 조롱이기에) 괜찮은 것이 되는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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