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숙주와 기생충의 관계 [영화]

심오한 생각을 해야 할 것만 같은 영화, 얕은 리뷰
글 입력 2019.06.09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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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영화의 줄거리와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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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전부터 기대 만발이었던 봉준호 감독의 신작 <기생충>, 결론부터 말하자면 꽤 인상깊었다. 다른 어려운 생각들에 정신을 빼앗기지 않는 한, 영화관 좌석에 앉아서는 맘껏 웃고 놀라고 긴장하며 볼 수 있는 그리고 보고 난 뒤에는 항상 많은 생각과 이야기를 하게 만드는 그런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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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하에 사는 기우네, 지상 높은 곳에 사는 박 사장네 그리고 그곳의 지하에서 숨어 살고 있던 문광네, 이들 중 진짜 기생충은 누구일까.


영화 속 인물 중 누구도 100% 완벽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의문이 들었던 것은 기택이다. 그가 착하기만 한 부자인 줄 알았는데 냄새난다고 해서? 자기보다 하층인 사람들의 냄새를 죽도록 혐오하던 그 모습이 끔찍해서 죽였을까? 그게 아니면 자신의 딸이 죽어가는데 본인 아들 병원 가야 한다며 차 키 달라고 소리 지르고 그 상황에서도 표정에서 감춰지지 않는 하층민에 대한 혐오 의식을 보았기 때문인 걸까. 도대체 기택이 칼에 찔려 피를 철철 흘리며 죽어가는 딸을 두고 다시 그 칼을 집어 박 사장을 찌르게 한 결정적 동기는 뭐였을까.


충동적 살인이 어떠한 정신적 질병이 없는 사람에게 가능한 말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다. 후에 기택이 지하실에 숨어 살면서 박 사장의 사진을 보며 미안하다고 사죄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로 미루어 봤을 때 그의 살인은 그 순간 충동적인 감정에 의한 것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그렇다면 송강호는 애초에 자기혐오 혹은 깊은 우울증이나 반대로 극한의 자기 연민에 빠져 사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영화 초반에 충숙이 기택을 발로 차며 욕을 하는데 한마디도 대꾸 못하고 곰팡이 핀 식빵을 뜯어먹는 장면에서부터 그가 지금까지 어떤 대접을 받으며 살아왔는지 알 수 있고 그 상황 속에서 스스로를 어떻게 취급해왔을지 눈에 선하다. 그런 사람이 부잣집 기사 노릇을 하며 자신과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상류층을 바라보는 기분은 어땠을까. 이런 흐름으로 바라본다면 기택의 살인은 애초에 어떤 인과관계가 필요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는 그래야만 했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기택이 애초에 자기혐오 또는 연민에 빠져있던 사람일 수 있는 또 한가지 증거는 그가 같은 처지 혹은 더 불우한 처지인 지하실 부부를 대하는 행동에서 나타난다. 부잣집에 온 식구가 취직해 다른 사람을 속이고 서로 모른 척하며 돈을 벌고 있는 기택네가 그 집 지하실에 숨죽인 채 살아가고 있는 그 남자를 또 그의 부인을 밧줄로 묶고 입을 막고 심지어 피 흘려 기절해 있는 모습을 무시해가며 잔인하게 군 것과 사람이 죽어가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그 남자의 냄새 때문에 인상을 찌푸리는 박 사장을 보며 살인의 충동을 느낀 것은 어느 정도 상관관계가 있다.


기택은 박 사장을 통해 그동안 속에 쌓아 왔던 뿌리 깊은 자기혐오에 대한 분노 표출을 한 게 아닐까. 자신보다 더 불쌍한 처지의 사람을 자신보다 더 혐오하는 박 사장의 모습에서 그동안 가지고 있던 하층민, 곧 자기 자신에 대한 분노와 혐오를 느끼고 본인을 대신해 충동적으로 박 사장을 살해한 것이라면 납득이 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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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박 사장을 죽이고 모습을 감춘 기택은 기가 막히게 자신이 어디에 숨어야 할지 알고 그 지하실로 다시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지하실 남자가 그랬던 것처럼 기생한다. 이러한 연출이 소름 돋는 것은 그곳을 채우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떠났지만, 공간은 여전했고 또 누군가가 다시 그곳에 채워가며 살아간다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기택은 반지하에서 부잣집의 지하에 진정으로 기생하게 되었고 그 부잣집엔 다른 상류층 사람들이 새롭게 들어와 살아간다. 그 속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사회에는 여전히 상류와 하류로 나뉘는 이분법이 존재하고 사람은 바뀌지만 그 거대한 껍데기는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결론적으로 기택이네 식구들로 인해 총 세 가정이 파탄 났다. 한 가정은 가장을 잃었고 한 가정은 막내딸을 잃었으며 한 가정은 아예 저세상 사람들이 되었다. 결국엔 숙주를 죽음에 이르게 하여 자기 자신도 파멸하게 된 기생충은 성공적인 기생충이라고 볼 수 없다. 따라서 성공적인 기생 생활은 숙주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자신의 수명동안 최대한의 이익을 남기며 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최초의 숙주, 박 사장네는 기생 생활의 선을 넘어버린 기택네와 문광네로 인해 파멸했고 본 숙주가 파멸하니 자연스럽게 본 기생충이었던 문광네도 소멸하게 된다. 그리고 기택네는 다시 새로운 숙주를 찾아 기생하게 되었다는 것이 제목에 빗댄 이 영화의 결말이다.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작품이라 그런지 자꾸 더 심오한 어떤 것을 기대하게 되는 것 같다. 작은 연출 하나하나에도 생각하지 못한 깊은 뜻이 담겨 있을 거라고 착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자꾸 대사를 읊조리고, 장면을 다시 생각해보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궁금해하는 것이 영화의 작품성과는 별개로 더 좋은 현상으로 다가온다. 각자 생각의 깊이로 영화를 이해하고 또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은 작품이 가진 최고의 장점이 아닐까.





[김요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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