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2019년의 나비부인 [공연]

글 입력 2019.06.10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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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AMA BUTTERFLY
나비부인

-노블아트오페라단-


여기, 가련한 여인이 있다. 그의 이름은 초초상이다. 게이샤인 초초상은 15살에 미국인 핑커톤과 결혼을 했다. 핑커톤은 초초상과 영원한 사랑을 할 계획이 애초에 없었기에, 본국으로 돌아가 어렵지 않게 케이트를 새 아내로 맞이한다.


그런데 새 아내가 초초상과 핑커톤 사이에 낳은 아이를 데려오기 위해, 초초상 앞에 나타난다. 으레 그렇듯 여성이 '현모양처'라는 이름으로 남성이 저지른 무책임함을 수습할 때, 남성은 뒤로 숨는다. 핑커톤은 여기 없다는 말이다. 이윽고 케이트가 '본부인'이라는 권력을 가진 여성임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린 초초상은 이렇게 말한다.


"아, 그 이의 아내로군요! 내 인생은 뭐가 되는 건가요? 끝난 거네요, 아!" 여기서 초초상이 '가련한 여인'인 이유가 드러난다. 그의 인생은 자신의 것인 적이 없었다. 오로지 외부의 구원에 자신의 인생을 의탁하며 살았다.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자유도 맛보지 못했기에 자신으로서 사는 법도, 주체와 주체의 만남 속에 있는 관계 윤리도, 삶의 지평을 넓혀 줄 선택을 하는 법도 몰랐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삶의 끝은 그녀가 원한 '명예로운 죽음'이 아니라, 단지 새로운 구원을 찾을 만한 기회가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다. 이 모든 일이 너무 어린 나이인 15살에 일어났다는 점에서 가련함을 넘어 폭력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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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에도 가련한 나비부인


극 상에서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핑커톤의 장점은 '백인', '미국인', '해군 중위'라는 점이다. 이 중 두 가지는 자신의 선천적인 운에 의해 얻은 것이다. 철저히 세속화된 관점이 아니라 핑커톤은 매너, 인성, 외모에서 너무나도 부족한 점이 많은 남성이다. 그는 초초상과의 결혼을 직업 특성상 떠도는 처지인 그의 외로움을 달래 줄 수단으로 여긴다.



"전 세계 어디든 떠돌이 양키는 위험한 거래를 즐겨 하죠. (···) 모험 속에 원하는 곳 어디에나 닻을 내리죠. 태풍이 불어와 배와 포구를 뒤흔들 때까지 가는 곳마다 가장 아름다운 꽃과 미인을 내 손에 넣을 때까지..."

"나비처럼 살며시 날아와서 조용하고 우아하게 내려앉은 자태 그 날개를 꺾어서라도 그녀를 붙잡고 싶다는 욕망이 생겨났죠"

"그래서 나도 일본식 결혼을 합니다. 999년 동안 살겠다고 약속하겠지만 언제라도 취소할 수 있죠"

"그리고 미국인 신부를 맞이할 그날 제대로 된 미래의 결혼식을 위해"

- 핑거톤의 대사 中


초초상이 이러한 핑거톤에게 가지는 감정은 놀랍게도 사랑이다. 물론 그 사랑엔 '자기'가 없었기에 성숙된 사랑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사랑에 눈이 멀었기에, 핑거톤을 원망하지 않는 그의 태도는 조금 수긍이 갔다. 자기가 한 선택인데, 누굴 원망하랴. 하지만 해결방법으로 자결을 선택한다는 건, 더군다나 '명예'의 수단으로 자결을 선택한다는 건 푸치니가 이 여성에게 과도한 '정절'을 요구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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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공연을 보기 전에 이러한 점을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대적 해석을 한다는 오페라단의 말을 보고 조금은 기대를 했었다. 물론 오페라단은 기존과 다른 방향으로 초초상의 이미지를 바꾸었을 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초상에게 부여된 지나친 낭만적 사랑을 사실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물론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주말연속극에선 여성의 모성적 희생이 강조되고, 오후 10시 드라마에선 캔디형-청순가련형의 여성들이 낭만적 사랑으로 인해 구원을 받는 서사가 히트를 쳤다. 이는 우리가 어릴 적부터 들어온 동화속 왕자님의 시나리오가 반복된 것이리라. 나비부인은 이 서사의 끝이 비극일 뿐이다.


2019년, 이 서사가 인기를 끌던 시대가 지났다. 하지만 '나비부인'은 이 서사가 어떤 것보다 훌륭하다고 자부한다. 이게 죄라고 할 순 없다. 그러나 백인-비백인, 돈 많은 남성-가난한 어린 여성, 서구-동양이라는 클리셰적인 요소가 어떤 진부한 서사와 만나는 순간,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넘어 왜 이 공연이 아직까지 온전한 형태로 살아있는지를 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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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나비부인



공연을 보는 내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배우들의 연기였다. 특히나 초초상 역을 맡은 배우의 연기는 몰입감을 높이다 못해 온 슬픔을 느끼게 했다. 과장되지 않으면서 그 시대에 어린 여성이 붙들을 수 있는 최후의 끈을 잡고 있는 심정을 잘 표현했다.


무대 또한 현대적이었으며 자포니즘에 맞게 일본풍의 느낌이 물씬 났다. 특히 나가사키 항구에서 핑커톤이 오는 모습을 본 초초상 위에 뿌려진 꽃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초초상이 자결할 때 흩뿌려지는 한 아름의 꽃 또한, 그의 비극을 한 층 더 강화시켜 주었다.


오페라 공연 답게 뛰어났던 것은 음악성이었다. 배우들의 아름다운 목소리와 오케스트라의 생생한 연주는 관객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가장 아름다운 소리는 결혼식 장면이었다. 아마 가장 밝은 느낌이었기 때문이리라.


따라서 우리를 불편하게 했던 줄거리에도 불구하고, 나비부인을 선택하는 이유는 종합적인 예술의 정점을 이루기 때문이리라. 오페라 하면 떠올리는 나비부인을 뜻깊은 페스티벌에서 보게 되어 매우 기뻤다. 앞으로 더욱 다채로운 나비부인을 볼 수 있길 희망한다.





[이다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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