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 시대의 멋진 사회인 되기 [사람]

글 입력 2019.06.03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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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을 벌려 놓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빠지기 일쑤인 사람들을 참 싫어했다. 조별과제 모임에 매번 불참하는 사람들, 기껏 면접까지 봐서 뽑혀 놓고 동아리에 참석하지 않는 사람들 말이다.

왜 비싼 등록금을 내고 학교를 다니면서 일을 저 모양으로 하는 걸까? 왜 자기가 해야 할 몫을 해내지 않는 걸까? 머릿속으로야 그들도 각자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 하면서도 과제와 시험이 겹쳐 나 혼자 PPT와 발표를 모두 감당해야 하는 시험 기간이 되면 팀원들을 저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왜 누군가는 열심히 모든 과제를 책임지고 밤을 새는데 누구는 다 던지고 애인과 벚꽃축제에 가는가?

당시에 내린 결론은 간단했다. 내가 더 잘 살게 될 거니까. 난 학점을 챙기고 싶었고, 대외활동도 깔끔하게 병행하고 싶었다. 당장 나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는 것. 그건 가장 객관적인 내 능력치의 지표였다. 그런 지표가 내 삶도 결정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 고등학생 때 맹목적으로 죽어라 내신을 챙기던 버릇이 대학생이 되어서도 여전했던 것이다.

졸업생인 지금의 나는 어떨까? 나는 아무래도 정확히 내가 싫어하던 그런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다. 뭐든지 적당히 요령껏 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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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준생이 되면서 대학생 때 가졌던 나의 의욕은 많이 죽었다. 뛰어들었다가 실컷 얻어맞아도 보고, 한 발짝 빼서 관망하기도 하면서 세상을 좀 더 신중하게 지켜보고 나니 아무래도 내가 뭘 죽어라 한다고 해서 바뀌는 건 딱히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오늘날 커뮤니티에 만연한 무기력증의 영향일까? 뭐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볼 때에는 이건 내 피곤한 성격이 주는 또 다른 영향도 큰 것 같다.

완벽주의적 성향을 가진 사람에게 우선순위를 매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동시에 다 챙길 수 있다면야 괜찮겠지만, 여러 가지 일이 겹칠 때 뭔가를 하나 버려야 한다는 것은 상당한 고통이다. 그래서 오히려 더 신나게 자기합리화로 열을 올리곤 한다. ‘저 포도는 어차피 신 포도였을 거야’, 대충 이 비슷한 합리화 말이다.

특히나 취준생들이 해야 할 일이란 건 명확하기보단 모호하다. 자격증을 따야 할까? 글쎄. 지금 하고 있는 활동이 미래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 글쎄. 넌 대체 뭘 하면서 살고 싶은가? 음, 글쎄. 이런 상황에서 나에게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란 뭐고, 좀 더 순서를 미뤄도 될 일은 무엇일까?

도저히 결정을 내릴 수 없다 보니 갈수록 내 자신이 미적지근하고, 특색 없고, 재미도 없고, 재능도 없는 사람이 되어 가는 것 같다. 하다못해 조별과제에 목숨 걸 때는 학점과 인정이라는 자부심이라도 얻었다. 지금은 노력하는 것도 아니요, 노는 건 더더욱 아닌 어정쩡한 인간이 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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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와서 생각하면 나를 호구로 만들면서 조별과제를 쿨하게 던졌던 그 사람들이 사실은 쿨한 마음이 아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사실은 우선순위를 정하는 데 도가 튼 사회인들이 아니었을까?

만일 그들이 진짜로 쿨한 마음으로 던진 것이었다면 그것이야말로 현명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책임진다고 해서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뭣하러 인생을 스트레스 받으며 사는가? 점차 뻔뻔함과 염치없음이 늘어가는 나, 훌륭한 사회인이 되어가고 있다.


[한민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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