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디즈니가 그리는 디즈니 세상 – 알라딘 [영화]

원작에서 한발짝 나아간 디즈니, 그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글 입력 2019.06.02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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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3일 개봉한 <알라딘>은 개봉 일 주일 만에 누적 관객수 184만 명을 동원하며 폭발적인 호응을 얻고 있다. 1992년작 디즈니 애니메이션 <알라딘>을 실사화한 이 영화는 27년만에 새롭게 리메이크되면서 원작의 장점을 살리면서도 메시지적인 측면에서 확연한 차이점을 보여준다. 최근 개봉한 디즈니의 작품들에서도 엿볼 수 있는 디즈니의 새로운 가치관을 담은 <알라딘>의 장면들을 지금부터 하나씩 살펴보고자 한다.




사소한 변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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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알라딘>은 화려하고 이국적인 아라비아의 한 왕국 ‘아그라바’를 배경으로 한다. 이 점은 원작과 실사가 동일하지만 영화 속에 등장하는 아그라바의 풍경은 사뭇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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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애니메이션 속 아그라바가 비교적 단조롭고 붉은 빛의 통일된 색감을 주는 한편, 실사 영화 속 아그라바는 알록달록한 색의 건물과 화려한 장식, 반짝이는 조명 등 원작과 비교해 더욱 생동감 있고 다채로운 풍경을 담았다.


다음으로 눈에 띄는 것은 사소한 내용적인 변화다. 원작에서는 초반부 알라딘이 ‘One Jump Ahead’를 부르며 빵을 훔쳐 달아나는 장면과 알라딘이 처음 궁전을 빠져나와 곤경에 처한 공주에게 반해 그녀를 도와주는 장면을 분리해서 전개하고 있다.


하지만 실사 영화에서는 두 장면을 하나로 합쳐 시장과 길거리를 무대로 한 알라딘과 자스민의 만남을 생생한 속도감과 경쾌한 리듬으로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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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자파가 마법 지팡이로 술탄에게 주술을 거는 것이 들통나 궁전에서 쫓겨난 이후 램프를 훔치기 위해 온갖 계략을 꾸미고 돌아오는 장면에서도 원작과 실사 영화의 차이를 찾아볼 수 있다.


우선 원작에서는 자파의 곁을 지키는 앵무새 하인 ‘이아고’의 역할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실사 영화와 비교해 확실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는 이아고는 자파가 램프를 손에 넣는 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데, 공주의 목소리를 흉내내며 알라딘을 꼬여내는 등 익살 맞고 재치 있는 면모를 보여준다.


다른 한편, 실사 영화에서는 길거리 출신이라는 설정이 추가된 자파가 시장 한가운데에서 알라딘이 가지고 있던 램프를 직접 훔치는데, 이 장면은 야망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파의 교활함이 더 강조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자스민의 존재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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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의 원작과 실사영화의 비교는 풍경에서 시작해 사소한 설정까지 다양한 변화를 찾아내는 재미가 쏠쏠하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변화를 한 가지 꼽자면 ‘자스민’이라는 캐릭터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원작에서 자스민은 당돌하고 똑부러지는 성격을 지닌 캐릭터로 나오지만, 스토리에서 그녀가 수행하는 역할은 지극히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모습에만 그쳤다. 호랑이를 길들이고 임기응변으로 위기상황을 대처하는 모습에서 보여지는 자스민의 현명함이 그저 그녀의 여성적 매력과 아름다움의 한 부분으로만 결론 지어진다는 사실은 안타까움을 넘어서 화가 나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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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아까운 설정을 가진 ‘자스민’이라는 캐릭터가 진가를 발휘하는 것은 실사 영화에서이다. 극 초반부에서 결혼을 강조하는 술탄에게 받아 치는 대답에서부터 원작의 자스민과 실사 영화의 자스민 사이의 극명한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원작 자스민이 결혼을 권유하는 술탄에게 강제로 결혼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이유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와 대조적으로 실사 영화의 자스민이 결혼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그동안 줄곧 아그라바를 지켜 본 자신보다 더 이 왕국을 사랑해줄 왕자는 세상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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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은 아주 사소한 대비로 보이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모든 변화가 시작된다.


원작의 자스민이 낭만적 사랑과 운명의 상대라는 환상에 빠져 있는 동안 그녀는 결코 용납할 수 없었던, ‘자신을 물건처럼 흥정하는 것’을 허락했고, 왕국을 위험에서 구해 낸 알라딘에게 자신을 보상으로 하사하는 것을 기쁜 마음으로 동의했다. 결국 그녀가 자신을 ‘물건 취급’하는 것에 화를 냈던 이유 역시 혼인을 두고 하는 흥정은 ‘진정한 낭만적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다.


반면 실사 영화의 자스민은 진정한 사랑이라는 환상을 갈망하며 안식과 기쁨을 안겨주는 보조적인 위치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라를 보살필 수 있는 주체로 인정받는 것이다. 아그라바에서 나고 자라며 모든 것을 지켜봐 온 자신이 아닌 자스민의 미모에나 감탄할 줄 아는 타국의 왕자들이 아그라바를 다스릴 술탄의 자격이 있다는 것은 자스민에게 너무나 말도 안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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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출발한 모든 분노가 폭발하는 장면이 바로 자스민이 ‘Speechless’를 부르는 장면이다. 노래가 끝나고 하킴을 설득해 위기 상황을 헤쳐 나가려는 자스민의 모습은 원작의 자스민이 미인계로 유혹하고 자신을 인질 삼아 희생하며 알라딘의 활약을 도우려던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 2019년의 자스민은 카리스마와 위엄으로 지도자의 위치에서 위기를 마주한다.


*


2019년의 <알라딘>이 27년 전에서 얼마나 나아가고 변화했는가를 보여주는 부분은 아라비아 현지 억양을 구사하는 배우 캐스팅, 정치와 전쟁에 관한 가치관 등 여러 측면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진보적인 변화를 뒤로 하고, 여전히 결정적인 순간에 모든 위기를 해결해내는 영웅은 역시나 남자 주인공 알라딘이라는 점에서 우리가 어디에서 출발해 지금 어느 위치에 서있는지 조금은 짐작해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영화에 쏟는 애정이 큰 이유는 2019년의 <알라딘>을 통해 디즈니가 앞으로 걸어 나가려는 방향이 어느 곳을 향해 있는지는 분명하게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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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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