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당신의 동기는 무엇입니까? [사람]

"왜?"에 대한 답이 필요하다
글 입력 2019.05.28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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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를 하러 카페에 갔다. 카페 안은 저마다의 할 일을 짊어진 사람들로 붐볐다. 겨우 자리를 잡고 메뉴를 주문하려는 찰나, 머릿속에서 두 가지 선택지가 둥둥 떠다녔다. 평소대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할지, 아니면 얼마 전 받은 기프티콘을 사용할지, 아니면 신메뉴에 도전해볼지. 내 앞에서 다섯 명이 메뉴를 주문할 동안 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결국 주문대 앞에서 약 3초간 더 고민을 하고,

“아이스 아메리카노 작은 거 하나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쪽쪽 마시며 노트북을 켰다. 새하얀 한글 창을 띄워 두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새 입학보다 졸업이 가까운 학년이 되었는데, 어째 1학년 때보다 더 갈팡질팡 길을 헤매는 것 같아서 착잡해졌다. 다시 한 번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내가 결정해야 할 일들에 대해 생각해봤다. 작게는 오늘 할 일, 이번 주 할 일, 크게는 진로와 직업까지. 어쩌다보니 이런 결정의 굴레 안에 들어오게 되었지만 나는 아직도 아메리카노와 기프티콘 사이에서조차 갈등하는 존재라는 게 참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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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 동기는 무엇입니까?


얼마 전, 자기소개서를 쓰기 위해 파일을 열었다가 30분 동안 고민만 했던 적이 있다. 1번 문항, 지원 동기에서 막혀 하얀 화면만 뚫어져라 바라보며 눈만 깜빡였다. “왜?”라고 질문한다면 나는 “글쎄, 그냥...?”이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하등 일관성 없던 나의 이력을 어떻게든 조합해 1번 문항을 채우긴 채웠는데,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의문이 해소되지 않았다. “왜?”에 대한 의문이.


왜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나? 커피를 마셔야 정신이 나기 때문이다.

왜 뮤지컬을 좋아하나? 무대에서 뿜어내는 에너지가 환상적이기 때문이다.

왜 인턴에 지원했나? 글쎄... 솔직히 말해도 되나?


세 질문 중 가장 답하기 쉬웠던 질문은 2번이었다. 어쩌면 ‘왜?’라는 질문의 답을 규정하는 건 자발성이 아닐까 싶다. 모든 결정에는 이유가 생기기 마련이고, 이유가 생기려면 그 누구도 아닌 내가 주도적으로 결정을 해야 하는 법이다. 아메리카노를 마시든, 자몽 허니 블랙티를 마시든, 뮤지컬을 좋아하든, 연극을 좋아하든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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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원서를 쓸 때 난 비교적 고민을 적게 한 편이었다. 뚜렷한 목표가 있었고, 학교 이름보다 과가 더 중요했기 때문에 정말 쉽게 원서를 작성했다. 다행히도 목표한 과에 합격하게 되어 1월과 2월을 참 행복하게 보냈다. 단순하고 납작한 부사지만 그 두 달을 설명해 줄 언어는 ‘행복하게’ 외에는 없는 것 같다. 성취감과 해방감을 동시에 느끼는 것만큼 후련한 감정도 없다. 이유 없이 우울해지지도 않았고, 막연하게 불안해하지도 않았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대학에 입학한 후 내가 지난 19년 동안 살아왔던 방식과 전혀 다른 삶이 펼쳐졌다. 아주 작은 것부터 아주 큰 것까지 내가 주도적으로 결정해야 하는 삶이었다. 정해진 시간표대로 움직이고, 정해진 시험범위를 정해진 공부 방법대로 공부하면 정해진 등급에 따라 성적이 매겨지고, 정해진 매커니즘에 따라 대학이 결정되는 삶은 조금 답답하긴 했지만 상당히 편안했다.

딱히 거대한 무언가를 목표하지 않아도 살아가는 데 전혀 지장이 없었던 날들이었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온 후 마주한 20대는 달랐다. 목표가 없으면 걸음할 수 없는 삶이 찾아왔다. 결정하는 법을 잊어버린 나는, 어쩌면 처음부터 몰랐던 나는 열심히 방황하기 시작했다. 



속 빈 토닥임, 그 유해성에 관하여


몇 년 전 내가 즐겨 봤던 드라마 ‘미생’의 한 장면을 얼마 전에 다시 보게 되었다. 대책 없는 희망이, 무책임한 위로가 무슨 소용이냐는 오 과장의 말이 뒤통수를 강타했다. 언젠가 될 거야, 괜찮아, 열심히 살다 보면 성공할 거야. 절대 가벼울 수 없는 말들이 자꾸만 허공을 맴돈다.

큰 확률로, 이런 말들의 발화자는 가까운 지인이라기보다 내 인생에 하등 상관이 없을 타자다. 내가 실패하든, 성공하든, 행복하든, 불행하든 크게 상관치 않을 제3자다. 인생이 희극이 아니라 비극이라는 것을 알 만큼 가까이 있는 사람이라면, ‘잘 될 거야’라는 말을 그리 쉽게 뱉을 수 없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기계발서로 삭막했던 서점이 이제는 힐링서로 빛난다. 알록달록한 표지, 보기만 해도 마음이 녹아내리는 것만 같은 제목, 깊게 공감 가는 한 줄 글귀까지, 어디 하나 빠질 데 없이 예쁜 책들이다. 하지만 어딘가 묘하게 불편하다. 점점 힐링서가 서점 가판대를 채워가는 모습을 보며, 유행을 넘어 성격으로 자리 잡는 과정을 보며, 약간의 유해함을 느낀다. 이는 ‘청춘이니까 달려라, 아파라!’ 라며 채찍질하는 책들이 불편했던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예전에는 철저하게 자신의 관점으로 쓰인 자기계발서가 마치 온 세대 청년에게 조언하듯 내려다보는 시선이 불편했다.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에 공감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청춘은 도전할 만한 나이고, 후회나 상처를 밑거름 삼아 성장하는 것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몇몇 자기계발서들은 마치 도전하지 않는 청년은 20대로서의 가치가 없는 것 마냥 혼을 냈다는 게 문제다. 결국 그 채찍질의 도착점은 힐링서인가, 싶다.

대책 없는 희망과 의미 없는 위로가 유해한 이유도 이와 같다. 내가 갈등하는 이유, 내가 고민하는 이유는 나의 삶이 내 손에 담기기엔 너무나 거대해졌기 때문이다. 우리 삶은 아메리카노와 자몽 허니 블랙티보다 복잡하다. 공연의 호오를 가리는 것보다도 어렵게 얽혀있다.

지금 이 순간에서 나에게 필요한 것은 ‘괜찮아. 쉬어도 돼.’ 류의 위로가 아니라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그리고 그 답을 고민할 만큼의 시간과 여유다. 하지만 그 시간과 여유는 ‘괜찮아.’에서 오지 않는다. 결국 내가 만들어야 할 여유고, 내가 결정해야 할 삶이다.

*

결국 인턴 자기소개서까지 다 써 놓고 지원은 하지 않았다. 자기소개서 쓰느라 버린 시간을 합치면 오피니언 다섯 개는 족히 마감했을 터다. 하지만 20대, 청춘, 이런 화려한 단어로 내 갈등을 변호해본다. 나에게 필요한 건 ‘힐링’이 아니라 결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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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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