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낯선 사람이고 싶었으나 벗어날 수 없는 사람. 연극 "낯선 사람"

글 입력 2019.05.22 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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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낯선 사람이고 싶었으나 벗어날 수 없는 사람.
낯선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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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유럽 연합군이 산둥지역을 침략하여 베이징 외곽에 도착했다. 이들은 중국의 의화단과 전쟁 중이다. 오스트리아 연합군 장교 울리히는 이들을 진압하고 있다. 젊은 중국인 혁명가 천샤오보는 자신의 나라에서 유럽 연합군이 곧바로 철수할 것을 요구하며 맞서 싸운다. 결국 울리히에게 붙잡힌 천샤오보는 사형장으로 끌려간다. 하지만 그는 가까스로 살아난다.

시간이 지나 현재, 울리히는 손녀와 리웨이가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를 연습하는 것을 보고 있다. 울리히는 오페라에서 혁명가를 사형집행하려는 경찰 스카르피아를 보고, 오스트리아 연합군 장교였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 순간 천샤오보가 그의 눈앞에 나타난다. 울리히는 천샤오보를 다시 사형대에 세우고 총살하려고 한다. 하지만 오페라는 멈추지 않는다. 결국 총소리가 울린다. 그리고 무대는 다시 현재로 바뀌고 그곳엔 익숙한 누군가가 쓰러져 있다.




낯선 사람이었으면 더 좋았을 이야기

이따금 만나기 원하지 않던 사람을 마주했을 때, 그 사람과 아예 모르는 사이, 낯선 사람이길 바라는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그 사람과의 엮인 나의 과거가 사라지길 바라는 그런 마음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연극 <낯선 사람> 속 울리히에게 천샤오보는 그런 존재였을 것이다. 낯선 사람으로 두고 싶은 사람, 자신의 추악한 과거를 다 알고 있는 사람, 그래서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사람 말이다. 그러니까 울리히는 천샤오보를 낯선 사람으로 정의 내리고 싶었을 것이다. 천샤오보는 목격자이기 때문이다. 울리히의 가장 추악한 과거의 산증인 말이다.

울리히가 마주한 천샤오보는 실제 존재는 아니다. 그녀의 생존과 삶은 알 수 없다. 울리히가 놓아준 이후로 잘 살 수도, 다른 군인에 의해 사망했을 수도 있다. 확실한 것은 울리히의 인생에 깊이 박힌 인물이 되었다. 울리히는 군인이었고, 울리히는 자신이 받은 명령을 제대로 수행했으며, 동시에 트라우마를 겪게 된다. 추악한 과거에 대한 죄책감으로 가득 찬 것이다. 죄책감이 만든 존재 천샤오보, 천샤오보가 떠나고 싶어도 울리히가 불러들인다는 말처럼, 울리히의 평생은 죄책감과 함께였다.

치매에 걸려 잊고 싶으면서도 문득 떠오르는 과거, 그리고 그 과거 속에서 자신의 행위를 목격하고 합리화하고 싶은 마음, 끝내 불안정한 마음속 죄책감으로 이어지는 울리히의 행동들은 비난하고 싶으면서도 쉽게 비난이 떨어지지 않는다. 과연, 그는 그 당시에 어떻게 했어야 했을까. 명령 불복종을 했어야 했을까. 모든 사람들을 놓아주어야 했을까. 개인의 양심에 모든 것을 맡기기엔 그 시대가 그에게 그러한 자유를 주었는가. 전쟁범죄인에 대한 용서는 절대 아니다. 내게는 할 수 있는 권한도 없다. 그저 범죄 무게에 대한 생각을 해야 할 것이다.

서열이 높은 사람들의 결정들이 만들어낸 최악의 상황인 전쟁, 이익을 위해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사람들만이 괴로움에 휩싸여야 하는 상황, 그러한 부분에 대한 생각을 하게 했다. 분명 가해자이나 그 역시 전쟁이 만들어 낸 괴물이었기에, 우리가 전쟁, 민간인 대학살이라는 키워드에서 어떻게 진상 규명이 이뤄져야 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했다. 자신의 손에는 피를 묻히지 않고 그 이득만 채간 그런 사람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본 연극에서 다루는 중국의 의화단 운동은 청나라 말기에 일어난 외세 배척운동이다. 이러한 위화단 운동 이후, 외세에 진 청나라는 열강에 배상금을 지급하고 중국 내 군대 주군을 허락하는 내용의 조약을 맺게 되고 중국의 반식민지 상태가 심화되었다. 위화단 운동은 중국인들이 맨손으로 총을 든 유럽 연합군에 대항했다고 한다.

무기가 있는 쪽과 무기가 없는 쪽, 저항을 막는 자와 저항하는 자, 강자와 약자, 무차별적인 학살로 이어지는 이야기, 또한 그들을 혁명군이라며 기존의 것을 부수고 싶어 한다는 이유로 혁명군이라 칭하며 배척하는 모습의 이야기, 낯선 이야기였으면 하지만 우리의 역사 속에서 찾아볼 수 있음에 슬프다. 그러니까 낯선 역사였으면 더 좋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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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지 않은 이야기, 우리의 역사

지난 주말,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39주년 되는 날이었다. 39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 당시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진상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구체적인 사과도 없었다. 본 연극 속 등장한 위화단 운동과 우리의 역사 속 광주 민주화 운동은 똑같은 사건은 아니나 접하는 부분이 있다. 약자들에게 드리워진 총의 그림자다.

무장한 군인을 이길 수 있는 민간인은 얼마나 될까. 그러니 상대적으로 약자가 될 수밖에 없다. 그 약자가 내는 목소리가 기존의 굳건한 것을 부수기 위한 목소리였다면 그 약자는 강자의 타깃이 되고, 저격 당한다. 이따금 이 땅, 우리나라에서 그러한 일이 있었다는 것을 잊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 순간을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하나다. 그러한 일이 당연한 일처럼 여겨지면 안 되기 때문이다.

과거의 역사 속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참혹한 사건에 대해 생각하고 다시는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기존의 질서에 반하는 목소리를 막지 않도록, 다양한 목소리들이 세상에 나오는 것이 당연하도록, 5.18 민주화운동은 그렇게 역사적 큰 획을 그었다. 본 연극의 기획의도에 5월 광주가 명시되는 만큼, 본 연극에서 찾아야 할 메시지 중 하나는 뚜렷하게 보고 왔다.



뚜렷한 연출적 감성, 그리고 아쉬움

무대를 포괄적으로 넓게 사용하는 것, 그리고 음향이나 무대 구성, 장면 전환 등 꽤나 무거운, 그리고 깊은 주제를 다루다 보니 연출 자체에서도 상당히 극적인 모습이 많았다. 무대 정중앙에 사형장에 계속 위치해있는 것처럼 말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 위에 있는 인간의 고찰을 연출로 상당 부분 잘 표현되었고, 그에 대한 노력을 내가 느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다. 개인적으로 암전이 잦고, 또 길었다고 느껴졌다. 전반적으로 힘이 가득해서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리고 가장 아쉬운 것은 오페라와의 결합이다. 연극이지만 노래를 하고 오페라를 선보이는 장면이 등장한다. 실제 오페라와 같은 무대를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극 중 배우가 오페라 가수라는 설정에서 그 부분은 꽤나 배우에게 부담이 되지 않을까 싶다.

복합적인 장르의 무대를 한 곳에 선보이게 되었다면 좀 더 '오페라'라는 명칭에만 집중하기보다는 실제적으로 '오페라'라는 장르가 가진 특성에 대한 결합이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다양한 문화 장르를 한 무대 위에서 보는 것은 관객으로서 즐거운 일이지만 부족한 무대는 그 장면이 유독 어색하게 느껴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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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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