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 감독이 영화로 예술을 하는 방법 [영화]

글 입력 2019.05.17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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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밴드 oasis의 음악들 중에서도 나는 Wonderwall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거기에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냥, 노엘 갤러거가 부른 Don't look back in anger를 보고 그 노래에 흠뻑 빠졌을 뿐이고, Let there be love의 가사를 듣고 투박한 형제로부터 위로를 받았으며, Some might say를 들으면서 시원한 해방감을 느꼈을 뿐이다.


나의 오아시스 사전에는 그렇게 Wonderwall이 들어올 자리가 넉넉지 않았다. 영국 국가로도 불릴 만큼 명성이 자자한 명곡치고는 상당히 푸대접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랬던 나의 사전에 Wonderwall이 진하게 새겨졌다. 그것도 아주 굵은 글씨로. 정말 진하게. 그리고 그 밑에는 이렇게 적힐 것이다.


XAVIER DOLAN이

나를 Wonderwall의 세계로 이끌었다

그것은 그의 영화 "마미"를 본 그 이후이다


자비에 돌란(XAVIER DOLAN). 그가 나에게 예술의 새로운 길을 건네었다.


 
*
이 글에는 영화 <마미>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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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선택한 음악에는 이유가 있다


자비에 돌란 감독의 영화 속 모든 음악은 영화를 보다가 탄식이 나올 만큼 정말 탁월하다. 그가 선정한 모든 음악은 곧바로 영상의 장면들 속에서 그들과 함께 스며든다. 내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던 Wonderwall을 하루에도 몇 번씩 듣게 하고, 영화 속 그 장면을 떠올리게 만드는 것처럼, 그는 영화와 음악을 하나의 몸통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러한 점이 매력적이라는 표현을 넘어서 경이롭다.

그는 노래의 가사에 주목한다. 인물의 대사와 동일하게, 흘러나오는 음악의 가사 또한 자막으로 표시된다. 이는 인물의 대사 못지 않게 지금의 음악 또한 영화 상에서 크나 큰 비중을 두고 있음을 가늠하게 한다. 감독이 주고 싶은 메시지를 음악으로 대신하는 느낌이다. 그래서 계속해서 가사에 집중하게 만든다.

그리고 놀라운 점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 명곡을 어떻게 전혀 어색함 없이 영화에 어우러지게 녹여낼 수 있냐는 점이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의 저마다의 사연으로 기억될 이 노래를 어떻게 <마미>라는 작품의 일부분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냐는 것이다. 마치 이 영화를 위해 이 노래가 특별히 제작된 느낌처럼. 이 영화의 OST로 Wonderwall이 유명해진 건 아닐까 하는 착각까지 불러일으키게 한다.


Wonderwall의 익숙한 전주가 흘러나오고, 노래 가사가 적히면서, 영화는 한 편의 뮤직비디오가 된다. 그런데 음악을 표현하기 위한 비디오로서의 기능에 그치지 않고. 음악과 화면, 그 둘이 서로 하나가 된다. 그 둘이 서로의 작품이 된다. 그 점이 특별하다.


영화 속 Woderwall



이 장면에 등장하는 '스티브'와 그의 엄마 '다이', 이웃 주민이자 스티브의 홈스쿨링 선생님 '카일라', 셋은 자유로워 보인다. 날씨 좋은 하늘 아래서, 셋이 함께 자전거와 보드를 타는 장면이 특히 그러하다. 그리고 이런 행복이라는 감정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은 영화 내에서 매우 드물다.


분노조절 장애와 ADHD, 애착 장애를 갖고 있는 스티브는 기숙학교에서 방화를 저지르는 죄를 지은 후 귀가 조치 된다. 그의 엄마 다이는 최근 일자리에서 잘렸다. 감정적인 스티브와 크고 작은 마찰을 마주하면서 위험한 상황까지 겪게 된다. 그때 이웃 주민 카일라가 다친 스티브를 치료해준다. 그때가 시작이었다. 각자가 현실 속 압박과 아픔을 겪고 있던 중 서로를 만나게 되면서, 전에는 누리지 못했던 행복과 여유를 잠깐 누리게 되는 순간. 그리고 이 장면이 바로 그 '잠깐'의 순간이다.


아마 스티브와 다이 모자에게 카일라는 "구원자"의 의미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카일라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는 과거의 충격으로 인해 심한 말더듬증을 앓고 있고, 그로 인해 교사 생활 또한 쉬고 있다. 그런 그가 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되면서 말 더듬는 증상이 점차 호전된다. 카일라가 스티브와 다이의 집에 처음 초대된 날,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 동네로 이사 와서 밤 외출은 처음이야."


그리고 이 곡의 가사는 이들의 상황과 심정을 대변하는 데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오늘 비로소 너는 그들에게 버림받겠지

지금쯤 감이 올 거야 네가 뭘 해야 할지

그 누구도 지금 나처럼 너를 생각하지는 않아


네 마음속 불길이 사그라졌다고들 하더군

너도 이미 들었겠지만 넌 그냥 그러려니 했지

그 누구도 지금 나처럼 너를 생각하지는 않아


우리 함께 갈 길이 구불구불 험하고

우리 앞의 모든 빛이 사라지더라도

너에게 해 주고픈 이야기가 참 많은데

어떻게 풀어낼지 막막해


그 이유는 어쩌면

언젠가는 네가 나를 구원해 줄 것만 같아서

그래서 먼 훗날 너는

내 Wonderwall이야



그렇게 Wonderwall이 흐르는 중간에 흥미로운 장면이 등장한다. 스티브가 직접 두 손으로 화면의 답답한 프레임을 열어 걷힌다. 이 장면으로 인해 우리는 알 수 있다. 왜 극의 처음부터 영화가 1:1 화면으로 전개되었는지. 왜 그토록 답답한 화면 구성이 계속되었는지.


이 검은 프레임은 이들이 겪는 현실의 압박이다. 현실의 고통이자 벗어나고픈 '알의 껍데기'이다. 그리고 스티브는 이 알을 스스로 열었다. 그리고 이 장면은 극 중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현실을 잊고 현재의 행복을 만끽하는 '열린' 순간이다.




시각적 효과에 담긴 자비에 돌란의 메시지



스티브는 다이와 카일라와 함께 행복을 누리며 현실의 프레임을 스스로 열었지만, 16:9 비율의 시원한 장면은 채 5분을 지속되지 못한다. 셋이 함께 음식을 만들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중, 한 통의 편지가 전달된다. 다이는 소란스럽게 음식을 만드는 둘을 남기고 편지를 받으러 간다. 그 편지에는 스티브가 방화로 인해 자신의 아이가 화상을 입었으니 거액의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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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는 시끌벅적한 주방을 바라본다. 그리고는 씁쓸한 미소 아닌 미소를 짓는다. 원망 아닌 원망을 하는 듯도 보인다. 하지만 아무 내색 않는다. 그러는사이 어느 새 걷혀져 있던 검은 색 프레임은 다시 화면의 좌우를 가득 메웠고, 그렇게 그들은 다시 현실 속 벽과 맞닿게 된다. 온통 어두운 화면 속에서 'Mommy'의 목걸이만 반짝반짝 빛이 난다.


다이는 이후 법률적, 금전적 도움을 받기 위해 알고 지내던 변호사와의 자리를 마련한다. 하지만 스티브는 변호사와의 자리까지 망쳐버리고, 다이는 결국 폭발하고 만다. 스티브는 다이와 다툰 후에 종적을 감추고, 다음 날 집에 돌아와 이렇게 말한다.



"언젠가는 엄마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거야. 진짜로 나를 사랑하지 않게 될 거야. 하지만 나는 항상 엄마를 위해 살게. 엄마가 내 1순위야."


 

그후 함께 장을 보러 간 자리에서 스티브는 칼을 훔치고, 그 자리에서 자신의 손목을 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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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가 생각한, 엄마를 위해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구원은 죽음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구급차에 앉아 호흡기를 차고 있는 스티브를 바라 보는 엄마 다이는, 아주 아주 깊은 생각에 잠겨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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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가 회복된 스티브와 다이, 카일라는 함께 여행에 나선다. 큰 차도 빌리고, 피크닉 음식도 준비하고. 차에 올라 타 신나 하는 스티브를 보며 다이는 망설임 끝에 이렇게 말한다.



"엄마가 아들을 덜 사랑하게 될 일은 없어. 내 말 이해 돼? 시간이 갈수록 엄마는 너를 더 많이 사랑할 거야. 넌 갈수록 엄마를 덜 사랑하겠지만. 안생이란 게 원래 그러니 우리가 적응해야지. 그게 세상 섭리란다. 너도 언젠가 깨닫게 돼."



나는 이때까지 이 말이 지난날 아들에게 화를 낸 엄마의 진심어린 사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모습을 바라보는 카일라의 어두운 뒷모습에서 무언가 불안한 감정이 느껴졌다.


그렇게 그들은 떠난다. 그리고 앞서 말한 흥미로운 1:1 프레임 방식과는 또 다른, 흥미로운 시각적 전환이 등장한다.





길을 나선 이들이 현실을 이탈해서일까. 화면 속 어두운 프레임이 또다시 걷힌다. 그리고 넓은 자연 속에서 스티브와 카일라는 뛰놀고, 다이는 그 모습을 그대로 가만히 바라본다. 이내 행복이 펼쳐진다.


아들은 학교를 졸업한다. 그는 애인을 소개하고, 합격 통지서를 받고, 카일라에게 달려간다. 그는 비 내리는 하늘을 향해 소리친다. 비를 맞으며 서 있는 스티브를 보여주며 화면은 잠시 초점이 불분명해진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초점 속 스티브의 모습은, 다르다. 그는 소년에서 어른이 된다. 바로 이 장면이다.


아들은 성장했다.


그는 이후 엄마의 끝없는 잔소리의 입술을 막고, 엄마의 곁을 떠나고, 아이를 낳고, 결혼을 한다. 행복한 엄마의 모습. 카일라의 모습도 보인다. 하지만, 또 다시, 프레임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답답한 비율로 까맣게 좁아진다. 행복을 앗아가려는 듯 좁아지는 프레임과 동시에 보이는 다이의 불안한 시선. 그리고 작은 소리가 들린다. 이렇게 외치는 듯 하다.


엄마, 엄마.


그리고 다이는 그렇게 다시 갇힌 현실로 돌아오게 된다.


이 장면을 보고 많은 눈물을 흘렸다. 나는 그 장면들을 현실이라고 믿었다. 어떻게 배상금도 잘 처리가 되고, 스티브는 학교에 가 졸업을 하고, 카일라와 열심히 공부한 덕에 원하는 대학에 합격을 하고, 애인을 소개하고, 아이를 낳고, 결혼도 하게 되는, 다이가 꿈꾸던 정말 일상적인 순간들. 그런데 그 속에서 앞서 말한 엄마의 말이 떠올라서, 그래서 계속해서 눈물이 났다.


엄마는 여전히 아들만을 바라보지만, 아들은 그런 엄마의 곁을 떠난다. 아들은 애인이 생기고 아이도 생기고, 아들의 곁에는 점점 사랑해야 할 존재들이 늘어난다. 하지만 엄마의 눈 속에는 여전히 아들만이 담긴다. 그런 '세상의 이치'가 보여서, 엄마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을 것 같아서, 그런 엄마의 마음이 보여서 계속해서 눈물이 났다. 하지만 현실로 돌아온 이들의 모습은, 여전히 곁에 있지만 그것이 더 불행해 보여서, 그래서 그 모습이 더욱 아프고, 슬프고, 안타깝다.


이들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 앞서 불안했던 카일라의 뒷모습이 말해주듯이, 그들의 목적지는 여행지가 아닌, 일종의 병원이었고, 감금시설이었다. 스티브는 눈치를 채고 욕설을 뱉으며 도망치고, 관계자들은 전기 충격기를 들고 그를 통제하려 들었고, 다이는 울부짖었고, 카일라는 그 모습에 충격을 받는다.


자신의 손목까지 그은 아들을 엄마는 더 이상 통제할 자신이 없었을 것이다. 이미 다이의 앞에는 너무 많은 장애물들이 늘어서 있다. 엄마는 아들을 사랑해서 그런 선택을 했을 것이다.

 

이로 인해 아들은 엄마를 덜 사랑하겠지만, 엄마는 여전히, 어쩌면 더욱 아들을 사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결국, 음악



다이는 그렇지만 그러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계속해서 일을 했고, 일상을 살아갔고, 죄책감 속에 이사를 떠나는 카일라에게도 떳떳하게 말한다. 나는 앞으로의 희망을 보았다고. 나는 희망에 차 있다고. 스티브를 포기한 게 아니라고. 내 삶에서 나는 언제나 승자라고. 세상에는 희망이 넘치지는 않지만, 끊임없이 희망을 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고.


나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는, 자신은 가족을 버릴 수 없었다는, 어쩌면 원망스러운 말을 뱉는 카일라의 앞에서도 다이는 이렇게 떳떳하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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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덤덤히 카일라를 보낸 후, 떠나는 뒷모습을 훔쳐보며 다이는 소리 죽여 흐느껴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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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기 스티브는 두 손이 묶인 채 시설에 격리되어 있다. 스티브는 그때 문 건너편의 노을 진 햇살을 멍하니 바라본다. 관계자들은 잠시 한눈을 팔고 잡담을 나누고 있고, 그 사이 스티브가 잠깐 웃는 듯도 하다. 관계자가 농담을 주고받으며 스티브의 옷을 정리하는 그 순간, 스티브는 옷을 벗어 던지고 노을 진 문을 향해 돌진한다. 사람들은 달려오고, 스티브는 문을 향해 뜀박질한다.

그리고 바로 지금 이 노래가 등장한다. Lana del rey의 Born to Die.

Born to die. 우리는 죽기 위해 태어났다.
동시에 Born to "DIE". 나는 다이를 위해 태어났다.

즉, 엄마를 위해 태어났다.

그렇게 자비에 돌란 감독은 또 한 번, 음악으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대신한다.




지금은 아직 걸을 수 있어

날 끝까지 데려가 줘

내딛는 걸음마다 내 심장은 무너져 내려

하지만 저 문들은 내게 당신이 내거라 말해 줄거야


도시의 거리를 걷고 있어

이게 실수인건지, 아님 계획된건지

금요일 밤엔 너무나 외로워

내가 널 내거라 말하면

날 집에 온 것처럼 편안하게 해줘

내가 너를 자기라고 부른다면


날 슬프게 하지마

날 울게 하지마

때론 사랑은 부족하고 알 수 없는 어려움이 있지


날 계속 웃게 해줘

나와 함께 취해

가야할 길은 멀지만 가는 동안 행복해져야 해


이 길을 같이 걷자

쏟아지는 빗속에서 키스 해줘

넌 정신나간 여자를 좋아하지


마지막 말을 생각해 둬

이게 마지막이니까


너와 나, 우린

죽기 위해 태어났으니까



나는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끝까지 앉아, 작품이 완성되는 마지막 장면을 그저 멍하니 보고 들었다.


그리고 그건, 그 동안 수많은 영화를 보면서도 처음 느낀 감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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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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