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반복되는 일상에 균열을 내고 싶을 때 - '안 봐도 사는데 지장 없는 전시'

글 입력 2019.05.13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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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균열하나 없는 인생,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가는 청춘의 앓는 소리가 늘어가는 요즘이다. 누군가는 그러한 인생에 복받은 줄 모르고 감사할 줄 모르는 이들의 배부른 소리라 손가락질할 수 있다.


그렇지만 개인이 느끼는 불행을 상대적으로 재단하고 평가할 순 없다. 지루함과 평탄함에서 비롯된 괴로움 또한 개인을 충분히 우울함으로 잠식시킬 수 있다. 이전에 읽었던 양귀자 작가의 소설 ‘모순’에 나오는 주인공 안진진의 이모가 그러한 우울함에 잠식되는 인물이기도 했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지루함을 느끼고 새로운 것을 찾도록 설계되어있다고 믿는다. 그 새로움이라는 건 거대한 것이 아니라 기존의 것들에 반하는 무언가라는 말이다.


나 또한 요즘 들어 반복되는 일상과 반복되는 책임감 같은 것에 싫증이 나기 시작했었다. 나에게는 그럴 때마다 일상에 균열을 내주는 무언가가 필요한데 전시를 보는 것이 그 무언가들 중 하나의 괜찮은 방안이었다. 그러다 좋은 기회로 ‘안 봐도 사는 데 지장 없는 전시’를 볼 수 있었다.


사람은 경험한 만큼 보인다 그랬다. 근래 들어 반복되는 일상, 지치는 등하굣길 및 아르바이트 출퇴근길 위주로 점철된 내 일상에 이골이 나는 시기를 지내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중에서도 유독 지하철이나 대중교통과 관련된 사람들의 출퇴근길을 묘사한 작품들이 기억에 오래 남았다.


먼저, 이형준 작가의 작품이었다. 일상을 주제로 하는 전시이기에 하루의 시간대를 기준으로 전시장의 섹션을 나눴다. 이형준 작가님의 작품은 오전 8시에 배치되어있다. 나는 주로 작품을 먼저 보고 작품의 설명문을 읽는 편이다. 그래야 작품을 보고 온전히 내가 느낀 것과 작가의 의도를 비교하면서 순수하게 즐길 수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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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준 작가님의 작품을 보자마자 한동안 그 자리에서 멀찍이 바라보았다. 그리곤 다시 다가가 작품의 세부적인 패턴과 같은 질감을 보기 위해 가까이에서 찬찬히 살펴보았다. 빨강과 파랑 색채의 조합이 좋았다. 붉은 색채에서 푸른 색채로 물들어가듯 바뀌는 패턴 변화가 나의 일상과 비슷해 보였다.


활기차게 출근길 혹은 등굣길을 나서는 내 예전 모습에서 지치고 피곤하고 무감각한 일상의 패턴으로 바뀌는 과정이 하나의 작품 안에서 느껴졌다. 그렇게 한동안 한자리에서 못에 박힌 듯 감상하다 작품 설명을 읽었을 때 따뜻한 위로를 느꼈다.

에세이와 같은 작품 설명을 잠깐 들여다보자면,



‘피로가 가시지 않은 무거운 몸을 이끌고 출근길로 향했던 경험이 있나요?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업무 실적에 대한 부담,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 등 우리를 짓누르는 걱정들을 어깨에 짊어진 채, 오늘도 지하철에 몸을 싣습니다. (중략) 덜컹덜컹 흔들리며 달려가는 지하철과 같이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도 반복적으로 굴러갑니다. (중략) 이미 흘러가버린 과거의 청춘들과 오늘날 힘겨운 시기를 견뎌내는 지금의 청춘 모두에게 위로와 공감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리고 -또한 인상 깊었던- 유고 나카무라 작가의 영상 그래픽 작품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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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오전 8시 10분 시간대로 배치된 작품이다. 이형준 작가의 작품이 추상적인 느낌으로 배치되었다면 비슷한 주제를 새로운 측면으로 묘사한 작품이 유고 나카무라 작가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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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는 전시장의 한 코너에 영상 그래픽과 영상 그래픽을 2D로 담아낸 사진들로 배치하였다. 영상을 유심히 살펴보면 사람들로 표현된 것으로 보인 색색의 그래픽 원자들이 무리 지어 몰려나가고 서로 부딪히고, 하얀 빛을 쏘면서 서로를 죽이는 듯한 양상을 보인다.


마치 ‘지옥철’ 속에서 예민해 질대로 예민해진 사람들이 불쾌지수를 높이다 서로에게 그 불쾌감을 전가하고 공유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 피로감과 불쾌감을 서로에게 전이시키고 공유하게 된 현대인들의 괴로움을 하얀 빛을 쏘면서 서로를 죽이는 장면으로 표현한 것 같았다.


나만 해도 아침 아르바이트 출근길이나 오전 수업으로 인한 지하철 등굣길을 떠올리면 치가 떨릴 정도로 타인을 통해 피로감을 건네받고 동시에 타인에게 또한 전이시킨다는 생각을 한다. 물건을 치우듯 허리와 어깨를 밀치는 몇몇 어르신들, 짜증을 내는 사람들의 ‘지옥철’ 및 대중교통 플랫폼 위 모습이 현대인들의 피로감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장면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작가의 의도와 관련한 설명문을 살펴보았을 때, 작가의 의도와 비슷하게 감상했음을 알 수 있었다.



‘(중략) 작가에 의해 지금도 계속 진행 중인 이 영상 프로젝트에는 표정이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빠르게 이동합니다. 어딘지 모를 목적지를 향해 계속해서 걸어가고, 마주 오는 사람들과 싸우기도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마치 매일 아침 우리가 겪는 ‘지옥철’이 떠오릅니다.’


 

이 전시를 보기 전 프리뷰에서도 작성했었지만, 없어도 사는데 큰 지장이 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그래서 때로는 사치적인 존재로 비꼼을 당하기도 하는 존재인 예술은 어쩌면 역설적으로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존재라 생각되었다.


평탄하고 요철 없이 반복되는 인생만을 산다는 것은 인간의 본능에 따라 결국 한 개인을 우울감으로 잠식시킬 위험이 높다. 그러한 것을 방지하고 우리의 삶을 보다 풍성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구원자적 존재가 바로 예술, 전시의 기능 중 하나라 생각한다.

일상에 지치고 새로운 것을 원할 때, 균열을 일으키고 싶었던 순간 일상을 주제로 한 전시 ‘안 봐도 사는 데 지장 없는 전시’를 보았던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


[이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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