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마지막 순간에 진실을 말하는 사람 [공연예술]

세 명의 갈릴레오 갈릴레이
글 입력 2019.05.07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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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는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 우리는 이제 그 사실을 알고 있을뿐더러, 지구 밖에서 돌고 있는 지구를 연속 촬영된 사진이나 영상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400여년 전, 인간이 지구 밖의 우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시절에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고 이야기 한 사람이 있다. 바로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말로 널리 알려진 갈릴레오 갈릴레이다. (실제로 그가 그런 말을 했다는 증거는 없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유명한 한 문장과 함께 종교권력에 맞선 과학의 선구자이자 인간 이성의 지지자로 많은 사람들에게 각인되어왔다. 이제는 근대 과학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그가, 결국 자신의 주장을 철회해야만 했던 종교 재판은 소크라테스와 예수가 겪었던 재판과 함께 역사적으로 유명하고 부당한 재판으로 손꼽힐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들 탓에 그를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종교와 과학의 대립이 떠오르곤 한다.


 


하늘이 사라지다 : 연극 <갈릴레이의 생애>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1938년 갈릴레이의 일생을 그린 연극을 상연한다. 지난달 국립극단에서 공연하였던 ‘갈릴레이의 생애’가 그것이다. 브레히트가 독자적인 서사극 이론을 정립하였던 극작가였던 만큼 극의 형식에 관해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겠다.


공연이 시작된 직후, 관객들은 극 중의 인물 보다도 이후 그들을 연기할 배우를 먼저 마주하게 된다. 장면과 장면 사이의 불협화음 같은 노랫소리나 서술적인 진행은 무대 위의 상황들을 한걸음 떨어져 객관적이고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이 모든 것들은 흥미롭고, 세련되게 다가온다.


제목처럼 갈릴레이의 생애를 다룬 극이지만 그의 삶 속에 함께하는 다른 인물들의 생각 역시 그의 것만큼이나 흥미롭다. 한 인물의 삶이 아닌 그 인물이 살아 숨 쉬던 사회를 그린 극이라고도 느꼈다. 망원경을 통해 지구 밖을 본 갈릴레오는 지동설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를 얻는다. 그런 그의 발견을 위험하다고 만류하는 동료에게 갈릴레오는 이렇게 말한다. ‘하늘이 사라지다!’ 하늘이 사라진다니? 어쩌면 지구가 도는 것이 상식인 사회에 사는 지금의 사람들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충격일지도 모른다.


갈릴레오는 자신이 경험한 것, 보는 것, 그리고 인간의 이성을 믿는다고 말하며 타성에 젖어 상투적인 말만을 반복하고 직접 눈으로 확인하려조차 하지 않으며 그것을 허상으로 치부하는 다른 학자들을 답답해하고 우리 역시 그런 기분을 느낀다. 그러나 이후 갈릴레이와 논쟁하는 추기경들과 키 작은 신부, 그리고 갈릴레이의 주장에 영향을 받는 대중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째서 그 사회가 그토록 갈릴레이의 주장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하는 지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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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국립극단 트위터


갈릴레이에게 지동설을 주장하지 않을 것을 경고하는 추기경은 가면을 쓴 채 말한다, ‘만약 신이 없다면 신을 만들어야 할지도 몰라.’ 그는 가면을 쓰면 얼마든 거짓을 말하고 자신을 속일 수 있다고 이야기하며 그리 말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도리어 진심처럼 의미심장하게 들리기도 한다.


불쌍한 갈릴레이 선생은 가면이 없다. 이 말 역시 갈릴레이의 주장이 진실임을 이미 알고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다만 그들은 진실을 진실로 알리고 싶지 않을 뿐이다. 키 작은 신부는 진실이 알려짐으로써 사람들에게 혼란을 초래하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 하며 진실이라면 그저 진실로 내버려 두면 그만인 것이 아니느냐 말하지만, 갈릴레이는 진실은 우리가 진실임을 알 때에만 비로소 진실이라 말한다.


*


안녕과 진실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하겠는가? 종교가 마냥 하얀 거짓말인 것만은 아니지만 사람들의 사상을 지배하고 있는 큰 축 중 하나였으니 그것이 흔들리는 것은 분명 굉장한 혼란이다. 등이 굽은 채 고된 일을 하는 노동자들에게 목성에 위성이 있든지 없든지, 달이 울퉁불퉁한지 매끄러운지는 중요치 않다. 그들의 삶은 그것으로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하늘이 사라진다. 천국이 사라진다. 더 이상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고, 자신들의 노동도 어떤 신성한 것이 아니라 단지 작은 변두리 별의 고통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들의 행동은 변할 것이다. 전해오던 중심의 기준이 틀렸다면 언제든 세상의 중심이 바뀔 수 있다. 말 그대로 중심이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진실 그 자체가 아닌 진실에 다한 앎으로, 생각으로 세상이 바뀌는 법이다.


그러니까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세상을 바꾸는 주장을 했다. 그의 말대로 하늘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철회하고 주장을 번복한다. 그는 순례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를 비겁하다고 매도할 수만은 없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육체의 고통은 무엇보다도 두려운 법이니까. 그는 끝까지 영웅이 되고자 하지 않는다. 어느 한 사람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이 있음을 부정하며, 누구든 해낸다면 그 사람이 바로 승자라고 말한다. 그 어떤 승리자들에 의해 우리의 상식은 진실에 가까워지고 철학이 세상을 바꾼다. 그러나 또 다른 진실을 품에 넣은 채 길 위에 선 안드레아의 말처럼, 우리는 아직 멀었다. 우리는 이제야 출발점에 서 있을지도 모른다. 그 말은 400여년 전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사람들이 말하기 시작했던 시대에도,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별들의 메신저 : 뮤지컬 <시데레우스>


 

<시데레우스>의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어쩌면 더 영웅에 가까운 사람일지도 모른다. 올해 공개된 창작 뮤지컬 시데레우스는 갈릴레오 갈릴레이와 그의 딸 마리아 첼레스테, 그리고 그와 동시대에 살았던 독일의 천문학자이자 수학자인 요하네스 케플러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행성의 움직임이 원이 아니라 타원임을 주장하고, 더욱 높은 배율의 ‘케플러 망원경’을 발명한 그는 실제로 목성의 위성을 발견한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관측을 보증해주었으며, 그의 이론에 힘을 실어주었다.


비록 현실의 갈릴레이는 그런 그에게 무례하게 굴었다고 하지만 극 중에서는 그 둘이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저서 ‘세데레우스 눈치우스’를 공동으로 저술하였다고 가정하며 이야기를 풀어낸다. 실제로 케플러는 갈릴레오에게 편지를 보낸 적이 있다. 거기에서 인연이 시작되어 공동으로 연구를 하였다면 어땠을까? 케플러와 갈릴레이는 서로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우주의 진실을 밝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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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주식회사 랑 트위터


뮤지컬 시데레우스의 갈릴레오는 과학자이자 천문학자이기도 하지만 또한 종교인이다. 신을 믿냐는 갈릴레이의 질문에 신을 믿지 않는 사람도 있느냐 대답하는 케플러의 말처럼 모두가 신을 믿던 시대였고 갈릴레오도 그렇다. 다만 그가 믿지 않은 것은 문자 중심의 성경 해석이었다.



여호와께서 아모리 사람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넘겨 주시던 날에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아뢰어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이르되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서 그리할지어다 하매


태양이 머물고 달이 멈추기를 백성이 그 대적에게 원수를 갚기까지 하였느니라 야살의 책에 태양이 중천에 머물러서 거의 종일토록 속히 내려가지 아니하였다고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여호수아 10 : 12 - 13



극 중 갈릴레이의 딸이자 수녀인 마리아 첼레스테는 여호수아의 위와 같은 구절과 갈릴레이가 주장하는 지동설이 위배된다고 이야기하고 교황청도 그러한 이유로 갈릴레이를 이단이라 규정하지만 갈릴레이는 그러한 문자 중심의 성경해석에 맞서며, 자신의 주장이 결코 성경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는 여느 슈퍼스타의 운명처럼 갈릴레이의 주장은 사람들의 열광과 곡해에 휩쓸린다.


교황청에 의해 위험에 처한 갈릴레이는 실로 영웅처럼 케플러가 자신의 일에 휘말려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조치하지만 케플러는 그를 돕기 위해 나선다. 결국 자신의 주장을 번복하는 갈릴레이는 육체의 고통이 두려워 그런 것이라기보다는 자신의 딸과 동료를 위해서 그런 것에 가까워 보인다.


갈릴레이는 주장을 번복하였으나 세상은 이미 그로 인해 별들의 소식을 전해 받았다. 그의 딸 마리아 첼레스테 역시도 그렇다. 그녀는 처음에는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마침내 스스로 망원경을 통해 별들을 보았을 때 그녀 역시 별들의 소식을 전해 받는다. 세상은 바뀔 것이고 언젠가 승리할 사람들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 순간에 진실을 말하는 사람 : 뮤지컬 <최후진술>



지난해 초연과 앵콜 공연 후 올해 재연으로 다시 돌아온 뮤지컬 최후진술은 죽음 이후의 갈릴레이의 여로를 그린다. 유쾌한 곡조와 언뜻 가벼워 보이는 진행 속에는 갈릴레이의 두려움과 교회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스며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종교재판으로 이끈 문제의 저서 <프톨레마이오스와 코페르니쿠스의 두 가지 주요한 우주체계에 관한 대화> 줄여서 <대화> 이후 그는 죽어 천국에 가기 위해 자신의 저서를 부정하고 교회를 찬미하는 <대화>의 속편을 쓰고자 다짐하나 완성하지 못하고 죽음에 이른다. 죽은 뒤 그는 자신 이전에 학자들인 지동설을 주장했던 코페르니쿠스와 천동설을 주장했던 프톨레마이오스 등을 만난다. 천국이냐 지옥이냐를 가른다던 항구까지의 저승길 안내자는 바로 그 유명한 윌리엄 셰익스피어다. 관객들은 이 유명한 두 월드 스타가 64년생의 동갑내기 친구라는 소소하고 유쾌한 정보값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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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뮤지컬 최후진술 트위터
 


그들 모두는 진실을 알고 있다. 지구는 움직인다. 지구는 돈다. 코페르니쿠스는 주장을 번복한 갈릴레이를 비난하고, 천동설을 주장했던 프톨레마이오스조차도 생전의 자신의 저서를 부끄러워하며 교회를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한다. 생전 갈릴레이의 마지막 방문자인 존 밀턴은 속편을 같이 쓰자는 갈릴레이의 제안에 도리어 자신이 당신의 글의 가치를 아는데 어떻게 그것을 고칠 수 있느냐 말하며 거절한다. 그러나 살아서도 죽어서도 갈릴레오는 계속해서 지동설을 부인한다. 이 두려움 아래에는 브루노가 있다.


앞서 이야기했던 두 작품, <갈릴레이의 생애>와 <시데레우스>에서도 브루노의 존재는 빼 놓을 수 없다. 조르다노 브루노는 갈릴레이보다 앞서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주장하였다가 1600년 로마의 캄포데피오리에서 화형을 당한 인물이다. 브루노의 이름은 두 작품에서 모두 종교에 대적하는 갈릴레이의 두려움을 이끌어내는데 사용된다. 뮤지컬 최후진술에서는 브루노의 향기가 더욱 짙다. 갈릴레이는 브루노를 동경하고 그리워하지만 동시에 그의 화형에 극심한 공포를 느끼고 스스로의 비겁함에 괴로워한다. 그는 살아서는 살고 싶어 하고 죽어서는 천국에 가고  싶어 한다.


*


최후진술의 사후세계에는 신이 있다. 최후진술에서 언급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는 존재가 바로 그 신인 프레디이다. 노란 자켓을 입고 노래를 부르며 ‘프레디’라는 이름을 가진 신이라니, 퀸의 프레디 머큐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프레디의 노래를 통해 최후진술은 문자 중심의 성격해석을 유쾌하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프레디는 성경의 구절을 정말로, 문자 그대로 따라야 하느냐는 수많은 질문들을 바보 같다고 이야기하며 단호하고 간결하게 대답한다. ‘서로 사랑하라’ 이 한마디를 제외하고는 전부 메타포라는 것이다. 더욱이 이런 신의 대답을 담은 넘버 ‘Freddie'의 후렴은 ’Love is Love'이다. 종교의 이름을 하고, 신의 이름을 빌려 수많은 사랑의 형태를 제단하고 규제하려는 집단들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유쾌한 신 프레디의 노래는 많은 생각이 들게 한다.


프레디에 말에 따르면, 사랑 말고는 다 메타포다. 그러니까 갈릴레이가 여호수아의 문장에 반하는 주장을 했다고 해서 성경을 부정한 것이 아니며 갈릴레이가 주장하였다가 번복하고 부정하는 그것이 바로 진실이다. 그가 죄를 지었다면 그것은 두려움에 거짓을 말했기 때문이다. 윌리엄은 그런 갈릴레오를 비겁한 위선자라고 비난하면서도 마지막 순간에는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그의 말이 맞다. 마지막의 순간 갈릴레오는 외친다. 속편은 못 쓴 게 아니라 안 쓴 거다.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는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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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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