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무도 안 궁금한 나의 군대 Diary (완) [사람]

사소한 것에 웃고 감사하던 나의 이야기
글 입력 2019.05.06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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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역은 송탄, 송탄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This stop is Songtan, Songtan.

this doors are on your left.



누구보다도 길었던 중간고사 시험을 마치고 나의 집인 평택으로 내려갔다. 평택으로 가기 위해서는 송탄역을 반드시 거쳐야 하는데, 익숙한 저 멘트를 들을 때마다 나는 매번 소름이 돋고 만다.

 

다시 말하면, 송탄역은 내가 2년 동안 수십 번 복귀했던 나의 부대가 있던 역이다. 이 때문에 나는 송탄역을 지날 때마다 미묘한 기시감을 경험한다. 당장이라도 복귀를 앞둔 마냥, 가슴이 옥죄어 오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양 떼처럼 불어난 군복의 사나이들이 땅이 꺼질 듯 뱉어내는 한숨은 어느새 나에게 전이 되고, 정신을 차리고 보면 그들에게 닿지 않을 심심한 위로를 보내고 있다. ‘조금만 더 고생해라!’

 

군대 이야기도 이제 떠나 보내야 하기에, 이번엔 특별히 군복의 사나이들과 함께 송탄역에 하차했다. (아무도 몰랐겠지만, Diary 시리즈는 이번이 세 번째이다. EP01, EP02) 송탄역을 벗어나 계단을 내려가면 복귀하며 몰래 싸갔던 전기 바비큐 푸드트럭이 보이고, 송탄의 명물! 부대찌개 집을 건너가면 바로 부대 앞의 거리, ‘송프란시스코’를 만날 수 있다.

 

미 공군이 주둔한 부대이기에 이태원보다 더 이국적인 풍경을 지닌 송탄 군부대 앞 거리는 지역 사람들 사이에서 송탄과 샌프란시스코를 합쳐 ‘송프란시스코’라 부른다. 나는 추억이 셈 솟는 그 거리를 거닐다가, 한 카페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곰곰이 소재를 생각하고 챙겨온 일기장을 들추다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군인 시절에도 청춘을 착취당하더니, 이제는 그 기억까지 글의 소재로 착취당하는 가엾은 군인이구나!’ 쓸데없는 생각을 멈추고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간다. 불쌍한 모든 군인에게 박수를 보내며, 이번에도 조심히 시작해보련다.

 

 

<무도  궁금한 나의 대 Diary> 03(완).

 

 


콤비 차트, 이번 주 1위는?


 

백예린 bye bye my blue

 


난 왜 네가 가진 것들을 부러워하는 걸까

감당하지도 못할 것들을 손에 꼭 쥐고서

여기서 무얼 얼만큼 더 나아지고픈 걸까


(중략)


나의 나의 나의 그대여

이름만 불러봐도 맘이 벅차요


 

공군 헌병이었던 나는, 일명 ‘콤비’라 불리는 차를 타고 초소에 근무를 나섰다. 일과 근무가 아닌 교대 근무였기에 일주일에 4, 5번은 새벽에 지친 몸을 일으켜 세웠고 짐짝처럼 차에 탑승했다. 그 잠깐 사이의 유일한 낙은 콤비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보통 새벽에는 가벼운 발라드나 잔잔한 노래들이 나왔다. 약간은 나른하면서, 밤기운에 맞는 노래들. 하지만 운전병의 MP3에 담긴 노래는 한정적이니 흘러나오는 노래의 패턴은 반복됐다. 그리고 이내 지루해졌다.

 

‘난 왜 네가 가진 것들을 부러워하는 걸까.’

 

그렇게 매일 똑같은 새벽을 지나던 중, 한 노래가 귀에 들어왔다. 잔잔한 피아노 소리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약간의 나른함을 선사하더니, 가볍게 얹어진 백예린의 목소리는 차가웠던 새벽공기에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차창밖에는 어두컴컴한 활주로를 간간이 비추는 작은 빛들이 빠르게 겹치며 지나갔다. 매일 지겹게 봤던 풍경이었지만 우연히 들려온 이 노래는 그 풍경의 분위기와 꽤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두 눈을 감고 꽤 오랫동안 노래에 집중했다. 왠지 모를 새벽 감성을 자아냈던 노래는 바로 백예린의 <bye bye my blue>였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백예린의 <bye bye my blue>를 들을 때마다, 어두컴컴한 활주로와 빠르게 겹쳐 지나가는 작은 불빛들이 그려진다. 누군가 나에게, ‘새벽의 느낌이란 뭘까?’라고 묻는다면, 그 사람에게 이어폰을 꽂아주며 이 노래를 들려줄 것 같다.


   




AKMU - 오랜 날 오랜 밤


“너의 입대곡은 뭐야?”

   

입대곡은 군필자들에게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입대곡이란 자기가 입대한 기점을 전후로 발표한 걸그룹이나 솔로 가수들의 노래를 일컫는 말이다. 보통 남자가수의 노래가 어마어마한 히트곡이 아닌 이상, 걸그룹이나 여자 솔로 가수 노래로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입대곡은 그 사람의 군경력을 체크할 수 있는 한 요소이다. 세계 물가를 비교하기 위해 빅맥지수를 보는 것이 더욱 가시적으로 다가오는 것처럼, “난 입대 일이 2019년 4월 22일이야.”라고 말하는 것보다 “내 입대곡은 트와이스의 Fancy야”라고 말하는 게 훨씬 세월의 흐름을 격감할 수 있다.

 

보통은 생활관에서 심심할 때 TV를 보며 후임에게 입대곡을 물어보곤 했는데 돌아온 후임의 답변에 모든 안면근육을 사용하면서 “뭐? 그 노래 엄청 최신곡이잖아?”라며 놀려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나의 입대곡은 악동뮤지션의 <오랜 날 오랜 밤>이다. 물론 비슷한 시점에 AOA의 Excuse me가 나오긴 했지만, 악동뮤지션을 좋아하기에 그렇게 말하고 있다. 나도 선임들에게 입대곡이 최신곡이라며 놀림 받을 때가 있었지만, 이제는 어느덧 추억의 노래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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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기장들
 


일기를 통해 과거의 나를 읽는 것은 옛 향수에 대한 애착이기도 하지만, 그곳으로 회귀를 희망하는 것이 아니다. 한때는 삶을 송두리째 흔들었던 사건은 생각보다 별 게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고, 현재의 나의 고민 또한 먼 훗날의 내가 되어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가지게 된다.

 

아침 드라마처럼 극단적으로 기록된 기억도 망각 쓰레기통에서 막상 다시 꺼내보면, 일기와는 다르게 순한 감정으로 변모되어 있다. 그렇게 세월의 힘은 기억을 더욱 세밀하게 걸러내고 끝내 0인 망각의 상태로 접어든다.

 

그러나 끝내 걸러지지 않고 통과한 기억들은 여전히 우리 삶 속에서 살아 숨 쉰다. 그것은 강렬하진 않지만 사소하고 소소한 감정으로 남아서 빙그레 웃음을 짓게 한다. 백예린의 노래를 들을 때, 펼쳐지는 새벽의 감성이나 레드벨벳의 노랠 들을 때마다 그려지는 슬기 덕후였던 후임의 모습. 그런 게 바로 소소한 감정이다.

 

혹여나 지금의 생각과 고민이, 현재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 만큼 힘이 든다면, 10년 후에 내가 되어 현재의 모습을 일기로 바라보는 상상을 해보길 바란다.

 

 

<아무도 안 궁금한 나의 군대 Diary (완)>


 

[정일송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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