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무력하고 위태로운 무지개 어드벤처 - 플로리다 프로젝트 [영화]

비겁하고 아름답게, Happily Ever After!
글 입력 2019.05.05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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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행복하게 할 가장 사랑스러운 걸작’


이 문구는 지난 상반기 화제작이었던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홍보하는 캐치프레이즈이다.  파스텔톤의 발랄하고 화사한 포스터와 ‘디즈니랜드보다 신나는 무지개 어드벤처’ 따위의 홍보 문구만 본다면, 언뜻 이 영화는 관객이 마냥 기분 좋게 즐길 수 있는 따뜻한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영화의 제목인 ‘플로리다 프로젝트’가 플로리다 주에 디즈니 랜드를 처음 지으면서 붙여졌던 이름과 홈리스에게 생활보조금을 지원하는 복지정책의 이름을 동시에 뜻하는 것처럼 실제 영화는 환상적인 포스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무지개 밑에도 그늘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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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아이들의 시선과 발길이 닿는 곳을 따라가며 시작된다. 주인공인 여섯 살 꼬마 무니의 무대는 디즈니랜드 맞은 편 홈리스들이 장기 투숙하는 모텔이 모여 있는 동네이다. 곳곳을 누비며 온갖 짓궂은 장난을 치는 아이들을 쫓아 그들의 일상을 속속들이 구경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들의 언행은 그저 깜찍하기만 하지 않다. 그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치고 걸걸하게 욕설을 내뱉으며 사고를 저지르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피곤함을 넘어서 짜증이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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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크고 작은 소란을 일으키는 동안 어른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영화의 초반에서 무니의 엄마인 핼리의 모습을 처음 마주하면 당황스러운 기분을 숨길 수 없다.


고작 여섯 살밖에 되지 않는 아이들을 돌보는 핼리는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도 제멋대로 감정을 표출하고 날아가는 헬기를 향해 천연덕스럽게 가운뎃 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깔깔 웃는다. 이런 장면을 보고 있으면 ‘도대체 아이들이 뭘 보고 배우겠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매일 비슷해 보이는 이들의 일상을 하루이틀 함께하다 보면, 그녀가 도무지 해답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무니의 손을 놓치 않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는지 알 수 있다. 핼리는 부당한 요구를 하는 직장을 그만두고 불안정해진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것을 시도한다. 이른 나이에 엄마가 된 핼리는 한 사람 입에 풀칠할 돈을 벌 능력조차 없다. 하지만 내몰리고 쫓겨나는 와중에도 무니를 등에 업고 걸었고, 쏟아지는 빗 속에서도 무니를 껴안고 간지럼 태우며 태연하게 웃었다.


핼리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결국 작은 모텔 방에서 내쫓겼고, 무니를 빼앗기는 비참한 결말을 맞았다. 모든 것을 곁에서 지켜본 관객들은 그 누구도 이런 현실이 그녀의 잘못이라고 함부로 손가락질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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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농담처럼 건네지만 결코 웃어넘기지 못할 어른들의 무거운 사정을 하나 둘 이해할수록 관객들은 아이들을 전처럼 바라볼 수 없게 된다. 무니는 어른들이 짊어지고 있는 현실을 안다. 학교 생활을 궁금해하는 젠시에게 교실은 재미없어서 가고 싶지 않다고 일축하고, 설명도 없이 더 이상 찾아오지 말라는 애슐리를 조용히 수긍하고, 성매매를 하러 온 남자가 화장실에 불쑥 들이닥쳤을 때 굳은 표정으로 커튼 뒤에 숨는 무니는 울고 떼쓰지 않는다.


무니가 어른들이 울기 직전에 어떤 표정을 짓는지 아는 것은 좌절을 이해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미처 알아차리기도 전에 좌절이 늘 무니의 앞에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도 없이 많은 좌절을 목격한 무니는 필연적으로 눈치 빠른 아이로 자란다. 시종일관 발랄하고 뻔뻔한 사고뭉치로만 보였던 무니가 영화의 후반부에서 젠시를 찾아가 울음을 터뜨리며 어쩔 줄 몰라하는 장면은 그래서 가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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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통해 이들을 지켜보며 연민과 무력감을 느끼는 관객의 시선은 모텔의 관리인 바비에게 이입된다. 바비는 누군가는 ‘쓰레기장’이라고 부르는 모텔의 밑바닥 인생을 가장 가까이에서 목격하고 그들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과중한 업무를 감당하기에도 벅찬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자신이 맡은 바에 최선을 다하며 한 걸음 뒤에서 주의 깊게 바라보는 것뿐이다. 바비는 주민들과 부딪히며 크고 작은 갈등을 겪고 분노하기도 하지만, 그들에게 연민을 갖고 있다. 때문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지는 못해도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늘 그들의 주변을 살핀다.


‘매직 캐슬’ 주민들의 일상에 몰입한 관객들은 이러한 바비의 입장에 자신을 대입하게 된다. 하지만 관객은 결코 바비와 같을 수 없다. 관객의 시선은 훨씬 비겁하다. 만약 핼리와 무니 모녀가 스크린 너머가 아닌 현관 건너편에 살고 있다면 우리는 과연 바비처럼 그들에게 주의를 기울일 수 있을 것인가? ‘밑바닥 인생’은 현관 너머에 있을 땐 성가시고, 스크린 너머에 있을 땐 안타까우며 시야를 벗어나면 원래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듯 잊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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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엄마와 헤어져 살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무니가 젠시와 함께 디즈니랜드로 도망치면서 끝이 난다. 하늘에 뜬 무지개를 보며 황금을 지키는 난쟁이 요정을 때려 눕히러 가자고 씩씩하게 외친 무니가 현실에서 황금은 커녕 작은 욕조 속 낡은 무지개링을 만지작거릴 수밖에 없었던 것과는 달리 영화는 아이들에게 ‘진짜’ 디즈니랜드를 향해 달려가는 결말을 선물한다.


비록 이 선물 같은 도망이 짧은 도피에 불과할지라도 나는 아이들의 시간이 디즈니랜드에 도착한 채 잠시나마 멈추기를 기도한다. 마치 ‘진짜’ 동화 속 무책임하고 갑작스럽고 아름다운 결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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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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