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해체된 목소리, 7번 국도

글 입력 2019.05.05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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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해체된 목소리, 7번 국도


가난한 대학원생에게 돈이라는 이름으로 주어지는 기회는 아주 작다. 그러한 점에서 대학원생이 취미생활이라는 사치에 돈을 쓰는 것은 아주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나올 때 <7번 국도>도 샀다. 아주 특이한 경우가 아니고서야, 대부분 희곡은 기억하기 위해서 구매한다. 다시말해, 필자가 감상한 <7번 국도>는 훌륭한 연극이다.


이 연극이 필자에게 좀 더 큰 가치를 갖게 된 것은 필자가 생각하는 '사회적 연극'의 이상적인 형태였기 때문이다. 사실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7번 국도>는 단조롭다면 단조로울 정도로 정직한 구성을 갖추고 있는 연극이다. 연극에 주로 등장하는 인물들도 적고, 무대 연출도 단촐하다. 따라서 이 연극에 아주 특이한 서사나 거대한 세계관이 있냐고 물어본다면, 그건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연극은 삼성 반도체 백혈병 사건과 군의문사 사건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연극의 주제는 거대한 사회적 이슈를 담아내지 않고, 철저하게 작은 세계를 담아내고 있다. 이 점이 필자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사회적 연극의 모습이었다. 따라서 연극은 결코 사회가 나아가야 할 길이나, 관람객들의 행동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한 인간의 삶에 끔찍한 사회적 비극이 다가온 후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어떤 호소도 답도 없는 사회적 연극'에 무슨 가치가 있냐고 묻는다면, 반대로 무책임하게 답을 던져놓는 사회적 연극에 무슨 가치가 있냐고 묻고 싶다. 가장 좋은 처방전을 주는 의사는 가장 고통의 원인과 증상을 잘 이해하는 의사다. 연극은 솔직하기 짝이 없는 피해자들의 맨살을 보여 주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지금까지 '피해자'라는 환상 속에서 이들의 삶을 왜곡해왔는지를 알게해준다.

연극은 삼성 반도체 백혈병 사건으로 딸을 잃은 동훈의 택시가 간혹 군인의 유령이 나타난다는 7번 국도에서 손님을 태우면서 시작한다. 동훈은 시위를 포기한 같은 피해자로 시위를 관둘까 고민하고 있었다. 이윽고 차에 탄 것은 군인 주영이다. 주영은 때로는 피하는 것도 답이지만, 피하기만해서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을거라는 이야기를 한다. 또, 항상 응원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주영은 사실 군 의문사로 목숨을 잃은 귀신으로, 자신의 죽음에 포기하지 않고 시위를 나가는 자신의 여자친구 기주를 걱정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이들의 발화를 터무니없을 정도로 조화를 이루고 있지 않도록 연출했다는 것이다. 각 등장인물은 대화를 한다기보다, 혼자 있는 공간에서 소리지르듯이 이야기 한다. 무대에서 연출한 이들의 대사가 결코 '대화'가 아니라는 점은 무대에서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무대에는 자동차의 부품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피해자의 연합'은 이 연극에서 찾아볼 수 없다. 연극은 해체된 공간에서 둥둥 떠다니는 등장인물들의 목소리들을 담아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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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 국도> 연출의 특이점은 이런 둥둥 떠다니는듯한 발화 뿐만 아니라, 등장인물의 역할 변경에도 있다. 동훈은 원래 아버지역할로, 기주는 어머니 역할로 배정되어 있었다. 동훈의 역할을 어머니로 바꾸고, 기주를 애인으로 바꾼 것은 꽤 흥미로운 결과물을 가져왔다. 세상에 대항하는 남성의 영웅적인 모습과, 아들의 억울한 죽음에 대항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우리에게 익숙하기 그지없는 모습이다.


그 결과 기존 역할을 새로운 인물들로 바꿈으로서 더 다채로운 연극이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계속 시위에 나가는 기주에게 동훈이 '그렇게 까지는 할 필요 없는 관계'라고 말하는 것이 사회의 목소리이자 우리 내면의 목소리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돌아보면, 기주의 시위를 '이상한 것'으로 취급하고 비교할 수 있는 용기는 대체 어디서 나온걸까. 누가 평가할 수 있었던 걸까.

우리는 가끔 피해자들의 운동을 레미제라블 보듯이 보곤 한다. 그들은 항상 뭉치고, 뭉친 그들은 숭고하며, 가치와 승리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 동귀어진한다. 끔찍한 참사 앞에서 피해자들의 행동은 모두 비슷해보이고, 이들을 한데 묶어 어떤 숭고한 존재로 취급하기도 한다. 개인이 아닌 사회로서 읽혀 비교되는 피해자의 삶은 더욱 비참하게 다뤄진다. 합의금을 받은 유가족보다 받지 않고 운동을 하는 유가족들을 더 순수하고,공장노동자의 죽음보다 대학생의 죽음을 더 안타깝게 여기는 비교급으로 구성된 선별과 경쟁은 허무하기 짝이 없다. 이런 담론 속에서 가장 상처받는 사람은 유가족이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들의 사연 뿐만 아니라 피해자들 역시도 이 손쓸 수 없는 고통 전에는 우리와 같이 능동적으로 사고하고, 어느 점에서는 주춤거릴 수 있는 존재였다는 점을 망각한다. 작가는 싸우기를 결정하기까지 혹은 싸우지 않기를 결정하기 까지가 더 큰 싸움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필자는 이 부분에서 연극에서 낯설게 표현된 피해자들의 모습은 현실에서 더 낯설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이 낯선 소리를 수신해 7번 국도에 도착해 '드라이브'를 한 관객들은 이제 어떻게 해야하는가? 연극에서 동훈과 주영은 7번국도를 그저 달린다. 삶은 계속해서 지속될 것이다. 드라이브를 끝낸 관객들의 몫은 다시 미지로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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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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