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원시 시대에서 살아가기 [게임]

모바일 게임 - 듀랑고
글 입력 2019.04.30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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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세상이 뒤집혔다. 멀쩡히 잘만 달리던 기차가, 자동차가, 건물이며 도로들이 이상한 소용돌이-워프-에 휘말려 눈을 떠보니 그 어떤 문명도 존재하지 않는, 공룡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세상에 도달했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로 왔느냐면 그것도 아니다. 왜냐고? 어느 한 시점의 과거라기엔 긴 시간 등장과 멸종을 겪었던 생물들이 한 시대에 공존하고 있으니까. 하늘의 별자리가 다르니까. 그러니까 여긴 완전히 다른 세계인 거다.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 땅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그 불가능을 겪은 사람들이다. 1700년대에 태어난 사람이 2000년대에 태어난 사람보다 어릴 수 있는 땅. 모바일 게임 ‘야생의 땅 듀랑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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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랑고 게임 이미지

 


인간은 언제나 불가능한 것을 꿈꾼다. 그리고 상상대로는 아니지만, 그 비슷한 방법으로 어떻게든 불가능한 것을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 왔다. 비행기가 등장하기 전에 누가 하늘을 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겠으며, 전화가 등장하기 전엔 누가 멀리 있는 사람과 실시간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까? 그러나 분명 불가능하다고 생각함에도 염원했을 사람들은 많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염원하는 것들은 여전히 많고, 그들 중 한 가지는 분명 시간여행일 것이다. 미래로의, 혹은 과거로의 시간여행 말이다.


밤이 되면 자신이 꿈꾸던 예술의 황금기를 방문하는 ‘미드나잇 인 파리’, 과거로 돌아가 인생을 바꿔 보려는 ‘17 어게인’, 미래의 참사를 막기 위해 반복되는 과거에서 분투하는 ‘소스 코드’,  완벽한 사랑을 위해 시간을 되돌리는 ‘어바웃 타임’, 그 외에도 ‘백 투더 퓨처’, ‘시간 여행자의 아내’, ‘나비 효과’, ‘시간을 달리는 소녀’, ‘닥터 후’ 등 시간 여행에 관련된 이야기는 수도 없이 많다. 그들은 모두 현재의 부족함을 과거나 미래의 시간을 통해 채우려 하거나 바꾸려 한다. 사람들은 자꾸 인간 문명의 발전을 시간의 흐름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어서, 원시 시대를 그리는 듀랑고는 시간 여행의 이야기라고 여겨지기 쉽다.


*


그러나 사실, 듀랑고의 이야기는 그렇지 않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의 수많은 시간 속의 사람들이 어느 순간 갑자기 우리가 아는 공룡시대와 일견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미지의 땅으로 쏟아져버린 것뿐이다. 이것은 시간여행이 아니라 순간이동이라고 하는 것이 더 옳다. 듀랑고는 지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게임 속 인물들은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지, 무언가를 바꾸거나 채우려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시간에 대한 개념이 중요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공간이 아닌 인물들의 시간이 얽혀있고, 그들은 자신들의 과거가 미래가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스마트폰으로 온라인 게임을 하는 시대에서 미지의 땅으로 떨어졌고, 누군가는 전화기라는 것이 막 발명되던 시대에서 미지의 땅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지구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경험했던 문명의 시대가 다시 도래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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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랑고 게임 이미지


 

어찌되었든 플레이어는 이 땅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야생의 땅이라고 하여서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개척해 나가야하는 무인도라고 생각한다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게임을 플레이 하면서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말이지 갈대의 줄기를 꺾어 새끼줄을 꼬는 단계에서부터 시작해야 하지만, 많은 게임이 그러하듯 듀랑고에도 굵직한 스토리가 있고, 그 안에는 이미 서로가 서로의 사상과 이익에 맞물려 집단을 이루고 경계하며 이상을 이루려는 단체들이 있다.


플레이어들은 그들과 소통하며 그들 사이에 얽힌 이야기들을 알아가게 된다. 복잡한 정세의 스토리를 즐긴다면 그것으로 즐거울 것이고, 아니라면 그저 그들 단체에게서 지원 물품을 받는 것으로 만족할 것이다. 험난한 야생의 땅에서 특정 단체의 지원 물품들은 언제나 요긴하게 쓰이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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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 단체 간의 굵직한 스토리 외에도
가볍고 짧은 이야기가 담긴 메모들을
플레이 중에 얻을 수 있다.


제작의 높은 자유도도 게임의 매력을 더한다. 막대기인 무언가(그것이 뼈든 나뭇가지든 상관없이)와 먹을 수 있는 무언가(그것이 과일이든 고기든 빵이든 상관없이)가 있다면 얼마든지 꼬치구이를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그 꼬치는 제법 휘두를만한 것으로 무기로도 사용할 수 있다. (공격력은 형편없겠지만.) 속이 든 빵을 만들고 싶다면 그 속에 무엇을 넣을지는 선택하는 것은 자유이다. 고기를 넣어도, 야채나 과일을 넣어도, 꽃이나 벌레를 넣어도 속 든 빵은 맛있게 구워질 것이다.


어떤 뼈와 어떤 금속을 어떻게 가공하여 무기를 만드느냐에 따라 그 무기의 색과 능력치, 속성은 천차만별 변화한다. 어찌 되었든 보석도 돌이므로 우리는 사파이어나 루비로 돌칼을 만들 수도 있고, 마찬가지로 보석은 염료로 사용될 수도 있으므로 사파이어나 루비로 가죽이나 천을 염색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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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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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근 빵을 만들자.
2019년 지구에서는 절 근처에서 쉽게 구매할 수있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나는 게임을 못 한다. 특히 플레이 전에 공략 영상을 보고, 기믹을 익혀 알맞은 타이밍에, 알맞은 행동을 해야 하며, 심지어 그것이 팀플레이인 경우는 더욱 취약하다. 게임에서조차 ‘잘’ 해야 한다는 생각이 힘들고, 나의 실수로 일면식도 없는 타 플레이어들의 기분이 상한다면 상상만으로도 고역이다.


그런 부류의 게임을 추천받아 몇 해보았는데, 게임에서조차 스트레스를 받아 그만 두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혼자하거나, 아니면 소수의 친구들과 하는 게임을 즐긴다. 그리고 그 안에 피튀기는 경쟁도 없고 클리어 해야만 하는 미션이 없다면 더욱 좋다. (최근 가장 즐겁게 플레이 한 게임은 심즈 4와 Don't Starve Together다.)
 

그러나 현실이 그러하듯, 혼자만의 생존은 힘들다. 무언가의 전문가가 되고 싶다면 다른 한 분야는 포기해야 한다. 듀랑고의 최고레벨은 현재 60인데, 래벨업을 통해 획득할 수 있는 스킬 포인트는 여러 분야의 능력을 얻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모든 분야를 하고자 하면 모두 애매한 능력밖에 얻지 못한다. 그래서 후반으로 가면 다른 사람들과 협력을 해서 각자의 능력으로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편하다. 아무래도 게임상에서 사람을 사귀는 것이 어색한 나는 게임을 즐기는 친구들 몇 명을 듀랑고로 끌어들여 작은 규모의 부족을 만들었다. (길드 개념과 비슷하다.) 내가 집을 지을 테니 너는 무기를 만들고, 너는 옷을 만들고, 너는 요리를 하란 식이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누군가는 어떤 재료로 어떻게 가공을 해야 가장 효과적인 아이템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고, 누군가는 섬을 보기 좋게 꾸미고, 누군가는 사냥을 즐기는 중이다. 게임의 어느 부분에서 즐거움을 찾든 지 그저 하는 사람이 즐거우니 당분간 야생의 땅에 자리 잡은 우리 부족은 계속해서 삶을 꾸릴 예정이다.



[김민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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