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책은 읽는 사람과 그 시기에 따라 다르게 읽힌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책 <호밀밭의 파수꾼>은 독자들에게 각자 다른 의미로 정의되는 흥미로운 소설이다. 누군가는 이 책을 현대문학사의 한 획을 그은 명작으로 평가하고, 누군가는 평범한 사춘기 소년의 성장을 담은 청소년 소설로 분류한다.
과거에는 외설적이고 불량한 청소년 모델을 제시한다는 이유로 금서로 지정되었던 이 책이 지금은 청소년 권장도서로 읽히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책을 둘러싼 논쟁이 치열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앨리에서부터 피비에게까지

<호밀밭의 파수꾼>은 J.D. 샐린저의 장편 소설로 고등학생인 주인공 홀든 콜필드가 퇴학을 당한 뒤 집으로 돌아가는 사흘 동안의 방황이 주된 내용이다. 소설은 의식의 흐름에 따라 진행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반부와 후반부에 걸쳐 인물과 상황들을 대칭적으로 배치하는 치밀한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소설의 주인공 홀든이 사랑하는 두 동생 앨리와 피비는 서로 대응되는 인물이다. 앨리는 사남매의 셋째이자 순수하고 똑똑하고 사랑스러운 동생이지만 열 살 때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피비는 앨리와 마찬가지로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사남매의 막내이며 죽은 앨리와 동갑인 열 살이다.

앨리와 피비는 비슷한 장면을 통해 대칭성을 뚜렷하게 드러낸다. 홀든이 앨리의 무덤에 찾아간 어 느날 별안간 비가 내리는데, 묘지의 수많은 사람들이 비를 피해 허겁지겁 차에 타는 모습을 보며 홀든은 끔찍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홀든은 비가 쏟아지는 묘지의 한 가운데에 앨리를 홀로 남겨두고 따뜻하고 아늑한 좋은 곳으로 식사를 하러 떠날 어른들을 결코 견딜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한편 어느새 훌쩍 자라 앨리와 같은 나이가 된 피비는 비슷한 상황에서 홀든이 전혀 다른 다짐을 하도록 만든다. 멀리 도망치려는 자신을 따라가겠다고 나서는 피비로 인해 방황을 그만두기로 결심한 홀든은 회전목마를 타는 피비를 빗 속에서 지켜보며 행복감을 느낀다. 비에 흠뻑 젖은 채 파란 코트를 입고 회전목마 위에서 빙글빙글 도는 피비에게 사랑과 행복을 느낀 홀든은 사흘 간의 짧은 여정을 끝내고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앨리와 피비의 대칭은 홀든의 방황의 시발점이자 종결점이 된다는 점에서 소설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앨리의 죽음과 함께 어른들의 이중성을 선명하게 목격하게 된 홀든은 이를 거부하고 순수를 갈망하게 되고, 아이와 성인의 기로에서 무작정 도망치기 시작한다.
그토록 사랑스러운 사남매의 ‘미운 오리 새끼’를 자처하는 홀든은 내내 어설픈 속물 행세를 하며 사람의 온기를 찾아 손을 뻗는다. 하지만 그 시도는 번번이 퇴짜를 맞거나 결정적인 순간에 뒷걸음질 치기 일쑤이다. 그리고 외로움에 애원하는 홀든을 보며 모두들 이렇게 말한다. ‘대체 몇 살인데 이러고 있는 거야? 집에 들어가서 잠이나 자!’

순수한 이상을 갈망하지만 미운 오리 새끼처럼 스스로를 때묻었다고 믿는 홀든은 방황하는 내내 피비를 만나러 가고 싶어하지만 차마 그러지 못하고 애꿎은 오리 떼들을 찾아 헤맨다.
얼어 붙은 연못가를 떠나 자취를 감춘 오리들의 행방에 집착하는 홀든의 모습은 마치 갈 곳을 잃은 자신의 혼란스러운 내면을 내비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마침내 어른들의 눈을 피해 피비를 만난 홀든은 꿈이 뭐냐는 동생의 질문에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홀든은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 심지어 어른 행세를 하기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 어른이 된다는 것은 영영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멈추지 않는다면 홀든은 매일 뭔가 달라지고 변할 것이고 언젠가 어른이 될 것이다.
그렇게 어른이 될 언젠가로부터 영원히 도망치고 싶은 홀든의 마음은 ‘호밀밭의 파수꾼’이라는 이상으로 이미지화된다. 만약 어떤 어른이 될지 선택할 수 있다면, 온종일 절벽 위에 펼쳐진 너른 호밀밭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이 절벽 아래로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일만 하는 어른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나 홀든은 회전목마를 타고 빙글빙글 도는 피비를 지켜보며 넘치는 사랑과 행복을 느끼고 도망치는 것을 그만둔다. 회전목마가 종종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쓰이기도 한다는 점에서 이 대목은 홀든이 그동안 받아들이지 못했던 현실을 가장 건강한 모습으로 수용하며 성장하는 장면으로 해석될 수 있다. 홀든이 갈망하는 순수성을 영원히 지켜줄 아늑하고 평화로운 공간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그런 세상에도 빗 속의 한 줄기 햇살 같은 피비가 있고 사랑이 있고, 또 행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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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숙한 인간이 어떤 이유를 위해 고귀하게 죽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다면, 성숙한 인간은 동일한 상황에서 묵묵히 살아가기를 원한다.’ 앤톨리니 선생이 인용했듯, 홀든은 예전이라면 견디지 못하고 도망쳤을 상황에서 묵묵히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홀든은 다시 학교로 돌아갈 것이고 언젠가 어른이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홀든이 그토록 겁냈던 ‘속물적인 어른’이 되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마음 속에 햇살 한 줌 간직하지 않은 어른으로 자랐다면 마흔의 샐린저가 홀든의 이야기를 써내기는커녕 기억조차 하지 못했을 테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