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당신이 외면한 현실 그 자체, 4개월 3주…그리고 2일 [영화]

보는 영화가 아니라 겪는 영화
글 입력 2019.04.18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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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동진 평론가의 영화 평론을 즐겨 읽는다. 다른 이의 감상을 읽는 건 온전한 나만의 감상을 방해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그의 평은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일깨워주고, 표현할 말을 고르지 몰라 속에서 뒤엉킨 나의 감상을 정확하게 정리해주는 역할을 해준다.


영화 <4개월 3주…그리고 2일>이 특히 그랬다. 살면서 처음으로 영화를 보다가 도망치고 싶었던, 그러면서 외면할 수 없었던, 그 어떤 잔인한 영화보다 불쾌했던 이 영화에 대한 나의 복잡한 심경이 그의 한 줄 평으로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보는 영화가 아니라 겪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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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우세스쿠 독재 정권으로 임신 중절이 금지되었던 1987년의 루마니아, 대학생 오틸리아는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친구 가비타의 임신 중절을 도와주게 된다. 중절을 하기로 한 당일, 2개월이라고 했던 임신 기간은 알고 보니 4개월이었고 가비타 중절은 더 힘들어지는데…




 

숨 막히도록 사실적인 세계



영화는 현실을 담아내는 예술이지만 그 현실이 너무 적나라하게 사실 그대로 표현되기를 원하는 관객은 거의 없다. 아무리 잔인한 현실을 표현해도 잠시 숨 돌릴 구멍은 마련해주길 바란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관객의 기대를 무참히 짓밟아버린다. 이 영화가 표현한 세계는 과장도, 생략도 없는 현실 그 자체다. 시종일관 이어지는 사실적인 묘사가 이 영화를 어떤 고어 영화보다 더 불쾌하고 잔인하게 만든다.

 

내용이 펼쳐지는 주된 공간은 가비타가 임신 중절을 하는 모텔이다. 영화를 보면서 이게 영화인지, 모텔에 설치한 CCTV의 영상인지 헷갈렸다. 특히 암담한 상황에서 인물들이 침묵하는 장면에는 그 적막이 너무 현실적이어서 마치 내가 모텔 구석에서 인물들을 훔쳐보고 있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그것은 소름끼치게 사실적인 묘사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그 모텔은 과장된 배경음악도, 화려한 촬영기술도, 영화적인 사건도, 감동적인 행동을 하는 인물들도 없는 지독한 현실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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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비타의 임신이 4개월이란 걸 밝혀지자 낙태 수술을 해주기로 한 베베는 그렇게 오래된 아이는 낙태하기 힘들다며 돈 대신 더 큰 것을 요구한다. 제발 낙태를 해야 한다고 말하는 가비타의 애원은 베베에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모텔이라는 공간, 두 명의 여자와 건장한 남자 한 명, 그 남자 한 명이 모든 결정권을 쥐고 있는 상황. 그 요소들이 주는 공포는 내가 어떤 공포영화를 봐도 느껴보지 못한, 어딘가에서 분명히 실제로 이루어질 일일 것이라는 공포였다.


베베의 말에 어떤 내용이 전개될지 너무나 잘 예상돼서 계속 감상하는 것이 두려웠다. 그 장면이 자아내는 엄청난 긴장감은 다른 영화처럼 흥미진진함이 아니라 질식할 것 같은 압박감을 선사한다. 그리고 그 압박감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도 지속된다.


 

 

임신은 여성의 책임



이 영화가 그저 사실적이기만 했다면 내가 이렇게까지 공포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그만큼 두렵고 불편했던 건 내가 여자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이 영화는 여성에게 훨씬 와 닿고 고통스러운 영화이다. 낙태가 그러한 것처럼 말이다.

 

가비타의 상황은 매우 절망적이다. 부족한 돈, 4개월이나 된 임신. 만약 오틸리아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상황은 훨씬 더 나락으로 떨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도 가비타는 절대 낙태를 포기하지 않는다. 가비타가 그만큼 강인해서가 아니다. 그녀는 엄청나게 유약한 데다가 그 중요한 일에 결정적인 실수를 계속해서 반복하는 그런 인간이다. 그런 그녀가 그 공포를 무릅쓰고 끝까지 국가에서 엄격하게 금지한 낙태를 감행하는 이유는 원치 않은 아이를 낳고 키우는 공포가 훨씬 크기 때문이다.

 

오틸리아는 사실 저 불쾌한 상황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었던 인물이다. 그녀는 그저 친구로서 가비타의 낙태를 도와주다가 참혹한 일을 겪게 된다. 게다가 당시 루마니아는 낙태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 낙태를 도와준 사람도 엄격하게 처벌하는 곳이었다. 그런 위험부담을 안고 오틸리아가 가비타를 도운 이유는 단순히 우정 때문이 아닌 그녀도 얼마든지 가비타와 똑같은 상황에 처할 수 있고 그 상황에 자신을 도와줄 사람을 마련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피임까지 금지되었던 시대에 남자친구가 있는 오틸리아가 그런 상황을 예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럼 그녀들이 온갖 공포와 위험에 노출되는 동안, 남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베베는 그런 그들의 공포를 이용해서 강간을 요구하고 오틸리아의 남자친구는 왜 그런 위험한 짓을 하느냐고 화를 내며 오틸리아가 지닌 임신에 대한 공포를 전혀 이해해주지 못한다. 가비타를 임신하게 한 남자는 아예 얼굴도 나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현실을 마주해야 하는 것은 모두 여성인 것이다.

 

임신이 여성 혼자서 만들 수 있는 결과가 아니란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가끔 사람들이 낙태에 대해 늘어놓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모두 남성의 존재를 까맣게 잊어버린 것 처럼 보인다. 원치 않는 임신을 여성 혼자서 책임져야 할 때, 낙태를 선택하면 태아의 생명권을 저버린 행위라 말하고 낳아 키우면 ‘미혼모’라는 이름으로 무례한 시선을 던진다. 거기에 그 아이를 만들게 한 남성을 탓하는 시선은 거의 없다. 임신이 아무리 여성의 신체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해도, 그에 따른 사회적 책임 역시 모두 여성에게 지워버리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그런 책임을 모두 여성에게 지워버린 채 낙태는 하지 말라는 게 폭력이 아니면 무엇일까?

 

몇 개월 전,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스카이캐슬>에서 혼외자식을 가진 인물 강준상에 대해 ‘노콘준상’이라는 별명이 붙었었다. 노콘이란 콘돔을 끼지 않은 것을 의미하며 그 드라마에서는 피임도 하지 않고 아이를 만든 강준상의 무책임함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 말은 드라마를 통해 처음 수면으로 올랐지만 사실 한참 전부터 있었던 말이다. 노콘을 요구하는 남성이 실제로 아주 많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물론 누군가는 일부 남성이 그런 걸 왜 일반화하냐고 말하겠지만, 나와 내 주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적지 않게 일어나는 일임은 분명하다.

 

만약 남성이 임신했다면, 그들은 그렇게 쉽게 피임을 하지 말자고 요구했을까? 나는 주변에서 여성 혼자서 임신에 대한 불안을 떠안는 모습을 너무 많이 봐왔다. 물론 모든 남성이 임신에 무책임하다고 매도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분명히 그런 남성이 존재한다고는 말하고 싶다. 그런데도 여전히 세상은 임신과 낙태를 모두 여성의 일로 치부하고 있다. 그리고 여성의 일이라는 이유로 다들 그 문제를 함부로 이야기한다. 임신이, 낙태가, 육아가 여성의 삶에 미치는 거대한 영향력은 완전히 무시한 채 말이다.



 

1987년 루마니아, 2019년 대한민국


 

지난 4월 11일,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졌다. 헌법불합치란 사실상 위헌이나 즉각적인 무효화에 따른 법의 공백과 사회적 혼란을 피하기 위해 법 개정 전까지 한시적으로 그 법을 존속시키는 결정이다. 낙태죄의 경우 2020년 말까지 그 법이 유지되고 별다른 개정이 없는 한 2021년부터 낙태는 합법이 된다.

 

66년 만에 이루어진 이 결정이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이제 국가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막을 자격이 없다는 것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여전히 낙태에 대한 비판하는 여론이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기독교 단체가 그러하지만 일상에서도 낙태에 대해 안 좋게 말하는 목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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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는 문란한 성생활을 야기할 것이며 태아의 생명권을 무시하는 행위라고 하는 말을 들어보면 그 1차원적인 생각에 기가 찰 따름이다. 낙태가 여성의 신체와 정신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은 막대하다. 낙태에 대한 후유증은 신체적인 변화로 나타날 뿐만 아니라 엄청난 트라우마까지 안겨준다. 그런데도 그것을 선택하는 이유는 영화 속 가비타와 마찬가지로 낳고 키우는 것이 더 괴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여성들의 낙태죄 폐지 주장은 함부로 관계 맺고 함부로 임신하고 함부로 지우겠다는 말이 아니다. 그건  절망적인 상황에서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 하나만은 달라는 외침이다.

 

이런 목소리가 여전히 존재하는 대한민국이 과연 1987년 독재정권의 루마니아와 다를 것이 무엇이냐고 묻고 싶다. 그렇게 강하게 반대하는 낙태죄가 만든 세상이 정말 이상적인 세상인지, 영화처럼 불법적인 경로로 모든 위험부담을 떠안고 벌벌 떨며 임신 중절을 하는 여성들을 만드는 세상이 아닌지 묻고 싶다.





[진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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