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한 적 없다 - "최후진술" 파헤치기 2 [공연예술]

(15)64년생 월드스타들에 대하여
글 입력 2019.04.11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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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넘버 가사를 뜯어보자.


대화의 속편을 새로 저술하여 지동설을 지지하는 듯한 주장을 철회하고 오로지 교회의 영광을 위해 쓰겠습니다. - 최후진술



→ 갈릴레오의 ‘대화’는 총 4일간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는데, 갈릴레오는 종교재판 2차 심문에서 ‘대화’의 닷새째와 엿새째를 추가하겠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정말 교회를 설득할 목적이었다면 책을 완전히 새로 쓰거나 내용을 수정하는 게 더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었겠지만 갈릴레오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물론 의도는 알 수 없지만). 그리고 극에서와는 다르게, 실제 교회에서는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걸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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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종교재판 모습


사도행전 1장 11절,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을 쳐다보면서 있느냐. 그러므로 하늘을 쳐다보는 자들은 불경하다, 아아아. - 아무말



→ 이 말은 반갈릴레오파(비둘기파)였던 톰마소 카치니라는 학자가 했던 말이다. 카치니는 갈릴레오를 굉장히 싫어했지만, 후에 갈릴레오가 교황의 지지를 받자 갈릴레오에게 호의적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철학은 우주라는 위대한 책에 쓰여있으며, 과학은 수학, 상징은 기하학이다. 따라서 수학을 모른다면 이 우주는 끝도 없는 미로가 된다. - 아무말



→ 이 구절은 갈릴레오의 책 ‘분석자’에 등장한다. 이 책은 문학사적으로도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는 책이다. 실제로 갈릴레오의 아버지는 음악가였고 갈릴레오 또한 미술, 문학, 악기 연주 등 다방면에서 우수한 재능을 펼쳤다. 여담으로, 갈릴레오가 이 책을 편찬한 후 한 학자와 논쟁이 붙었는데, 그 학자가 혜성이 전갈자리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을 펼치자 갈릴레오는 ‘차라리 네 책 이름을 <전갈>이라고 하지 그랬느냐’며 비웃기도 했다.



태초에 별이 생기고 신께서 예비하신 영광이 메디치 가문을 축복하나니, 메디치 별이여 영원하라. - 아, 슬프다(아부쏭)


→ 메디치 가문은 갈릴레오 외에도 미켈란젤로 등 다양한 예술가와 과학자를 후원했던 가문이다. 교황 배출만 두 번, 대대로 토스카나 대공의 자리를 가졌던 가문이었으며 17세기까지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가문이었다. 갈릴레오는 ‘시데레우스 눈치우스(별의 전언)’의 서문에서 메디치 가(家)를 찬양했는데, 실제로 그는 목성의 위성에 메디치 가 사람들의 이름을 붙였다.

현재는 ‘갈릴레오 별’이라는 별명이 붙긴 했지만 말이다. 갈릴레오가 로마에 들를 때 주로 메디치 저택 중 한 곳에서 숙박하기도 했고, 훗날 갈릴레오가 자택연금형을 받았을 때도 메디치 저택에서 머물렀을 정도로 둘의 인연은 각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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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데레우스 눈치우스(극 중에서는 '별들의 메신저'로 불린다.)



넷째, “그래도 지구는 돈다”의 정체는 무엇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근거 없음’이다. 갈릴레오가 ‘지구는 돈다’고 말했다는 첫 기록은 16세기도, 17세기도 아닌 18세기에 등장한다. 갈릴레오가 숨을 거둔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 미담이 전해졌다는 것, “땅을 발로 구르며 그래도 돈다, 라고 말했다”는 문장에 그 어떤 근거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무엇보다 공식 재판에서 지동설의 ‘ㅈ’도 꺼낸 적이 없다는 것을 근거로 하면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후배들이 만들어 낸 갈릴레오 신화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한다. 조금 씁쓸하긴 하지만, 잘못하다간 브루노처럼 끌려가서 화형 당할 지도 모르는 상황에 신념이 문제일까, 싶기도 하다.

갈릴레오가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말을 뱉지 않아서 그의 과학영웅적 면모가 확연히 줄어들긴 했을지 몰라도, 몸을 최대한 사린 덕에 그의 업적이 더 많이 남아있는 건 사실이다. 지구가 돈다는 말을 하든 안 하든 지구는 돌고 있었고, 갈릴레오는 진실을 알고 있었다. 갈릴레오뿐 아니라 많은 학자들이 천동설에 물음표를 띄웠던 시절이 바로 17세기다.

갈릴레오가 사망한 해 크리스마스에 태어난 뉴턴은 케플러의 이론과 갈릴레오의 이론을 모두 받아들인 데 더하여 만유인력 법칙 증명을 통해 과학혁명의 시대를 불러왔다. 데카르트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희대의 명언과 함께 회의주의와 근대 철학의 문을 활짝 열었다. 시대가 변하면서 패러다임도 변하기 마련이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실망하기에는 갈릴레오의 업적이 너무도 거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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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을 받는 갈릴레오 갈릴레이


프레디는 갈릴레오를 용서하지 않았다. 단죄한 적 없으니 당연한 결과다. 갈릴레오의 싸움과 여행은 자기 자신과의 갈등이었지, 신에게 무릎 꿇는 과정이 아니었다. 어쩌면 이 극에서 말하는 진실과 신념은 실제 갈릴레오 갈릴레이와 상당 부분 맞닿아있는 것도 같다. 교회에 맞서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지도 않았고, ‘그래도 지구는 돈다’며 외치지도 않았지만 일평생 우주와 별을 사랑했기에 우리는 이 위대한 과학자를 기억한다.

갈릴레오는 천국에 갔을까, 지옥에 갔을까. 망자에 따라 신의 모습도 변하는 세계인데, 천국이라고 모두 같은 양상을 띠고 있을 리 없다. 극 막바지에 갈릴레오가 밤하늘을 가로질러 무수히 펼쳐진 별빛 한 가운데 자리를 잡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천국이 아니었을까.




무대에 조명 빛이 하나둘씩 꺼지면
나의 주인공은 밤하늘 별이 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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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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