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집'도 꼬리표가 되는 세상에서 - 연극 "철가방추적작전"

우리는 어디로 가야할까
글 입력 2019.04.11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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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White)철가방추적작전_두산인문극장2019_아파트_두산아트센터.png


2012년, 서울 강북권의 한 영구임대아파트에서 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해당 아파트의 자살률은 1000명당 1.41명꼴, 2010년 전국 평균 자살률보다 4~5배 높은 수치였다. OECD 회원국 평균 자살률과 비교하면 12배가량 높았다.

이 영구임대아파트에는 1780여가구, 4250여명이 살았다. 4250개의 삶, 그리고 6번의 죽음을 한 가지 기준으로 재단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나, 계급제가 사라진 현대 사회에 여전히 계급의 상징이 잔존하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생각해볼 만하다.

연극 <철가방추적작전>은 김윤영의 단편소설을 각색한 작품으로, 균일한 외관 속 사회 경제적 차이가 존재하는 아파트에서의 사건을 다룬다. 언뜻 평범해 보이는 한 중학교 교실, 특정 사건이 발생한 후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던 적개심과 차별, 나아가 공존에 대해 되돌아보며 생각하게 되는 작품이다.

창작산실, CJ크리에이티브마인즈 등에 선정되며 창작 활동을 이어 온 박찬규가 각색을, 창작집단 LAS 소속 연출가 신명민이 연출을 맡아 무대를 꾸렸다. 극 중 배경인 수서지역 중학교를 직접 찾아 학생과 교사를 인터뷰하는 등, 다양한 사전 조사와 심도 있는 준비를 통해 완성도를 다져 갔다.


(홍보사진)철가방추적작전_초록.jpg
 


“얼핏 균일해 보이는 아파트 단지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어느 아파트에 사느냐에 따라 차별과 혐오의 시선들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극 중 학교 밖으로 뛰쳐나간 열여섯 살 정훈이와 그 행방을 쫓는 봉순자를 통해 그 시선들을 이야기하려 한다.”


- 박찬규




“몇 년 전, 100일 간격으로 6명이 자살했다는 강북 지역의 영구임대 아파트 단지를 다룬 기사를 읽었다. 기사는 그들에게 가중된 경제난과 박탈감, 소외감이 자살의 이유라고 했으며 사각지대에 놓인 그들의 생활과 그들을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을 다루었다. 그 중 강하게 기억에 남았던 단어는 ‘임대애’. 영구임대 아파트에 거주하는 아이들을 부르는 말이었다. 최저소득계층을 위해 지은 영구임대 아파트는 인근 주민들의 눈엣가시로 자리 잡았고, 보편적인 사회공간에 편입시킬 수 없는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이 작품은 그 경계에 대한 것이고, 임대 아파트 속 그들과 그들을 고립시키는 시선들에 대한 이야기다.”


- 신명민



이러한 임대주택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분양가구와 임대가구를 한 곳에 섞은 ‘소셜믹스’ 제도를 도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효과가 유의미한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나오는 현실이다. 이를 테면 임대동과 분양동을 분리해 임대가구와 분양가구의 차이를 가시화한다든지, 분양가구는 사용할 수 있는 아파트 내 시설을 임대가구는 사용할 수 없도록 차별을 둔다든지 하는 식이다. 유럽에서 활성화되고 있는 사회주택 제도가 우리나라에 뿌리 내리기에는 땅이 너무 좁고, 돈이 너무 없다. ‘임대’의 꼬리표를 뗄 수 있는 손은 국가보다도 사회 구성원 개개인에 달려 있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아이들은 차별에 더욱 취약하다. 임대가구 차별이 사회 문제다, 라는 문제의식을 갖춘 성인들조차 차별에 앞장서는 것이 현실인데, 하물며 그 성인들을 보고 자라는 아이들은 오죽할까. 아이들의 마음이 백지와 같다는 말은 그들의 순수성을 강조하는 문장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쉽게 물들 수 있다는 위험성을 내포한 말이기도 하다. 순수한 폭력일수록 눈에 띄지 않고, 눈에 띄지 않을수록 내면을 깊게 파고드는 법이다. 이제 더 이상 학교폭력은 ‘애들이 다 싸우면서 크는 거지’라는 너털웃음으로 넘길 만큼 가볍지 않다. 차별은 폭력을 부른다.


[크기변환](공연사진)철가방추적작전_두산인문극장2019_아파트_두산아트센터 (3).jpg
 

2013년부터 두산아트센터에서 꾸준히 진행 중인 두산인문극장에서는 인간과 자연에 대한 과학적, 인문학적, 예술적 상상력이 한 무대에 펼쳐진다. 빅 히스토리: 빅뱅에서 빅데이터까지, 예외, 모험, 갈등, 이타주의자 등 매년 다른 주제로 현재 우리 사회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는 장을 마련해 왔다.

올해에는 ‘아파트’를 주제로 강연 8회, 연극 <철가방추적작전>을 비롯한 공연 3편, 전시 1편을 4월 8일부터 3개월간 진행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탄생된 <철가방추적작전>은 우리 사회에 아직 만연한 차별과 폭력을 세밀히 해부하여 ‘당연한 질서’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극에서 던지는 질문은 임대아파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학교 밖으로 뛰쳐나간 열여섯 ‘정훈’의 행방을 쫓는 교사 ‘봉순자’는 ‘정훈’을 학교로 데려오려 노력하던 중 자신의 교육관에 회의를 품는다. 그간 외면했던 차별과 혐오, 그리고 불공평한 경쟁의 이면을 마주함과 동시에 현실을 맞닥뜨린다.

학생들이 고스란히 감내해야 했던 편견과 차별의 크기가 작았을 리 없고, 혐오가 만들어 낸 거대한 괴물을 관객과 함께 마주하며 현시대 우리의 위치를 고민한다.


[크기변환](공연사진)철가방추적작전_두산인문극장2019_아파트_두산아트센터 (9).jpg
 

양반과 중인, 천인을 구분 짓는 구시대적 계급제는 이미 지난 세기에 사라졌지만, 세대가 변하며 꼬리표도 변했다. 마음 편히 몸을 뉘일 아지트에서, 나의 보이지 않는 신분을 가시화하는 돋보기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결국 그 돋보기를 손에 쥐고 대상의 단편을 확대하는 주체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부자와 빈자, 분양주민과 임대주민의 이분법이 낳는 폭력도 마찬가지다. 아울러 연극 <철가방추적작전>이 조명하는 우리 사회의 음지를 마주하고, 앞으로의 위치를 고민하는 것도 우리의 몫이다.


[크기변환](공연사진)철가방추적작전_두산인문극장2019_아파트_두산아트센터 (7).jpg
 




□ 시놉시스

공공임대 아파트와 민간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 함께 다니는 수서의 어느 중학교. 이 학교에 다니던 정훈이 어느 날 가출을 한다.

평소 아이들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훈육하던 담임 교사 봉순자는 정훈이를 다시 학교로 데려오기 위해 그의 행방을 쫓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봉순자는 자신이 굳게 믿어왔던 교육관이 흔들리는 것을 경험하며, 그동안 외면하려 했던 차별과 불공정한 경쟁의 이면들을 목격하게 된다.



□ 공연개요

두산인문극장 2019: 아파트
연극 <철가방추적작전>

일시: 2019.4.9(화) ~ 5.4(토) 화수목금 8시 / 토일 3시  
*4.24(수) 4시, 8시(2회 공연)

장소: 두산아트센터 Space111

기획제작: 두산아트센터

원작 「철가방추적작전」, 김윤영 『루이뷔똥』 (창비, 2002)
각색: 박찬규
연출: 신명민
출연: 강지은 김효숙 이철희 전수지 김지훈 신창주 이종찬 김벼리

관람연령: 만 13세 이상
러닝타임: 90분





참고자료

경향신문, “공공임대아파트 ‘소셜믹스’ 정책은 실패했는가”, 반기웅 기자, 2018. 1. 28
한겨레, “100일간 6명이... 어느 영구임대아파트의 자살행렬”, 임인택 기자, 2012. 8. 27


[정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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