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보존보다는 보호를, 판소리뮤지컬 '적벽' [공연]

[판소리뮤지컬 적벽] 2019 정동극장 기획공연
글 입력 2019.04.04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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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판소리를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었다. 매번 강의시간 참고자료 영상으로 접하거나 TV에서 무형문화재로 소개될 때만 봤을 뿐이었다. 교과서에서만 소개되던 지루한 이미지의 판소리에 필자는 관심도 없었고, 관심을 가질 생각도 없었다. 판소리 뮤지컬 <적벽>을 관람하게 된 이유 역시 판소리보다는 뮤지컬에 있었다. 하지만 지금에서야 뒤늦게 깨닫는다. 필자는 그날 뮤지컬을 보러 갔다가 판소리를 느끼고 나왔다.

판소리를 생각하면 대충 이런 이미지가 떠오른다. 어두운 무대 한 켠, 소리꾼과 장단 맞추는 고수가 등장한다. 무대는 몇 시간이고 지속되고 이 시간을 이끌어가는 것은 오직 소리꾼과 고수, 둘 뿐이다. 따지자면 다소 정적인 분위기이다. 그 때문일까. 아이돌 그룹의 화려함과 역동성에 환호하던 대다수의 젊은이들에게 판소리는 분명 다가가기 쉽지 않은 장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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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판소리뮤지컬 <적벽>은 지금껏 필자가 알던 판소리와는 달랐다. 귀에도 달리 들렸고, 눈에도 달리 보였다. 우선 음악과 관련된 부분을 이야기하자면, 필자는 무대를 즐기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동안 어깨춤을 추고 싶었다. (?)

판소리에서 흔히 연상되는 지난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피리와 아쟁, 대금과 같은 전통 소리가 드럼과 어우러져 화려하면서도 전혀 색다른 조합이 울려 퍼졌다. 특히 세계관이 설명된 후 시작된 오프닝 넘버는 최근 들은 그 어떤 넘버보다도 필자를 흥겹게 했다. 아마 싱어롱 극장이었다면 막춤을 췄으리라.

비단 이 뿐이 아니었다. 판소리 창법 너머로 간간이 들려오는 뮤지컬 창법은 필자가 판소리에 느낄 심리적 거리감을 좁혀주었다. 무형문화재로서 도도함을 지닐 법한데도 대중과 트렌드를 지향해준 포용력 있는 태도에 기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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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명의 혼연일치가 만들어내는 칼 같은 안무들은 지루할 새 없는 볼거리를 선사했다. 전투 장면을 실제로 무등을 태워 달리는 식으로 표현하고, 하얀색부터 빨간색까지 상황을 대변하는 부채의 일사분란 활용으로 단순한 형태의 무대가 풍성하게 들어찼다. 또 단체 안무의 중간중간, 익숙한 스트릿 댄스의 자태가 엿보여 반가웠던 기억 역시 난다.

해서 판소리뮤지컬 '적벽'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듯하다. 전통과 트렌디의 조화.

*

한때 사극 영상콘텐츠의 고증 논란에 대해 토의를 진행한 적이 있다. <기황후>부터 시작해 <미스터 선샤인>, <안시성>까지 매번 등장할 때마다 고증 논란을 피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사극 콘텐츠이다.

필자가 속한 팀은 고증보다 엔터테인에 보다 주안을 둬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이유는 여러가지였다. 영화/드라마는 교육 영상이 아닌 엔터테인먼트라는 등, 돈을 벌어들여야 하는 산업의 일환이라는 등, 제대로 된 교육은 영화관이 아닌 교실에 요구해야 한다는 등 다양한 이유가 쏟아져 나왔다.

그 중 유독 기억에 남는 근거가 하나 있다. ‘역사를 보존해야 한다는 강박이 오히려 대중에게 심리적 진입장벽을 형성할 수 있다. 역사 보존을 이유로 창작 가능성을 자유롭게 허하지 않는다면 대중은 더더욱 역사를 어렵게만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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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혹자는 이렇게 말했다. 역사를 하나의 공에 비유한다면, 사람들은 선반에 두고 그저 바라볼 때보다 조물조물 자유롭게 가지고 놀 때 더욱 공에 애착을 갖고 오래 기억한다.

역사와 전통은 보존되어야 한다. 하지만 보존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이제는 조금씩 변화가 일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필자는 틀리면 안된다는 강박 하에 역사를 달달 외우기만 하다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마자 모든 것을 머리에서 증발시켰다. 만약 한국의 교육이 역사를 선반 위에 두고 달달 외워야 할 것이 아니라 마구 튀기고 늘려도 되는, 자유롭게 가지고 놀 것으로 만들어주었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졌을 것이다.

친구들과 연예인 이야기를 나누듯 삼국통일과 조선시대로 수다를 떨며 누가 맞았다, 누가 틀렸다 갑론을박 웃고 떠드는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집단 학습이 발생할 수 있지 않았을까. 현재로서는 친구들끼리 역사로 대화하는 모습 자체가 그려지지 않기에 한국사회가 얼마나 과목으로만 역사를 강요하고 있는지 새삼 실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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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역시 무형문화재라는 틀에 묶여 보다 다양한 변화를 꾀하기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대로 보존되는 것만이 보호라는 인식은 대중이 역사를, 그리고 판소리를 어렵게 느끼도록 만들었다. 결국 언제나 우리민족과 함께 했던 판소리는, 따지고 보면 굴러온 돌인 해외음악과 악기에게도 인기가 밀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대로 보존하는 것만이 보호는 아니다. 그것을 오늘날 대중의 눈높이에 맞게 마음껏 재창작할 수 있는 여유에서 소중한 우리의 것은 더욱 보호될 것이다. 판소리에 트렌디한 뮤지컬의 옷을 입힌 판소리뮤지컬, <적벽>. 필자는 이 용감한 시도를 했다는 점만으로도 작품에 충분히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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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
- 2019 정동극장 기획공연 -


일자 : 2019.03.22 ~ 05.12

시간
수-토 8시
일 3시
월/화 쉼

장소 : 정동극장

티켓가격
R석 50,000원
S석 30,000원

주최/제작
(재)정동극장

관람연령
8세 이상

공연시간
1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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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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