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연극 "함익" - 추락과 해방이라는 모순적인 염원

글 입력 2019.04.02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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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재벌 2세 함익은 영국에서 비극을 전공하고 돌아온다. 마하그룹의 외동딸로서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그녀의 일상은 화려하다. 상류층 인사들과의 사교모임, 남자친구 필형과의 근사한 데이트 등 누가 봐도 완벽한 삶을 누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녀의 내면은 고독한 복수심으로 병들어 있다. 자살한 엄마가 아버지와 새엄마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의심을 20년 가까이 버리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아버지의 폭력적인 권위에 맞서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한 채 가면을 쓴 인형으로 살아왔던 것이다.


복수와 일탈을 꿈꾸면서 숨 막히는 온실 속에서 생기 없는 꽃으로 살아가던 그녀는 그룹 산하의 대학교 연극학과 교수로 부임한다. 그리고 《햄릿》 공연의 지도를 맡게 된 함익 앞에 복학생 연우가 나타난다. 파수꾼 '버나도‘ 역을 맡은 연극청년 연우와의 만남은 외형만 화려했던 함익의 고독한 내면을 조금씩 흔들기 시작하는데….


*

햄릿으로 태어나 줄리엣을 꿈꾸는 여자.



연극 <함익>의 부제와도 같은 저 문구. 햄릿과 줄리엣을 모두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연극의 주인공이 얼마나 ‘모순적인 꿈’을 꾸는 사람인지 짐작할 수 있다. 햄릿은 아버지의 복수를 꿈꾸는 사람이다. 그의 마음은 증오로 가득 차 있고, 그의 주변은 그를 한없이 절망케 만든다. 아버지의 독살, 어머니의 근친상간, 친구와 연인의 배반. 끊임없이 악으로 물들었어야만 했던 가련한 인생이었다.


반면에 줄리엣은 사랑스러운 여인이다. 비록 그녀와 로미오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었지만, 그녀는 ‘진실한 사랑’이라는 숭고함을 온몸으로 드러냈다. 복수심과 분노로 마음을 채웠던 햄릿과는 다르게 말이다. 사랑과 증오라는 상반된 감정들. ‘함익’의 소망ㅡ‘햄릿’이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있는 인격으로부터의 탈피.

   

부유한 가정환경과 뛰어난 지성, 미모를 겸비한 그녀는 분명히 만인의 부러움을 샀을 것이다. 하지만 복수심으로 병든 그녀의 내면은 20년 전에 사고하기를 멈추었다. 새어머니가 자살한 자신의 어머니를 살해했을 것이란 의심, 그러한 와중에 끊이질 않는 아버지의 권위적인 폭력. 아마도 그녀는, 자신을 병들게 한 주변에게 복수를 꿈꾸는 동시에 주변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복수와 해방이라는 상반된 감정 사이에서 그녀의 병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시놉시스는 이러한 함익을 두고 ‘가면을 쓴 인형’이라 표현한다. 메말라가는 내면을 위장하기 위한 또 다른 얼굴. 세상을 살아내기 위해 그녀가 써야만 했던 ‘정상인다운, 상류층의 자제다운’ 가면. 연극 <함익>은 가면을 벗은 그녀의 얼굴을 폭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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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런 말을 했더라고요. 햄릿은 인간의 목소리로 신의 노래를 부르는 고독한 전사다. 우리가 꿈꾸는 우리들의 모습 속에는 분명 햄릿이 있는 것 같아요. 이루기 힘든 일을 향해 싸워나가고 싶잖아요? 그러니까, 햄릿은 꿈을 꾸는 사람이에요.”


 

이루기 힘든 일을 이루고자 나아가는, 그것을 꿈꾸는 햄릿. 햄릿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아버지의 죽음을 복수하는 것이 과연 그의 꿈이었을까? 만약 이것이 그의 꿈이었다면, 함익은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햄릿처럼 그녀의 꿈도 복수일지는 감히 확신하기 어렵다.


그녀의 염원은 복수보단 해방에 가까워 보인다. 물론 가면을 쓰고 세상을 살아갈 수밖에 없도록 일조했던 주변에게 복수하겠다는 마음도 있겠지만, 일생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얼굴을 벗어내고자 하는 것이ㅡ그녀의 진정한 꿈이 아닐까 감히 추측해본다. 연극을 관람한 후에는 이에 관해 더 확실히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녀 혹은 연극에 등장하는 누군가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굳이 삶과 죽음이라는 단일한 단어들이 아닌, 살아‘있음’과 죽어‘있음’이라는 상태로 표현한 이유는ㅡ자신의 존재 그 자체에 질문을 던지는 행위가 아니었을지. 그만큼 본 연극은 개인의 ‘존재에 대한 물음’을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고 느낀다. 사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각각의 단어와 표현들이 지니는 의미를 명확히 구분하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존재인지, 인간의 고독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우리의 자아는 어디를 지향하고 있는지와 같은 근원적인 물음. 이렇듯 단어 하나하나에도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는 모습에서, 본 공연에 대한 기대감이 더 높아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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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금의 연극들은 ‘가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풀어내는 것 같다. 멀쩡하지 않지만 멀쩡한 척 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세상. 연극을 포함한 다양한 문학, 미술 작품들이 이와 같은 세상의 모순을 보여주고 있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보여주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에게 사실을 보도록 요구하고 있다. 병든 사람들로 가득한 세계를 외면하지 말라고, 이야기해주는 것만 같다.


누군가 말했던 것처럼, 나도 미친 척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세계에서 우리는 발을 디디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그렇기에 함익의 서사도, 내면의 고통에 시달리는 그녀의 모습도 그녀에게만 일어나는 일이라 쉽게 단정 지을 수 없다. 우리도 일상을 살아가며 자신의 안과 밖이 일치하지 않아 고통에 시달리곤 하지 않는가. 그러므로 함익의 이야기는 비단 그녀의 이야기뿐만이 아니라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렇듯 본 공연은 첫 소개부터, 인간 개인의 존재에 관한 사유를 내비추고 있다.

 

연극 <함익>은 내달 12일부터 28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진행된다. 함익의 이야기가 어떤 결말을 맞이할지 궁금하다면, 발걸음을 잠시 멈추어 나 자신의 존재를 고민해보고 싶다면. 본 공연을 관람하며 해답을 찾으러 가보도록 하자.






함익
- 서울시극단 정기공연 -


일자 : 2019.04.12 ~ 04.28

시간
평일 오후 8시
토 오후 3시, 오후 7시
일 오후 3시
(월 공연없음)

장소 :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티켓가격
R석 50,000원
S석 30,000원
A석 20,000원

주최
(재)세종문화회관

주관
서울시극단

관람연령
만 13세이상

공연시간
100분


[이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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