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세상의 모든 '피해자'들에게 [공연]

글 입력 2019.04.01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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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여전사의 섬> Review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는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극장중 하나이다. 다른 극장처럼 규모가 크거나 객석 의자가 더 편한 것은 아니지만 작품에 따라 유연하게 변화하는 S씨어터만의 공간 활용이 참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방문할때마다 '그때 그 극장 맞아?'라는 생각이 매번 들 정도로 매번 작품에 가장 어울리는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는 것은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가 가진 장점 중 하나일 것이다.


 

[크기변환]s.jpg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입구의 모습


이번 연극 <여전사의 섬>을 위한 S씨어터는 불과 한달 전에 연극 <더 헬멧>을 보기위해 찾았던 때와 또다른 모습이었다. 항상 일반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무대와 객석을 만들어 놓았던 것에 비하면 <여전사의 섬>의 무대는 앞쪽에 무대를 두고 뒷쪽으로 객석이 놓여져있는 흔한 공연장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공연이 시작된 <여전사의 섬>은 흔한 모습의 무대와 객석을 흔하지 않은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배우들은 객석에서 등장하기도 때론 입장 게이트를 통해 등장하며 객석을 한바퀴 돌아 무대에 등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렇게 등장한 배우들은 공연이 끝날때까지 퇴장하지 않고 무대 위에 놓여져있는 의자에 앉아있다 필요한 장면에만 무대 중앙에 나와 연기를 하게 된다.


 

[세종] 서울시극단_여전사의섬_단체.jpg
 


이처럼 연극 <여전사의 섬>의 공간은 단순히 객석 앞에 놓여져있는 무대에 한정되어있지 않고 객석을 포함해 상하좌우로 확장되는 특징을 가진다. 자칫 산만할 수 있는 연출방식이지만 <여전사의 섬>의 공간 사용방식은 오히려 엄청난 몰입감을 전달하고, 이를 통해 작품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객석을 무대 일부로 사용하면서 관객은 작품 속 인물들을 먼 곳에서가 아닌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작품의 이야기를 가까이서 바라보는 것이 연극 <여전사의 섬>에서 중요한 이유는 작품의 내용이 단순히 허구의 인물인 지니와 하나의 이야기가 아닌 객석에 앉아있는 관객들의 이야기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세종] 서울시극단_여전사의섬_하나(김유민) 남자친구(장석환).jpg
 


강남역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하였고 작품 속 두 주인공 모두 여성이지만 연극 <여전사의 섬>은 '여성'이 겪게되는 어려움만을 다루고 있진 않다. 그보다는 일상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폭력을 보여준다. 그리고 물리적일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이러한 폭력들은 편견, 언어, 지위 등 다양한 힘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예를들어 취업준비생인 지니가 면접관과 카페사장으로 부터 언어적 또는 성적 폭력을 당하는 것은 지위의 차이에서 오는 폭력이며 남자친구와 예비 시부모님에게 물리적, 언어적 폭력을 당하는 하나는 물리적 힘 또는 지위의 차이가 원인이 된다. 심지어 중매결혼을 위해 외국으로 간 지니와 하나의 아버지가 겪게되는 폭력을 본다면 언어 역시 하나의 힘으로써 폭력의 원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렇듯 폭력은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힘, 다시말해 권력의 차이에서 나온다. 하지만 현실은 이러한 부당한 폭력에 대하여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닌 그것에 맞춰 나가길 요구한다. 결국 남게되는 것은 진짜 '나'의 모습이 아닌 남들에게 맞추어진 꾸며진 '나'일 뿐이다.



[세종] 서울시극단_여전사의섬_엄마(김원정)2.jpg
 


이런 문제에 대해 연극 <여전사의 섬>의 답은 매우 간단하다. '여전사의 섬'으로 떠나는 것이다. '여전사의 섬'은 작품에서 매우 상징적으로 사용된다. 아마데우스의 여전사인 지니와 하나의 엄마가 가고자하는 곳이었고 자신을 둘러싼 폭력에 맞써 싸우기로 결심한 지니와 하나의 모습을 보면 '여전사의 섬'은 부정한 폭력에 맞설 수 있는 무언가일 것이다.


하지만 '여전사의 섬'이라는 상징적인 공간을 통해 전하려는 작가의 의도는 80분의 러닝타임동안 분명히 드러나지는 않는다. 아마 여전사인 엄마의 캐릭터가 다소 모호했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여전사의 섬'을 앞서 말한 것 처럼 부정한 폭력에 맞서는 무언가로 생각한다면 엄마의 행동들은 그와는 조금 멀어 보인다. 쌍둥이를 두고 홀연히 떠나버리는 것은 맞서 싸우는 것 보다는 회피에 가까워보이기 때문이다.


꽤나 중요한 역할임에도 불구하고 작품은 엄마에 대해 친절하게 모든걸 설명해주진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엄마처럼 여전사가 되자!'라는 쌍둥이의 결심은 관객들로 하여금 '그래서 여전사가 뭔데?'라는 의문을 남게하는 것은 한가지 아쉬움으로 남는다.



[세종] 서울시극단_여전사의섬_지니(허진) 하나(김유민).jpg
 

몇가지 아쉬운점은 있었지만 초연인 것을 감안하면 연극 <여전사의 섬> 매우 완성도 있는 공연이다. 개인적으로 자신만의 진지한 고민을 하나의 예술로 표현하내는 작가의 모습이 무척 멋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재연, 삼연을 통해 계속 연극 <여전사의 섬>을 만나고 싶다. 작품 속 임주현 작가의 문제 의식이 개인적인 고민에 그치는 것이 아닌 우리 사회가 가장 필요로 하는 고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현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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