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SF뮤지컬 - 나는 왜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나 [공연]

글 입력 2019.03.29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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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 감상평 - 화려하지 않아도 좋았다


사실 공연을 보러 가기 전, 인터파크 티켓 평점이 좋지 않아서 걱정을 많이 했다. 짧게 적혀 있던 리뷰들은 대부분 시도 자체는 참신하지만, 제작비의 부족 탓인지 기타 무대 장치가 부족하며 의상이나 소품들이 유치하다고 평하고 있었다. 평소 뮤지컬을 굉장히 좋아하기 때문에, 뮤지컬이 재미 없기도 힘들다고 애써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면서 대학로로 혼자 향했다.


하지만 이런 걱정이 너무도 무색하게 공연은 내 취향에 딱 맞았다. 조금은 어렵고, 내용 흐름을 따라가기 벅찬 부분이 있었으나 공연 측에서 미리 나눠주신 시놉시스를 참고하면서 보면 감당 가능한 정도였다. 물론 제작비의 부족이 곳곳에서 눈에 띄기는 했고, 우리가 '지킬 앤 하이드' 등의 화려한 뮤지컬을 보러갈 때 기대하는 수준에는 당연히 못 미쳤지만 - 그래도 배우들의 연기 및 노래, 참신한 스토리가 던져주는 다양한 생각거리 등이 나를 한시간 반 동안 충분히 행복하게 해주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여주인공 미아보라 역을 맡았던 아린 님의 목소리와 연기, 의상이 정말 찰떡궁합이었다는 것이다. 극이 어느정도 진행된 후에 처음 등장해 노래를 하셨는데, 맑고 청아하면서도 강단 있는 그 목소리에 단번에 반해서 남은 공연 내내 미아보라의 등장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유울모 역을 맡으신 배우분 역시 목소리가 정말 좋아서, 두분이 듀엣을 하는 장면에서 약간의 전율을 느끼기도 했다.

사실 SF 뮤지컬이라고 해서 미래 사회를 표현하는 최첨단 효과나, 'SF'라는 장르가 연상시키는 웅장함 및 신비함을 기대하고 간다면 실망하게 될 확률이 크다. 그러한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부족하다. 하지만 오히려 기존의 뮤지컬에서 찾기 힘들었던 참신한 스토리, 노래 가사에서 표현되는 꽤 철학적인 주제들, 출연 배우들의 가창력 등 요소들에 가치를 두고 보러 간다면 나처럼 만족할 사람들도 많을 것이라 확신한다.



작품의 주제: 자연(미아보라) VS 반자연(밀양림)



<시놉시스>

밀양림은 과일조차 썩지 않는 최첨단 자연환경을 가진 세계이다. 사람이 사는 곳이지만, 사람이 운영하지 않는 곳, 밀양림. 유울모는 바깥세상에서 밀양림으로 돌아왔다.

바깥세상은 잿빛으로 가득한 곳이지만, '생명'이 있는 곳이다. 유울모는 바깥세상을 계속 회상하게 된다. 그런 그의 앞에 나타난 미아보라, 그녀에게서 '바깥세상'을 느낀 유울모는 사라진 그녀를 쫓기 시작하고, 밀양림을 파괴하려는 자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파괴하려는 공안부! 우리는 어디에서 살아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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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전에 받은 종이에, 원작 소설 작가 김진우 님께서 작품 감상에 도움이 될만한 사항들을 적어놓으신 글이 있었다. 그 글에서, 작품의 주제가 '자연 대 반 자연, 생명 대 기계, 아름다움 대 추함'이라고 나와 있었다. 극을 다 감상한 뒤 여러 주제들 중에서도 내가 매료되었던 건, 자연 대 반 자연의 주제였다.

지구가 이미 폐허가 되어버린 먼 미래에, 밀양림이라는 최첨단 인공 도시가 세워진다. 밀양림에서는 아무 것도 썩지 않으며, 사람들은 우울함을 잊은 채 향락을 즐기며 살고, 사람들의 집은 미로 같이 복잡한 설계 속에 각기 멀리 떨어져 있고, 인공지능이 모든 도시를 통제하며 불편함을 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제거한다. 유울모는 바깥 세상으로 출장을 나갔다가 돌아온 뒤, 폐허였던 그 곳에 대한 이상한 향수를 느낀다.

그 향수에 불을 붙인 건, 그가 보자마자 사랑에 빠져버린 '미아보라'라는 여성이다. 미아보라는 쥐를 찾으러 유울모의 집에 찾아온다. 그녀는 점점 식물로 변해버리고 있는 사람으로, 이 공연에서는 '자연'을 표상하고 있는 인물이다. 미아보라는 쥐를 찾으면 연락을 달라고 말하며, 그렇게 그들의 인연은 시작된다.



인상적이었던 대사 - 별이 빛나는 건 어둠이 있기 때문이야


극에서 자연은 썩은 것, 추한 것, 우울한 것 등의 부정적 이미지와도 많이 결부된다. 아무 것도 썩지 않는 밀양림에 비해, 자연에서는 많은 것들에 쉽게 곰팡이가 슬어 버린다. 우울함을 느낄 새도 없이 전자 마약 등에 중독되어 버리는 밀양림의 삶에 비해, 지구에서의 삶은 자주 힘들고 공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는데도 유울모는 자꾸만 바깥 세상을 갈망한다. 그건 왜일까?

극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대사는 - 정확히 기억해낼 수는 없지만 - '별이 빛나는 건 어둠이 있기 때문이야'라는 대사였다. 슬픔이 없다면 기쁨이 무슨 소용일까? 아무것도 썩지 않는다면 생명과 활기가 왜 찬란한 걸까? 어떤 것도 추하지 않다면 어떻게 우리는 아름다움을 지각할까? 자연은, 자연스럽기에 더 소중한 것이다.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행복이 진정한 행복이 맞는지에 대해, 김진우 작가는 통렬한 비판적 시선을 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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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적 결말 : 유울모는 왜 다시 사과를 먹은걸까?


극은 마지막으로 갈수록 빠르게 전개된다. 미아보라는 사실 밀양림에 맞서 싸우는 반군의 지도자였고, 유울모는 그 반군에 의해 죽임을 당할 뻔했지만 다행히 살아 남는다. 하지만 반군의 위치는 밀양림을 관장하는 인공지능에 의해 파악당하고, 모두 위험에 처한다. 미아보라는 밀양림을 파괴하는 데 성공하는 듯 보이지만, 이미 인공지능은 전류를 활용해 세계 전체에 뿌리내리고 있기에 결과적으로 디스토피아는 영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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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유울모가 밀양림의 역사를 전부 담고 있다고 여겨지는 사과를 한 입 베어물면서 끝난다. 아마도 자연과 반자연의 대립에 섰던 유울모가 결국 다시 밀양림의 일원으로 귀속됨을 암시하는 것일 테다. 결말은, 굳이 따지자면, 디스토피아적이다. 자연과 반자연의 대립에서 반자연이 이기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실을 만들어나가는 건 인간 자신이다. 아직 우리 사회에 밀양림은 생겨나지 않았으며, 지구도 연극에서처럼 완전히 파괴되지 않았다. 연극을 연극으로 남기고, 미래를 자연과 함께 가꾸어 나가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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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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