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안녕, 달. [도서]

안녕달 작가의 그림책 이야기
글 입력 2019.03.29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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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달이라는 독특한 필명으로 활동하는 그녀는 얼굴도, 본명도, 나이도 공개하지 않은 채 활동하는 그림책 작가이자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이다. 책 뒷면에 간략이 적힌 ‘물 흐르고 경치 좋은 산속 학교에서 시각 디자인을 전공했고, 지금은 저 멀리 바닷가 근처 학교에서 일러스트를 공부하고 있다.’가 그녀에 대해 알 수 있는 전부다.


안녕달이라는 보다 독특하고 예쁜 이름은 우연히 라디오에서 한 인디밴드가 ‘이름이 예뻐 종종 공연에 불러준다.’는 얘기를 듣고 자신도 예쁜 이름을 가지면 출판사에서 많이 불러줄까 하는 생각에 짓게 되었다고 한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그녀는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면서 비는 시간에 틈틈이 쓴 그림책들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그녀가 그린 책으로는 ‘잘 자 코코’, ‘우리는 언제나 다시 만나’ 등이 있고 그녀가 그리고 쓴 책으로는 ‘왜냐면…’, ‘메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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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첫 그림책은 ‘수박수영장’으로 2015년 7월 27월 창비에서 초판 1쇄를 찍은 후 1년도 되지 않아 6쇄를 찍고 30000부 이상 팔렸다. 현재는 2017년 7월 기준으로 18쇄를 찍은 상태다. 10000부도 팔리기 어려운 그림책 시장에서는 실로 어마어마한 성과다. ‘수박수영장’은 수박 껍질을 잘라 미끄럼틀을 만들고 커다란 수박씨를 파서 동네 사람들 모두 수박에서 수영한다는 독특하고 따뜻한 내용의 그림책이다. 기발한 상상력이 톡톡 튀는 이 작품은 작가가 수박씨를 빼려고 수박에 손을 넣었다가 시원해지면서 물이 고이는 것을 보고 구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원래는 애니메이션을 위해 카메라 워킹을 고려하며 만든 작품이라 2차원 평면에서 구현된 그림임에도 영상과 같은 생생함이 살아있다. ‘수박수영장’이 특별한 점은 책의 겉모습에서도 드러난다. 보통의 책들과는 달리 속지의 테두리들이 모두 수박처럼 붉게 칠해져 있다. 파란 하늘색 표지에 붉은 속지들을 보고 있노라면 ‘수박 수영장’이라는 이름에 딱 맞는 독특하고 예쁜 디자인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수박수영장’은 그 인기에 힘입어 2016년 중국으로 수출되어 광서 사범대학 출판그룹에서도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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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수영장의 붉은 속지



‘수박 수영장’으로 큰 성공을 거두고 그녀가 출간한 두 번째 작품은 ‘할머니의 여름휴가’이다. 안녕달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출간하기 5년도 더 전에 공모전에 제출하려 쓴 작품인데 번번이 낙방하고 출판사에서도 여러 번 거절당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할 줄 알았다고 한다. ‘할머니의 여름휴가’는 몸이 아파 휴가를 가지 못하는 할머니가 손자가 준 소라 속으로 강아지 ‘메리’와 함께 들어가 바닷가에서 휴가를 보낸다는 내용으로, 역시 안녕달 작가 특유의 따뜻함과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녀의 작품에는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자주 등장한다. 작가는 자신의 동네에 사시는 독거노인 분들의 느릿느릿한 움직임을 좋아했다고 한다. 자신이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할 때, 거의 백수로 살면서 바라본 세상을 그림책에 고스란히 담아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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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에서 꽃무늬 수영복을 입은 할머니 캐릭터의 탄생 배경도 상당히 재미있다. 대학시절 노래를 듣고 홍보물을 만드는 과제가 있었는데 작가는 그 노래를 듣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을 하는 모습이 연상되어 애니메이션과 함께 홍보용 모빌을 만들었다. ‘할머니의 여름휴가’를 그릴 당시 방에 달려있던 홍보용 모빌을 보고 자연스럽게 모빌의 할머니 캐릭터를 차용했다고 한다.


이 포근하고 맑은 색감의 그림책 또한 2017년 7월 기준 8쇄를 찍으며 6개월 만에 만 부가 넘게 팔렸다. ‘할머니의 여름휴가’는 상업적 성공뿐만 아니라 문학적으로도 성공을 거둬 제57회 한국 출판문화상 어린이 청소년 부문을 수상했다. 작가는 Yes24웹진 채널 웹진과의 인터뷰에서 ‘할머니의 여름휴가’가 어린이와 부모님뿐만 아니라 손자를 돌보는 할머니, 할아버지께도 작은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언젠가 여건이 된다면 어른을 대상으로 한 그림책도 만들고 싶다는 소망도 밝혔다.


창비에서 출판된 두 권의 책은 내용적인 측면은 물론 형태적인 측면에서도 훌륭하다. 두 권 모두 양장본 하드커버로 페이지는 50쪽이 조금 넘고 가로 세로 평균 20센티가 넘는다. 반짝이지 않는 두꺼운 도화지 느낌의 종이 위에 인쇄된 그림은 작가 자신도 놀랄 만큼 원화의 느낌을 잘 살렸다. Yes24웹진 채널 웹진과의 인터뷰에서 안녕달 작가는 평소 인쇄로 구현되기 힘든 색들을 자주 쓰기 때문에 종이의 선택을 중요하게 여기는 편인데, 이번에는 만족스럽게 출판된 것 같다며 디자이너 분에게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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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왜냐면...의 일부


그녀의 다음 작품은 책읽는곰에서 출판한 ‘그림책이 참 좋아’ 시리즈의 40번째 책, ‘왜냐면…’이다. ‘왜냐면…’은 유치원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아이의 ‘왜요?’라는 질문과 어머니의 무심하고도 다정한 대답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기발한 상상력의 그림책이다. 굳이 과학적인 정답을 말하지 않아도, ‘물고기가 등을 긁지 못하는 건 효자손이 없어서야.’라는 엄마의 대답은 아이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은 물론, 엄마와의 대화가 놀이 그 자체가 된다. 엄마와의 놀이와 함께라면 바지에 오줌을 지렸다는 부끄러운 일도 ‘고추 옆에서 자란 바지가 매워서’라는 유머 넘치는 이야기로 승화된다.

많은 동화책들이 아이들의 언어 발달을 위해 의성어나 의태어를 많이 사용하지만 안녕달 작가가 이를 활용하는 방식은 다른 그림책과는 다르다. 인쇄체로 적힌 큰 줄거리 외에도 안녕달 작가의 책에서는 항상 만화처럼 손으로 정성스럽게 적은 자투리 글귀들이 있다. '왜냐면......' 속 물고기들이 목욕탕을 가는 장면에서 ‘박박’이라는 의태어와 ‘엄마 살살’이라는 아기 물고기의 외침은 아이와 어른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재밌는 변주다.


2017년 10월 12일 사계절에서 출판한 ‘메리’는 할머니 집의 강아지로 역시나 소소하고 따뜻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그림책이다. 메리는 실제로 안녕달 작가 할머니 집의 개 이름으로, 할머니는 키우는 강아지들을 모두 ‘메리’라고 부르는데 여러 마리의 ‘메리’들 중 책의 주인공이 된 메리는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메리라고 한다. ‘할머니의 여름휴가’에서 할머니와 휴가를 떠났던 메리가 이제는 주인공이 된 것이다.


실제 메리를 주인공으로 하다 보니 작품 속 메리의 집과 할머니 집 마당, 그리고 메리의 모습 또한 실존하는 배경들을 바탕으로 한다. 사실적인 시골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는 작가는 이를 위해 마당의 잡동사니들 또한 그림에 그대로 살려냈다. 작가 자신의 경험을 살린 작품이니만큼 곳곳에 숨겨진 디테일을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나 ‘할머니의 여름휴가’와는 달리 ‘메리’는 실제 할머니들이 입으시는 옷들을 참고하다 보니 색깔이 전반적으로 짙고 할머니 집 또한 무채색과 원색이 많이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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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메리'의 한 페이지



메리의 사실적인 특징이 그림에서만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메리’의 자투리 글귀들은 경상도 사투리들로 가득 차 있는데, 작가 자신은 사투리를 못해서 할머니가 하시던 말씀을 그대로 베꼈다고 한다. 정겨운 사투리와 작가의 실제 경험이 녹아든 ‘메리’는 사실감을 최대한 살린 만큼 전작과는 달리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다. 갑작스러운 할아버지의 장례, 혼자가 된 할머니가 느끼는 외로움과 부모의 이혼으로 할머니 집에 살게 된 소녀, 그리고 한쪽 다리가 짧은 막내까지 다 뺏겨버린 메리의 슬픈 울음소리까지. ‘메리’는 어린아이뿐만 아니라 시골집과 시골 개의 추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슴이 따뜻해질 작품이다.


안녕달 작가는 현재 외국에서 거주하며 일러스트레이터를 공부하고 있으며 수박 수영장 출간 이후 마감에 쫓기는 삶을 보내고 있다.



* 모든 사진은 안녕달 작가 홈페이지에서 가져오거나 직접 촬영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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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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