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래서 왜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나? [공연]

세계관은 좋았지만, 뮤지컬로서는..
글 입력 2019.04.03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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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판타지를 예전부터 좋아했다. 가만 생각해보면, 잠을 줄이고서라도 읽을 수 있는 책은 장편소설 판타지물이었다. 해리포터가 그랬고, 삼국지가 그랬고. 드래곤라자, 트와일라잇 시리즈와 헝거 게임 시리즈, 원헌드레드(100)가 그랬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만 파거나, 관련된 상품을 모으는 타입은 아니었다. 해리포터를 애정 해서 영국으로 놀러 가 사진을 찍는 사람들과는 다르게, 정말 판타지 그 자체를 즐겼다.


캐릭터가 사랑스럽다거나, CG가 멋있어서는 아니었다. 책마다, 영화마다 다른 그 세계가 나에겐 동경의 대상이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과는 너무나 다른 철저한 세계관, 그리고 그 속에서 당연하게 사는 사람들. 해리포터가 충격을 주었던 건, 나와 같은 '머글'에 불과했던 해리가 사실은 마법사였다는 그것이 나에게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능성을 던져주었기 때문이다.


트와일라잇에서도 평범한 인간 여자 벨라가 늑대인간과 뱀파이어와의 사랑 사이에서 갈등한다. 아주 평범한 사람이 주인공으로 등장해서 평범한 사람들에게 기대감을 준다. 우리도 어쩌면 그런 세계에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나니아 연대기나 반지의 제왕 같은 정통 판타지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기묘한 존재가 은근슬쩍 끼어들어 와 동화된 듯 보이는 그런 판타지를 좋아한다.




밀양림과 바깥세상



<나는 왜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나?>를 무척 기대했다. 연극에서 판타지를 본다는 것이 시각적으로도 충분히 엄청난 자극이 될 뿐만 아니라, 프리뷰를 작성할 때 이미 그 세계관에 반했기 때문이다.


가난한 자들이 사는 바깥세상과 부자들만 사는 최첨단 세계 밀양림이 대조되었다. 밀양림에서만 존재하는 기술인 원격 섹스라거나, 동물 실험 '치킨 마우스' 등 흥미로운 요소가 매우 많았다. 단지 제목을 왜 그렇게 지었는지 조금 아쉬워했을 뿐이었다. '그녀'란 것이 밀양림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기도 했다. 어쨌든 그렇게 기대를 안고, 판타지 소설을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 연극을 보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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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여자

대과거와 과거와 미래, 각각의 시점에 여자가 한 명씩 등장한다. 주인공 율모의 여자친구는 대과거에 존재하는 사람이다. 밀양림에서 함께 살았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그녀는 일반적인 밀양림 사람답게, 더 큰 즐거움도, 아픔도 느끼지 못한다.

과거의 여자는 '바깥세상'에서 율모와 함께한 여자다. 그리드 간격이 커서 살이 보이는 망사스타킹을 신고, 캉캉스타일의 미니스커트를 입은 그 사람은 마치 서커스단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옷차림이다. 공중곡예를 하는 사람이 그런 옷을 입을까 싶었다. 그녀는 매우 유쾌하지만, 그 유쾌함은 세상의 모든 더러운 것을 알고 있기에 나오는 체념과도 비슷했다. 바깥 세상에서 밀양림으로 건너올 수 있는 기회는 밀양림의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녀는 필사적으로 율모와 결혼하려고 애쓴다.


율모가 다시 밀양림으로 돌아왔던 어느 날 미아보라라는 여자를 만나게 된다. 밀양림의 사람들에게 소외받아 식물이 되어가는 그녀에게 관심을 갖고, 자꾸만 만나려고 한다. 그러나 미아보라는 그의 현재가 되지 못한다.




그래서 왜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나?



일단 스토리 전개 자체를 약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SF 판타지물이라고 홍보를 해놓고 정작 장르는 로맨스였다고 할까.


물론 밀양림의 음모가 중간중간 나오긴 했지만, 지극히 서브 줄거리에 불과했다. 가장 중점적으로 음악과 함께 노래한 것은 주인공 율모와 식물인간 미아보라의 사랑 이야기였고, 미아보라가 왜 사라지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밀양림이 배경으로만 등장하는 정도라 너무나 아쉬웠다. 그래서 결국 왜 그녀를 사랑하게 된 건지는 끝내 이해하지 못했다.


같이 간 친구도, 밀양림의 인공지능 판의 음모가 서서히 드러날 때부터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줄 알았다가 결국 반전도 없이 사랑과 이별의 결말로만 흘러가서 잘 이해를 못 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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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적 요소와 괴리감



더욱 안타까웠던 것은 무대 자체를 더욱 썰렁하게 만드는 공백이었다. <나는 왜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나?>는 일반적인 뮤지컬과는 다르게 등장인물이 소수로 등장할 때 주로 노래를 불러서 조금 허전한 느낌이었다. 또, 노래 전후에 대사보다는 공백을 너무 많이 넣어서 극이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는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다.


무대의 장면 하나가 짧은 편이라 화면 전환도 빠른데, 주인공이 대사를 내뱉는 것보다 행동 위주로 더 많이 보여주어서 아주 조용한 편이었다. 예를 들면, 여자친구와 원격섹스를 하는 장면을 그냥 나란히 옆에 앉아서 신음을 내는데 미리 줄거리를 읽고 가지 않았다면 전혀 이해하지 못할 모습이었다. 판타지라 설정이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으니, 조금 더 구체적으로 원격 섹스란 게 어떤 건지를 보여주면 좋을 텐데 단순한 효과음만으로 처리했다는 게 안타까웠다.


또, 식물인간이 주인공에게 쥐를 잃어버렸다며 찾아달라고 했을 때 쥐를 찾는 장면 자체가 지나치게 길었다. 주인공이 무대 한 바퀴를 아주 느린 걸음으로 걷는 동안 어떤 긴박함도 없어서 지루해지고 분위기가 처졌다.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장면인 쥐를 죽이는 장면에서 관객에게 어떤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일방적으로 쥐만 죽이는 행위만을 했다. 그것만 보고 쥐가 죽는 줄도 몰랐다. 많은 인물을 출연시켜서 좀 더 바글바글한 느낌과 공포스러운 느낌을 연출하면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동물의 탈을 쓴 인물들을 등장시켜서 얼마나 밀양림이 무서운 음모로 가득 찬 곳인지를 보여주는데, 그 연출도 너무 아쉬워서 속상할 정도였다. 엄청나게 무서워야 할 장면인데 전혀 무섭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내가 생각한 SF 영화의 긴박하고 긴장감 넘치는 이미지와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어서 더욱 아쉬웠던 것 같다. 혹시 첫 공연이라 익숙지 않아서 그런가 하고 다시 찾아봤는데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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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를 좋아하는 이유는 현실을 잊을 수 있을 만큼 엄청난 느낌에 압도당하기 때문이었다. 소설을 읽어도, 영화를 봐도 판타지는 판타지라는 이유 자체만으로 현실을 넘어서 버린다. 내가 잊는 곳이 어딘지 알 수 없을 만큼, 내가 한없이 작아지는 그 느낌. 그런 엄청난 몰입감을 위해서 무언가를 보러 다니는 나에게는 무척 큰 실망이었다.


그러나 배우들 각각의 실력은 훌륭했다. 다들 전문적인 뮤지컬 배우라고 해도 될 정도로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가사에 대한 전달력도 아주 좋았다. 그 흡인력이 노래에서만 끝나지 않고 극 전체를 이끌어갈 연출이 뒷받침되었다면 훨씬 더 좋은 뮤지컬로 발전할 것이다. 원작인 <소셜포비아>를 읽어볼 예정이다.



[박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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