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에게 Calvin Klein이란? [기타]

아르바이트가 남겨준 소중한 유산들
글 입력 2019.03.20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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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에서 조금만 걸어나가면 있는 버스정류장에서 21번 버스를 기다렸던 나. 그때의 내가 지금은 다시 이렇게 하나의 추억이 된다. 가끔 멍하니 창밖 경치를 구경하기도, 때론 아침 9시에 시작하는 이미숙의 클래식 라디오를 들으며 출근했던 롯데아울렛. 그곳의 캘빈 클라인에서 8개월 남짓 근무했던 적이 있다. 내가 여태까지 해왔던 알바들은 보통 단기간 매장 근무였거나 영어학원 조교 일이었는데 캘빈클라인은 이렇게 오랜 시간 함께 내 시간을 나눠왔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사뭇 남다르게 느껴진다.


매장에서의 첫 시간은 청소하며 디스플레이상품을 정리하고 빈 상품들을 채워 넣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11시가 되면 롯데아울렛은 직원들을 대상으로 인사교육과 '오늘도 파이팅'이라고 외치며 응원방송을 내보낸다. 그렇게 알바생으로서의 내 하루는 시작된다. 오늘은 또 어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하는 걱정을 조금 머금은 설레임으로.


아울렛에서 일하게 되면 아주 다양한 손님들을 만날 기회가 찾아온다. 내가 근무한 매장은 캘빈클라인 콤보매장으로 JEAN 매장보단 UNDERWEAR 쪽을 주로 맡았다. 아들 속옷을 보러 오신 어머님들, 여자친구 선물을 위해 찾아주신 남성분들이 있는가 하면, 보기만 해도 흐뭇해지는 모녀지간, 커플들, 그리고 아주 가끔은 회사 MT 행사 때 보물찾기 선물로 파격적인 속옷을 쇼핑하러 오신 특별한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하루에도 수십 명의 손님들을 만나는 것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소통한다는 점에서 나름의 의미가 있는데, 근무기간 동안 가장 좋았던 것은 바로 손님들로부터 내가 얻은 다양한 가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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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내게 선물해 준 첫번째 가치는 인사성이 가진 놀라운 힘이었다. 서비스업종에 근무하는 직원으로서 가장 충실해야 할 기본 에티켓은 바로 인사성이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같은 인사라도 좀 더 진심을 담은 묵직한 인사는 그 무게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쇼핑과는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불가피한 현대의 소비사회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아마도 직접 경험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매장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멀리서지만 자신을 향해 건네지는 인사는 왠지 모르게 물건을 사기 전부터 내가 고객으로서 존중 받는 느낌을 심어준다.


또한, 과하지 않은 친밀성도 아울렛 직원이 갖추어야 할 필수적 요소다. 고객들이 상품을 정말 필요로 해서 매장을 방문했을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일단 밝은 미소와 함께 친밀하게 다가가면, 고객들의 마음은 소비개념을 벗어나 한층 편안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속옷이 가진 고유한 특성 때문에 선뜻 먼저 묻기 쑥스러워하시는 분들도 많아서 내 입장에서 친밀함을 지닌 적극성은 피할 수 없는 가치들 중 하나였다. 예전이라면 상상도 못했을 수줍음 많은 내 성격이 많이 바뀌게 된 이유엔 이러한 알바 경험도 한 몫 했지 싶다.


가장 중요했던 것은 책임감의 무게를 더욱 진중하게 배울 수 있었던 것이었다. 손님의 니즈파악 후 상품 추천, 상품 찾기, 포장과 최종계산 업무까지, 한 고객에 대한 모든 전반적 과정을 내가 이끌어야 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내가 맡은 일에 대한 책임감의 중요성이 얼마나 큰지를 몸소 실감했다. 이렇게 손님들은 단순히 우리 매장을 방문한 사람들을 넘어 내게 여러 소중한 가치를 배울 수 있게 만들어준 멘토 같은 존재였다. 특히 다음에도 날 기억하고 다시 찾아주시는 단골 손님들은 내게 더더욱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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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어김없이 우리 매장을 찾아온
반갑지만 무서운 박스들


아울렛 알바는 생각보다 일이 많다. 단순히 판매업무만 맡은 것이 아니라 매장관리와 상품정리 등 여러 복합적 업무가 연결돼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내가 일했던 곳은 콤보매장이라서 캘빈클라인 진, 언더웨어, 악세서리, 퍼포먼스 상품들을 모두 판매했기 때문에 언더매장 상품만 10박스 들어오는 날도 비일비재했다. 카트에 차곡차곡 쌓여진 박스 탑이 매장으로 들어올 때면 지레 겁부터 먼저 먹었던 초기의 날들이 기억난다. 정리 하나 하는 것이 온종일 걸렸던 나는 일이 익숙해진 후 속도감이 붙을 때 정말 신이 났었다.


매니저님으로부터 배운 빠른 정리 TIP을 써먹어 박스들이 하나하나 사라질 때면 마치 게임에서 미션을 달성하는 기분이었다. 박스가 오는 날은 하루종일 일에 치여 피곤하기도 하지만 그것을 이겨낼 수 있게 만들어주는 처방전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신상품을 개봉하는 설렘은 아울렛이나 백화점 직원들만이 누릴 수 있는 멋진 특혜이기 때문이다. 기존 상품들과 신상품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비교해보는 재미도 쏠쏠했고, 손님들께 적용할 나만의 판매전략을 세워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매장의 또다른 중요한 업무 중 하나는 RT 업무다. RT는 매장별 이동을 의미하는 말로, 본사 지시하에 수행되어 각 지역의 매장들의 상품이 고른 간격으로 순환될 수 있게 만들어 주고, 매장 간 서로 필요한 제품들을 보내주기도 한다. 처음에 근무할 때 RT 목록이 뜬 서류를 보면 뭐가 뭔지 도통 구분할 수가 없었다. 상품명이 QF1446-8SB, NB2001-2OR 이런 식으로 표기되어 있어서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상태에선 내게 상품 하나 찾기란 숨어있는 상품을 발굴하는 것과 같았다. 다행히 그땐 같이 일하시던 언니가 계셔서 정말 큰 힘이 돼주셨는데, 나중에 언니가 개인적 사정으로 그만두신 후 혼자 그 업무를 맡아야 할 땐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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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한 상품 정리 현장


하지만 어떤 일이든 시작이 힘든 것이라는 말이 사실이었다. 처음 상품을 뒤적거리며 하나하나 공부해야 하는 수고와 번거로움이 있었지만, 나중에 시간이 흐른 후엔 상품 찾기의 MASTER급에 도달한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땐 거의 모든 상품명과 컬러번호를 알고 있었고 RT 상품을 찾는 업무가 재미있다고 느끼는 경지에 도달했다.


비록 시작은 힘들었지만, 이런 힘든 과정들은 결국 나를 더 큰 성장으로 이끌어 준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한번은 어떤 매장에서 RT 상자에 우리 매장 직원들을 위한 초코파이와 핫브레이크 같은 간식거리를 함께 보내온 적이 있었다. 매번 반복되는 업무 속에서 가끔 회의감이 찾아오곤 할 때, 이런 작은 마음은 매장 직원들 간 서로 웃음을 나누는 따뜻한 시간을 선물해주었다.


일머리가 별로 없었던 나는 처음 잘 모르던 때가 제일 두려웠다. 손님들이 어떤 상품에 대해 물어보시거나 뭔가를 찾아달라고 부탁하실 때 내가 몰라서 도움이 되지 못할 땐 상심이 컸던 것 같다. 하지만 그때로부터 날 성장시켜 준 것은 바로 동료들의 도움이었다. 다른 매장에서도 여러 번 근무해봤고 또 아울렛의 여러 매장을 봤음에도 난 우리 매장 분위기가 제일 좋다고 자부했다. 상호 간의 원활한 소통과 서로에 대한 배려와 친절은 내가 힘든 순간들을 잘 이겨내고 도와주었고,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 행사장에서 힘낼 수 있는 원동력을 불어넣어 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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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를 맞아 새롭게 배치된 후,

기존에 누리지 못했던 인기를

원없이 누리고있는 상품들



또 하나 배울 수 있었던 것은 약간의 마케팅 전략이다. 매니저님께서 알려주신 대로 가끔 매장의 디스플레이를 바꿔 손님들에게 신선함을 제공하고, 기존의 배치가 효과가 없을 땐 새롭게 배치해보는 것도 도움이 됐다. 특히나 인상 깊었던 것은 기존에 인기가 많이 없었던 상품들도 매니저님께서 크리스마스 시즌 동안 포장방식을 달리하여 매장 입구 쪽에 배치했더니 반응이 좋았던 것이었다. 같은 상품이라도 어떤 각도로 접근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아주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이렇게 일과를 마친 후 집에 돌아가 가족들과 야식을 시켜먹는 날은 정말 행복했었다.


많은 사람들은 삶 속에서 다양한 아르바이트 경험을 가진다. 하지만 알바경험이 단순히 물질적 풍요를 추구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시간이 지난 후에도 좋은 추억, 그리고 자신을 더욱 성장시켜 준 멘토로 남아있게 하기 위해선 일할 때의 마음가짐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근무시간 만큼은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쏟아부을 수 있을 때 더 많은 배움과 소통의 기회가 찾아온다. 매니저님께서 회식 때 직원들께 해주신 말씀이 떠오른다.


"너희 스스로를 계산대 직원으로 만들려고 하지마."


매니저님의 말씀은 때때로 업무가 많아 손님들께 소홀했던 지난날의 나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단순히 손님이 들고온 것을 계산해 주는 업무는 누구나 금방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를 알바생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 하루를 멋지게 빛내고자 결심하는, 자신을 더욱 아낄 줄 아는 사람으로 여긴다면, 반복되는 일상에서도 어쩌면 뜻밖의 기적이 찾아오는 순간들이 반드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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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때가 되면 켜지는
조명이 참 멋졌던 롯데 아울렛,

오랜 기간 함께 할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휴학 동안 근무했던 캘빈 클라인은 내게 가족 같은 브랜드로 재탄생했다. 그곳에서 일하며 너무나 따뜻한 또 하나의 가족을 얻었고, 지나가다 캘빈클라인 상품을 입은 사람들을 보면 괜스레 뿌듯해진다. 하지만 8개월이라는 긴 시간도 나를 브랜드에 대한 애정을 가진 사람으로 변신시키는 것엔 대성공이었지만 캘빈클라인 애호가로 만들기엔 여전히 부족했다. 그럼에도 누군가 내게 대학생활 동안의 알바경험에 대한 이야길 물었을 때 재미난 이야기 보따리를 펼칠 수 있다는 것은 아주 명백한 사실이다.





[이소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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