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는 믿습니다! [도서]

사피엔스, 호모데우스 리뷰
글 입력 2019.03.18 14:31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나는 믿습니다!
사피엔스, 호모데우스 리뷰 

Opinion 민현



호모데우스_입체표지1.jpg
 

“인간의 믿음이
인간의 성장, 발전을 이루었고
인간을 지구의 주인으로 만들었다.”




1 믿음



사피엔스, 호모데우스, 두 책을 관통하는 명제는 앞의 이 문장이다. 과거의 인간들은 뭘 믿어왔고, 현재의 인간들은 무엇을 믿고 있고, 미래의 인간들은 무엇을 믿을 것인가. 그 믿음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과거의 인간들은 어떻게 살아왔는지, 현재의 인간들은 무엇을 믿고 사는지, 미래의 인간들은 무엇을 믿을 것인지에 대해 깊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저 두 문장은 인간 역사에 대해 배웠던 우리의 상식과는 조금 반하는 내용이다. 역사책에도 보면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를 거쳐 도구를 만들고, 그에 따라 과학이 발전하면서 천천히 인간이 ‘진화’했다고 우리는 배웠다. 그러나 인간의 발전을 이끌어 낸 게 그저 ‘사람들의 믿는 능력’때문이라니? 우리나라도 믿음의 힘을 보여준 곳이 있다. 아직도 수많은 믿음들이 광화문에 모여 그 믿음을 전파하고 있다.



광화문 광장.jpg▲ 대한민국 믿음의 성지, 광화문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인간의 힘은(다른 종들보다 앞서는) ‘사람들의 함께 믿는 능력’이다. 믿음의 종류는 다양하다. 신, 자본주의, 인권, 컴퓨터, 데이터 등등. 그리고 대부분의 믿음에는, 사람들이 정말 무의식적으로 믿는 것에는 실체가 없다. 다른 동물 종들에게 없는 인간만의 독자적인 능력은 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을 수 있다는 힘이다. 함께 믿는 사람들의 관념에만 존재하는 이 ‘믿음’이 수천만 명의 사람들을 행동으로 이끌었고 이 믿음이 인간의 역사를 구성했다. '믿음'이라는 단어로 인간의 역사를 풀어나가는 책을 한번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누어 리뷰해보았다.




2 과거



과거의 인간들은 ‘신’을 믿었다. 과거에 인간들은 다양한 신들을 믿기도 했다. 돌이나 나무, 동물 등을 신처럼 여기기도 했으며 ’신’은 어디에나 있었다. 그러나 다양한 신이 존재하는 만큼 다양한 믿음이 있고, 관리자 입장에서는 매우 짜증이 치미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세계의 관리자들은 ‘하나의 신’을 만들고 믿게 만들었다. 신들의 신으로 뽑힌 전세계의 신들은 인간들에게 엄청난 힘을 부여했다. 피라미드를, 만리장성을 쌓았고, 자신이 사는 곳 몇백km 거리의 성지를 지키기 위해 종교 전쟁을 마다하지 않게 만들었다.



220652_179540_3257.jpg▲ 만들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이 믿음은 수많은 사람들의 ‘관리’에 효과적으로 작용했고 그만큼 체계적이었다. 관리자들은 더 많은 특권을 가지게 되었고, 피관리자들은 가지지 못한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왜냐하면 그 관리체계의 위에는 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대에 이르러 그 믿음에 변화가 생긴다. ’신’에 대한 믿음이 점점 갈라지기 시작했고 그 자리를 인간이 대신하기 시작했다.




3 현재



현재의 인간들은 ‘자유’를, 그로부터 파생된 ‘인권’을, 또 그로부터 파생된 ‘개인’을 믿는다. 아 물론, 현대를 생성한 ‘과학’에 대한 믿음도 빼놓으면 안된다. 하지만 이 모든 건 결국 ‘인간’에 대한 믿음이다. 인간에 대한 믿음은 결국 모든 인간에 대한 믿음으로, 이는 인권과 인본주의, 그리고 순차적으로 개인과 개인의 자유에 대한 믿음으로 이어졌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자유라는 가치를 너무 당연시한다. 개인의 자유는 타인에게 침해받지 못하며, 인권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누가 그렇게 규정했는가? 왜 우리는 남들의 자유를 억압한 역사 속 수많은 빌런들, 히틀러, 스탈린, 일제를(심지어 타노스조차도) 악으로 규정했는가? 그들이 나쁘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답을 찾기 어렵다. 분명 남들의 자유를 억압하고 다른 것을 위해 숭고하게 희생하던 과거의 시절이 있었고, 그것이 정의라고 여겨지던 때도 있었다.



타노스.jpg▲ 인본주의 종교의 이단, 타노스
 


이 글은 물론 그들을 정당화하거나, ‘역사 속에서 그들도 결국 지나간 인물일 뿐이야’라는 식으로 포장하려는 건 아니다. 결국 그들이 지금 현재의 인간들에게 악으로 규정된 이유는 세계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믿음’에 반하기 때문이다. 유발하라리는 이 믿음을 ‘인본주의’라는 종교라고 표현한다. 현대에 사람들이 믿는 ‘인간’에 대한 믿음은 완벽하게 ‘신’의 빈 자리를 메꿨다. 우리는 지금 신의 빈자리를 대체할 완벽한 세계 공통의 종교인 ‘인본주의’라는 종교를 믿고 있다.




4 미래



그러나 그 믿음도 이제 금이 가기 시작한다. 현재와 미래의 과도기에 있는 인간들은 인간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다. 신이 만든 인간이 신의 자리를 대체한 것처럼 인간이 만든 컴퓨터가 곧 인간의 자리를 대신할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싹트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컴퓨터는 이제 단순한 계산을 통한 ‘인간의 귀찮은 일’을 넘어 AI를 통해 독자적인 알고리즘 처리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호모데우스에서는 AI의 알고리즘 처리 방안이 인간의 의식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을 들어 그 믿음을 합리적으로 바라본다. ‘인본주의’를 믿는 우리에게 조금은 이상하게 들릴 수 있는 증명을 제시한다. 인간도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것보다 특별할 것 없는 유기체 알고리즘에 불과할 뿐라는 점과 AI에게 없을 것이라고 우리가 믿는 의식과 감정 등도 역시 유기체의 알고리즘 반응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결국 체계적 알고리즘을 갖춘 미래의 AI는 인간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역설하고 있다.



매트릭스.jpg
 


이 미래관이 디스토피아처럼 느껴진다면 아직 우리는 3 현재에 살고 있다는 증거이다. 나도 물론 이 미래가 너무 기괴하게 느껴졌다. 매트릭스나 AI같은 영화가 재밌지만 가슴 한켠에 불편하게 다가오는 이유도 아직 우리가 현재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많은 미래학자들은 AI를 인지혁명이나 농업혁명처럼 우리 다음 세대의 가장 중요한 기술 혁명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그 미래가 곧 다가올 것임은 너무도 자명하며, 거대 구조적 실업과 같은 우리 생활의 많은 변화를 AI가 몰고 올 것이다.




5 그래서..?



책을 덮자마자 드는 생각은, 그래서 우리는 뭘 믿어야 하지?이다. 결국 이 책이 21세기의 호모사피엔스에게 원하는 바가 무엇일까 고민해보면 역시 '믿음'이 아닐까싶다. 초반에 언급했던 광화문 광장에는 수많은 다른 믿음들이 모인다. 그 믿음들은 서로 대립하면서 또 다른 믿음을 낳고, 아직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가고 있다. 이 책을 믿는 여러분들이 무엇을 믿는지는 여러분들의 자유이다. 왜냐하면 21세기 전세계 대부분의 그런 자유를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믿음의 역사'를 아는 것은 내가 앞으로 무엇을 믿으면서 살아갈 지에 대해 길잡이 역할을 해줄 수 있다. 예컨대 지난 해를 뜨겁게 달구었던 비트코인 열풍은 믿음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을 만한 사건이었다.

그리고 한가지 명확하게 알아둬야 할 것은, 꽤 빠른 미래에 계산기에 불과했던 0과1의 역습이 시작된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생물학과 역사학의 경계가 사라지는, 그리고 지능과 의식의 경계가 사라지는 지점이 바로 그 시점이라고 보고 있다. 의식은 없지만 지능은 고도로 발달된 컴퓨터와 AI가, 의식은 있지만 지능은 평범한 사람들의 모든 것을 알게 될, 신의 능력을 갖게 될 것이다. 이 시점에 아직 인본주의가 우리 세대의 주요 믿음으로 자리하고 있다는 건 정말 다행이다. 만약 그런 시대가 온다면, 인간들은 인본주의에서 나아가 전세계적 믿음을 가져야 할지도 모른다. 인류가 갖게 될 신의 힘을 제어할 수 있다는, 그리고 인류를 위해 쓰겠다는 믿음이 필요할 것이다.


[손민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