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미술이 어렵기만 한 당신에게 [시각예술]

글 입력 2019.03.13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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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은 한 달에 한 번꼴로 찾으면서 미술관으로는 왜 쉽게 발길이 닿지 않을까. 근처에 없기 때문에? 그렇지도 않다. 국내 미술관은 약 300여 개에다가, 요즘은 기업에서도 문화예술후원프로젝트로 시각 예술 전시를 종종 선보이고 있어서 일상에서 어렵지 않게 미술 작품을 접할 수 있다. 그런데도 유독 미술이 어렵게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나 역시 미술을 전공하면서도 전시장에서 작품을 만날 때 당혹스러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특히 회화 작품은 종종 영화나 뮤지컬보다 불친절하다고 느껴진다. 영화가 두 시간 내내 인물의 서사를 막힘없이 전개함으로써 관객이 일단 눈으로 따라갈 수 있다면, 회화 작품의 경우 관객은 한 폭짜리 그림 앞에 서서 한참 동안 주제 의식, 작가의 의도, 그리고 상징적 요소를 모두 찾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성심성의껏 몸 쓰고 마음 써서 작품을 보지 않으면, 작품이 주는 감동을 오롯이 느낄 수 없다.


미술에 문외한이었던 내가 작품과 친해지고 그에 감동하기까지에는 사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그렇게 얻은 감동은 때때로 삶을 지탱한다. 단순히 아는 척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미술로써 삶의 깊이를 더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다음에 이어질 내용을 눈여겨봐도 좋다. 인생 작품 소개와 더불어 작품과 친해지기 위한 나만의 과정을 담아냈으니 말이다.




1. 단순하게 접근하기, 작품에서 보이는 것은?



[크기변환]감자먹는사람들.JPG
빈센트 반 고흐, <감자 먹는 사람들>
1885년, 캔버스에 유채, 81cm x 114cm
반 고흐 미술관, 암스테르담



사람을 볼 때와 마찬가지로, 작품을 볼 때도 첫인상이 중요하다. 일단 첫인상이 좋아야 작품 속까지 들여다보고 싶은 의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이 작품이 그랬다. <감자 먹는 사람들>은 우리가 흔히 아는 고흐의 작품처럼 밝은 색채가 쓰인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선명한 눈빛, 깊게 팬 주름살, 그리고 감자를 권하는 투박하지만 사려 깊은 손길까지. 얼마나 힘든 노동을 했기에 손이 저리 거칠까? 노동의 대가로 얻은 한 끼 식사에는 어쩐지 그만의 정직함이 담겨있는 듯했다. 희미한 램프 아래 비친 이들의 식사에서는 허례허식을 걷어낸 소박한 삶을 엿볼 수 있었다. 처음에 나는 단순히 그런 소소한 따뜻함에 매료되었다.




2. 작품을 두고 마음껏 상상하기


 

작품에 나타나는 인물의 표정, 행동, 그리고 공간을 찬찬히 살펴봤다면, 다음으로 작품을 두고 다양한 상상을 해보며 감상에 재미를 더할 수 있다. 이를테면 위 그림의 경우 고흐가 인상파의 영향을 받기 이전에 그린 그림이라 짙은 채색을 주로 사용했지만, ‘만약 작품의 명암과 채색을 달리했다면 어땠을까?’와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아니면 ‘감자를 건네는 제스처가 없었다면?’ 혹은 ‘작품의 인물 배치가 바뀐다면?’ 등의 물음을 가지고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리며 마음껏 상상해 보는 거다. 그럼 어떤 작품을 만나던 작품이 전달하는 느낌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동시에 점차 자신만의 미적 감각을 기를 수 있을 것이다.




3. 작품의 주제 파악하기



[크기변환]The_Potato_Eaters_-_Lithography_by_Vincent_van_Gogh.jpg
 

실컷 상상하며 작품 감상에 흥을 돋웠다면, 다음은 조금 진지한 태도로 작가가 담고자 했던 메시지를 읽어내야 한다. 하지만 작품을 뚫어지게 쳐다본다고 주제가 그냥 읽히지는 않는다. 작가와 작품이 만들어진 시대적·역사적 배경에 대한 조사가 뒷받침되어야 작품을 더욱더 폭넓게 이해할 수 있다.


고흐는 왜 하필 감자 먹는 모습을 그렸을까? 당시 유럽 지역의 감자는 맛이 없고, 모양이 나병 환자의 상처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천하게 여겨진 작물이었다. 그래서 감자를 먹는 사람은 하층민이라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에 작품이 세상에 나왔을 때도 천박하다는 평을 면치 못했다. 또한 작품은 유럽의 19세기를 반영한다. 당시 유럽은 정치·경제적인 면에서 혁명적인 변화를 맞이해 곧 부르주아 문화로 이어졌지만, 민중들의 삶은 여전히 고단했다. 한마디로 고흐는 단순히 한 가족의 따뜻한 저녁 식사만을 그리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하층민의 고된 삶을 진실하게 화폭에 담아내고자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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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그림이 베이컨, 연기, 찐 감자 냄새를 풍긴다고 해서 비정상적인 게 아니다. 마구간 그림이 거름 때문에 악취를 풍긴다면 훌륭하다고 해야겠지. 바로 그게 마구간이니까. 밭에서 잘 익은 옥수수나 감자 냄새, 비료 냄새, 거름 냄새가 난다면 지극히 건강한 것이지. 특히 도시에 사는 사람들한테는 더욱더 그렇다. 그런 그림이 그들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일이 있어도 농촌 생활을 다룬 그림에서 향수 냄새가 나서는 안 된다.


- 『반 고흐, 영혼의 편지』, 1885년 4월 30일 자 편지 일부



고흐는 자신을 농민 화가라고 부르며 농민의 삶에 누구보다 밀접하게 다가섰고, 그들의 삶을 환상에 젖어 표현하기를 원치 않았다. 그는 여유롭고 낭만적인 시골의 풍경이 아니라, 고되고 힘든 있는 그대로의 농촌을 그리고자 했다. 빠르게 변하는 도시와 대비되는 농촌은 겉보기에 남루해 보일지라도, 고흐에게는 숭고한 노동의 가치와 인간성을 확인할 수 있었던 유일한 세계였을지도 모른다.


단순히 감상에 젖지 않고 그런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본 세계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이 작품은 도무지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미술이 어렵기만 한 당신에게



물론 간결하고 짧은 제작물에 익숙한 세상에서 진득하게 한 작품 앞에 서 있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래서 더 작품을 두고 치열하게 생각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정보의 비대칭, 가짜뉴스가 난무한 미디어 시장은 어쩌면 자신의 취향과 사상을 서서히 지배하고, 진실에 눈이 멀게 만드는 중인지도 모른다. 시대를 반영하는 예술의 주요 기능 중 하나는 사람들의 시야와 생각의 폭을 확장하는 일이다.


그중에서도 미술은 관객이 더욱 능동적인 위치에서 세상을 발견하고 뜯어보도록 도와주는 도구와 다름없다. 작품 앞에서 한동안 뭐가 보이는지 찾아내고, 머릿속으로 상상하고, 주제까지 파악하기란 분명 쉽지 않다. 하지만 그 과정을 묵묵히 견디며 예술을 삶에 접목하려는 노력을 꾸준히 기울이다 보면, 그동안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자신만의 중요한 가치를 깨닫게 될 것이다.






박민영.jpg
 


[박민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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