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임현정 피아노 리사이틀

클래식은 처음입니다만
글 입력 2019.03.07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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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뻔함은 나의 몫



중학생 때였던가, 고등학생 때였던가. 조승우 배우님의 '지킬 앤 하이드' 속 넘버들을 꼭 한 번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혼자 뮤지컬을 보러 간 적이 있었다. 그 전까지 본 뮤지컬이라고는 학생 단체 할인으로 친구들끼리 우르르 보러 갔던 '셜록홈즈'가 전부였던 내게 이건 필시 도전, 아니 새로운 모험이었다.


아직 공연 문화에 익숙하지 않았던 내게 공연 중간의 인터미션 시간은 굉장히 낯선 시간이었다. 그냥 공연의 감상을 정리하고, 목도 좀 축이고, 앉아 있느라 뻐근했던 몸도 조금 풀면서 있으면 되는데 괜히 나 혼자 어색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그땐 그랬다. 뭐든지 혼자 하는 시작은 어색하고, 낯선 것이 당연하니까.



지킬 앤 하이드.jpg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이 끝났을 때 느꼈던 감정, 3층 저 멀리 앉아있느라 잘 보이지도 않는 배우들의 음악을 들으며 느꼈던 그 감정이 너무 좋아서 공연에 발을 들이기 시작했다. 용돈을 모아 좋아하는 뮤지컬을 보기도 하고, 힙합 문화에 빠졌을 때는 소규모 콘서트들에 온 체력을 쏟아부었고, 아이돌에 빠졌을 때는 난생 처음 직거래를 하면서 티켓을 구입했다.


처음 가보는 아이돌 콘서트, 그것도 혼자 간 아이돌 콘서트에서 뭐가 뭔지 몰라서 방황하는 20대 초반의 나를 이끌어 준 것은 고등학생들이었다. '언니 이거 들고, 이렇게 응원해요!' 그때 느꼈다. 공연을 즐기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뻔뻔함이 필요했다. '모르면 어때.' '저 사람들은 처음부터 잘 알았겠어?' 인터미션마다 쭈삣거리던 나는 어느새 혼자서도, 누군가와 함께 할 때도 자유로이 공연을 사색하는 여유를 갖게 되었다.




클래식은 처음입니다만



클 래 식. 학창시절, 음악시간은 내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대체 왜 클래식을 가지고 듣기 평가를 진행한단 말인가. 그것도 극히 일부분만을, 내가 듣기엔 그 음이 그 음인 음악을 불과 10초 남짓 들려주고 제목을 적어내야만 했다. 그때 이미 내 머리 속에는 클래식이란 어려운 것이라고 각인되어 버렸다. 하지만 한 번 쯤은 라이브로 감상 해 보고 싶은, 기품 있고 신비로운 미지의 음악. 내게 있어 클래식이란 그런 것이었다.


이면정.jpg
 


임현정의 왕벌의 비행을 유튜브 영상으로 본 적이 있다. 안 그래도 빠른 음악을(내겐 톰과 제리 ost처럼 들리던 음악을) 손에 모터 달린 듯이 연주하던 그녀의 모습에 완전히 매료되어 버렸다. 내 인생의 첫 클래식이 그녀의 리사이틀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벅찬 이유였다. 예술의 전당으로 향하는 길이 여행처럼 느껴지던 이유였다.



압도적인 존재감이란 이런 것



검고 긴 생머리, 머리만큼이나 검은 옷차림을 한 임현정이 무대 위로 등장했다. 넓디 넓은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무대 위를 장식하고 있는 것은 오로지 임현정 아티스트와 피아노 하나 뿐. 하지만 그 둘의 조합만으로도 이미 무대가 꽉 차 버렸다. 압도적인 존재감이란 이런 것일까.



임현정.jpg
 


베토벤으로 시작해서 바흐를 거쳐, 다시 베토벤으로 끝나는 이번 연주회. 두 대가의 음악을 정확히 모르는 내게 바흐는 '부드러움' 베토벤은 '강인함'이라는 키워드가 떠올랐다. 바흐의 음악은 강물을 따라 흘러가는 시냇물처럼 부드럽고 온화했으며, 베토벤의 음악은 감정의 높낮이를 드러내며 외치듯 강렬했으니 말이다.


한 가지 신기했던 점은, 바흐의 음악을 연주할 때와 베토벤의 음악을 연주할 때의 임현정 아티스트의 모션이 서로 달랐다는 것. 바흐를 연주하던 그녀는 온화한 표정을 한 채 부드러운 손놀림으로 건반을 두드린 것과 달리, 베토벤을 연주하던 그녀의 표정은 어딘가 굳센 결의가 보였으며 건반을 두드리던 그녀의 손 끝은 날선 칼날처럼 느껴졌으니 말이다. 배역에 빙의 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연기를 잘 하는 배우의 극을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베토벤이 되어, 바흐가 되어 그들의 음악과 하나가 되고자 했던 그녀의 노력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피아노 하나만으로 이루어진 감정의 교류는 실로 엄청났다. 공연을 보는 내내 임현정 아티스트와, 바흐와 베토벤과 교감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으니 말이다. 악보 하나 볼 줄 모르지만 나는 분명 그들과 소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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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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