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 [도서]

김애란 작가의 "바깥은 여름", 그 중 마지막 장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글 입력 2019.03.05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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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이야기다.

남겨진 사람들, 그것도 이별을 준비하지 못한 채, 누군가와 이별한 이들의 모습을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목이 터져라, 더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를 쥐어짜며 영정 사진 앞, 엎어진 채 울부짖는 사연 짙은 누군가의 모습.

상상이 가능한가?

 

그리고 그 뒤의 이야기.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고 조명하지 않았던, 그 뒤의 장면들을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텅 빈 그대로 변한 것 없지만, 그래서 더 무섭도록 차가운 내 집.

그날의 공기가 다시금 몸 위에 덮이고, 눈에 닿고 손에 닿는 모든 것들이 살을 파고드는,

그러한 장면들.

 

이것은 남겨진 누군가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것은 누구의 이야기도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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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다투어 생중계해야 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존재한다.


그것은 순식간에 발생하고, 순식간에 우리의 눈과 귀를 흡입한다. 순식간에 최대한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같은 감정이 들게 하고, 그것은 마치 답답한 미세먼지가 내내 하늘에 덮이는 듯하다. 내 곁을 지나가는 저 사람을 나는 모른다. 하지만 같은 하늘 아래서 같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마찬가지다. 이 뉴스를 보고 있는 저 사람의 이름을 나는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나와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 이내 사람들은 빛을 잃고 목이 따가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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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것들은 무섭게도, 너무도 빨리 잊혀진다. 아마 또 다른 뉴스들이 우리의 눈과 귀를 앗아갔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눈과 귀가 주목하지 않더라도 누군가의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흘러가기에, 남겨진 사람들의 현재는 계속해서 존재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상실'에 관한 이야기를 떠올렸다. 예상치 않게 무언가를 잃어버린 이들의 모습을 상상해본 적이 있다. 그들은 심히 괴롭고 아프며 나에게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의 삶을 상상해본 적이 있는지 물었다. 나는 쉽사리 답할 수가 없었다.



"안에선 하얀 눈이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일

누군가의 시차를 상상했다."



담담하고 간단한 문장이지만, 계속해서 되새겨 보게 하는 작가의 문체가 좋아, 몇 권의 책을 더 읽어보았다. 그를 통해 김애란 작가의 작품에서 등장하는 몇 가지 공통점을 알 수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여름"이다. 작가의 단편집들에는 배경으로, 소재로, 여름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나에게 여름이란, 바람에 날리는 나뭇잎 소리가 듣기 좋은, 하늘색 햇살이 내 머리 위에 비추는, 활력의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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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작가에게는 다른 여름이었나 보다. 뒤표지에 새겨진 저 문장과 같이, 작가는 나와는 다른 여름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면은 눈처럼 차갑지만 세상은 여름이 된, 남겨진 사람들의 멈춘 시간, 그 계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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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문일까. 앞표지를 넘긴 첫 페이지에 문이 그려져 있다. 그다음 장을 열자, 흑백으로 그려진 문이 열린다. 그들은 문을 열고 여름의 바깥으로 나섰을까? 아니면, 내가 문을 열고 그들의 겨울로 걸어 들어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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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서 주인공은 남편을 잃는다. 생각지도 못한 사고였다. 그 사이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발소리가 그렇게 크게 들리는지, 시계 소리가 그처럼 귀에 박히는 소리인지, 하루동안 말 한마디 안 하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든 일인지를 처음 알게 된다. 당신의 머리 자국이 오목하게 박힌 베개를 바라보며, 주인공은 그렇게 지금의 현재를 그저 버틴다.

하지만 내가 가장 가슴 아팠던 순간은, 일을 치르고 돌아온 집이 나갈 떄 그대로인 것도 아니고, 하고 있던 김장김치가 다 상해 곰팡이가 피어있던 것도 아니고, 남편의 오목한 머리가 그대로 남아있는 베개를 발견했을 때도 아니다.

남편은, 사고로 죽었다. 그리고 남편은 학교 선생님이었다. 그리고 그날은 소풍이 있던 날이었다. 남편은 물에 빠진 학생을 구하려다 돌아오지 못했다.

주인공은 견디지 못할 집을 피해 며칠간 집을 비우고 해외에 나가 있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온 날, 낯선 곳에서 온 편지를 발견한다. 읽다가 알게 된 발신인은 남편이 구하려다 함께 생을 마감한, 그 학생의 누나였다.

아래는 누나의 편지 중 일부이다.


"...

작년에 갑자기 마비가 와 오른쪽 몸을 잘 쓸 수 없게 되었어요.

(중략)

제가 이렇게 되고부터는 오히려 그애가 저를 어른처럼 보살펴줬어요.

그런데 요즘은 집이 넘 조용해 제가 제 발소리를 듣다 놀라요.


저도 지금은 지용이가 너무 보고 싶어요.

사모님도 선생님이 많이 그리우시죠?

그런 생각을 하면...

뭐라 드릴 말씀이 없어요.


이런 말은 조금 이상하지만,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어 편지를 써요.


겁이 많은 지용이가 마지막에 움켜진 게 차가운 물이 아니라

권도경 선생님 손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놓여요.

이런 말씀 드리다니 너무 이기적이지요?


평생 감사드리는 건 당연한 일이고.

평생 궁금해하면서 살겠습니다.

...."


 
주인공은 덧붙인다. 어쩌면, 그가 물에 빠진 학생을 보며 물에 뛰어든 것은, 삶이 죽음에 뛰어든 것이 아니라, 삶이 다른 삶에 뛰어든 것이라고. 그리고 또 덧붙인다.
 
당신이 보고 싶다고.

*

마지막 장을 덮고 이 책의 발간 일을 확인해본다. 단편소설로 작품집에 실렸던 이 작품은 2015년 봄과 여름 사이에 발간되었다.

나는 우리 모두가 기억하는 그 사건이 이전 해인 2014년이 맞냐고 마주 앉은 친구에게 물었다. 친구는 맞다고 하며 나의 표정을 짐작한다는 듯 가만히 앉아 있었다. 나는 한동안 창밖을 보며 앉아 있었다.

나도 충분히 아프고 슬프다고 생각했다.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그 이후의 삶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아직, 남겨진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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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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