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임현정이 만들어내는 진심 - 임현정 피아노 리사이틀 [공연]

진심 어린 선율을 만들어내던 손끝
글 입력 2019.02.27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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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 베토벤. 클래식에 이렇다 할 취미나 흥미가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살면서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이름들이다. 소나타가 뭔지, 프렐류드가 뭔지 단어의 정의는 알지 못해도 어디선가 한 번쯤은 흘려들었을 음악들이다. 나 또한 클래식 듣기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깊은 조예가 있거나 수준 높은 귀가 있지는 않아서, 음악을 들을 때면 “와, 좋다.” 내지는 “와, 잘한다.” 정도의 단순한 감탄만 내뱉을 뿐이었다. 클래식 칼럼니스트들의 유려하고 질 높은 감상을 읽으면서도 “와, 잘 쓴다.” 정도의 탄성만 지를 뿐이었으니, 어쩌면 클래식을 모르는 게 아니라 감상하는 법 자체를 모르는 건가, 싶기도 했다.

내가 클래식을 감상하는 귀는 없어도 호오(好惡)를 가리는 귀는 있어서, 유독 베토벤의 교향곡과 소나타를 좋아했다. 베토벤의 음악에서는 강렬한 에너지와 여리고 부드러운 선율을 동시에 느낄 수 있어서 마치 수수한 만찬에 초대된 듯한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임현정 피아니스트의 리사이틀에 가게 된 이유 중 가장 큰 이유가 베토벤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바흐의 프렐류드와 푸가는 나에게 꽤 익숙한 선율이었다. 공부를 할 때나 일을 할 때 꼭 듣는 음악 중 하나가 바흐의 음악이었기에, 임현정 피아니스트의 리사이틀 프로그램 구성을 보고 이 연주회는 꼭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끊임없는 탐구와 열정, ‘임현정’



임현정 피아노 리사이틀 포스터(최종).jpg
 

임현정 피아니스트는 정경화, 사라 장, 장한나, 임동혁에 이어 10년 만에 EMI클래식과 계약을 한 한국인 아티스트다. 또한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녹음한 최연소 연주자이기도 하고, 음악과 영성에 관한 에세이 ‘침묵의 소리’를 출간하기도 했으며, 2018년 12월 한국인 최초로 스위스 뉴샤텔 국제문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 마디로 ‘무엇 하나 대단하지 않은 게 없는’ 연주자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대단한 것은, 최고의 자리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음악에 대해 공부를 한다는 점이었다.

그들(작곡가들)의 모든 것을 알고 싶었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그들의 의도와 하나가 되고, 이런 음악을 작곡했을 때 파동 치던 그들의 심장과 하나가 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 작곡가들의 세계에 스토커 같이 빠져들어 갔고 그들에 관한 탐구, 음악이라는 그 미지의 세계를 탐구하는 여정은 지금도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세계 최초’, ‘1위’, ‘최연소’, 대다수 사람들은 세 타이틀 중 하나도 갖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곤 하는데, 당당히 세 가지 타이틀을 모두 목에 걸었음에도 여전히 음악에 대해 탐구하는 자세야말로 가장 대단한 태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그의 연주가 이토록 진실 되고 강렬한가 보다.



임현정의 베토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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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사이틀의 첫 순서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번 바단조 작품번호 2-1’이었다. 총 네 악장으로 이루어진 이 소나타는 강렬하고 생동감 넘치면서도 부드럽고 강단 있는, 풍성한 구성의 음악이다. 음악사나 음악이론에 대한 지식이 중학교 음악교과서에 멈춰있는 나는, 음악을 들으며 연신 감탄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중에서도 유독 인상 깊었던 것이 바로 음악을 대하는 임현정의 자세였다. 카리스마와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듯한 아우라 때문만은 아니었다. 한 손만 건반을 두드릴 때에도 다른 손을 쉬게 두는 법 없이 건반 근처를 떠나지 않았다. 마치 선율을 진두지휘하듯이 손을 저으며 유려하게 악보를 헤엄쳤다. 그 누구보다도 진심이 가득 느껴지는 태도로 한 음 한 음 정성스럽게 건반을 걸었다. 악보에 심어져 있던 작은 음표 하나하나가 그의 손끝에서 재탄생되는 것만 같았다.

리사이틀 막바지에도 베토벤 소나타가 배치되어 있었다. 인터미션을 지난 후,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32번 다단조 작품번호 111’이 공연장을 메웠다. 나에게는 이 곡이 가장 진하게 마음속에 남아,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머릿속에서 음표가 떠나지를 않고 있다. 이 음악이 유독 좋았던 까닭 역시 임현정의 진심 어린 태도 때문이었다. 강한 파워가 필요한 부분에서는 망설이지 않고 강하게 선율을 뱉어내고, 부드러운 감성이 필요한 부분에서는 봄 햇살만큼이나 따사로운 눈빛으로 음악을 만들어냈다. 혹여 건반이 망가지지나 않을까, 걱정까지 하며 보다가도 한없이 여리고 조심스럽게 선율을 뽑아내는 것을 보고 안심하곤 했다. 부서지더라도 공연은 끝나고 부서지면 좋겠다, 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상념을 매듭지었다.



임현정의 바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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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사이틀에서 바흐의 ‘프렐류드와 푸가’는 총 12곡 연주되었다(리스트 하단 참조). 특히 846번의 경우 내가 평소에도 굉장히 자주 듣는 음악 중 하나였기 때문에 굉장히 기대가 되었는데, 음악이 시작되자마자 눈을 휘둥그레 뜨고 멍하니 쳐다보기만 했다. 손가락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동시에 너무나 익숙한 선율을 너무나 완벽히 짚어내는 모습이 믿기지가 않았다. 질리도록 들은 음악인데도 불구하고 생전 처음 듣는 음악인 양 얼이 빠진 채로 감상했다. 단지 음악이 빨라서, 기교가 화려해서가 아니라 그가 해석해 들려주는 바흐가 너무 새롭고 강렬했기 때문이다.

임현정이 만들어내는 베토벤의 선율은 상당히 강렬하고 파워풀한 점이 매력이었다면, 그가 만드는 바흐의 선율은 부드럽기 이를 데 없다는 점이 매력이었다. 부드러우면서도 강단이 있고, 유려하면서도 맺고 끊음이 확실해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한 음악을 마무리한 후에도 한 가닥의 여운조차 그냥 날리는 법 없이 끝까지 붙잡고 있었던 그의 진심이 내게 와 닿기도 했다. 클래식이 무엇인지, 음악이 무엇인지 제대로 정의하지는 못하더라도 임현정의 바흐가 진실되다는 것은 확실히 이야기 할 수 있다.

*

돌아오는 길에 휴대폰으로 임현정의 음악을 더 찾아보았다. 단순히 클래식을 좋아하던 나에게도 음악 듣는 귀가 조금은 생긴 것만 같아 뿌듯하기도 했다. 하지만 음악사를 모른다고 해서, 음악 이론을 모른다고 해서 클래식을 즐기지 못할 이유도 없다. 지식은 없어도 호오는 있고, 호오마저 없다 하더라도 “와, 잘한다.”라며 감탄할 언어는 있으니 된 게 아닌가 생각한다. 임현정의 연주는 임현정이기에 만들어낼 수 있는 선율이었다. 그가 만든 강렬하고도 부드러운 음악이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것 같다.
 




프로그램 :

L.v.Beethoven
Piano Sonata No.1 Op.2

J.S.Bach
Preludes and Fugues BWV 846
Preludes and Fugues BWV 848
Preludes and Fugues BWV 850
Preludes and Fugues BWV 852
Preludes and Fugues BWV 854
Preludes and Fugues BWV 856
Preludes and Fugues BWV 858
Preludes and Fugues BWV 860
Preludes and Fugues BWV 862
Preludes and Fugues BWV 864
Preludes and Fugues BWV 866
Preludes and Fugues BWV 868

L.v.Beethoven
Piano Sonata No.32 Op.111


[정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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