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단지 세상의 끝, 남보다 못한 가족이야기 [영화]

어떤 가족은 함께 일때 더 불행하다
글 입력 2019.02.18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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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면서 무조건적으로 숭고하다고 의미부여된 것들을 마주하게 된다. 자식에 대한 사랑, 어머니의 모성,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어머니, 그러한 부모를 향한 자식의 하염없는 존경. 어쩌면 그것은 하나의 진리로 굳어졌는지도 모른다.


한 이야기가 있다. 어머니가 죽었다. 그런데 장례식장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고인의 자식이 어머니를 살해한 범인으로 몰린다. 그 끔찍한 주장의 증거는 부모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았다는 이유 그뿐. 그는 사회를 살아감에 있어 부모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과 존경이라는 '진리' 하나를 어긴 셈이다. 아니, 그만 어긴 셈으로 다른 사람에게 비춰져 버린 것이다. 사람들은 돌을 던진다. 설령 그가 범인이 아닐지라도, 누명은 벗을지언정 사회적 낙인은 쉽게 지울 수 없다.


'부모의 죽음에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인간'


그런데 어쩌면, 같은 피로 이루어진 사람들이 오히려 남보다 못하다. 앞서 말한 진리아닌 진리에 눈이 멀어, 뻔히 보이는 진실을 감추려고만 한다면, 상처는 눈에 띄게 빠른 속도로 곪아 체내 밖으로 터져 나갈 것이다. 결국 본인들이 얽힌 핏방울까지 생생하게 두눈으로 보일 뿐이다. 이는 아무도 반기지 않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방법이다.


아, 그럼에도 우리는

같은 피를 공유하고 있구나.


그리고 여기, 같은 핏줄을 공유하고 있는 또 다른 '가족'이라는 이름의 구성원이 있다. 이들이 12년만에 다시 만났다.




단지 세상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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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는 장장 12년만에 자신의 고향, 본가를 찾아간다. 제 발로 걸어나간 이후에 최초의 발걸음이다. 금의환향의 성격은 아니다. 그는 시한부선고를 받았다. 가족이라면 비단 알려야 할 달갑지 않은 무거운 짐을 안고, 떠나온 그들을 향해 다시 12년 전 그 길을 돌아가야만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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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이 영화의 불친절함을 느낄 수 있다. 그가 제 발로 걸어나간 이유를 단 한번도 알려주지 않는다. 그저 그들의 대화와 몸짓을 통해 가늠할 뿐이다. 그리고 이런 성격의 이야기 전개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계속된다.


사실 '불친절' 하다고 했지만, 단어의 의미와는 반대로 이 영화의 그러한 점이 맘에 들었다. 인물의 심리를 알아차리기 위한 모든 과정에서, 성가신 장애물들이 없다. 마음대로 추측할 수 있고, 인물의 관계를 상상해 만들어낼 수도 있다. 또한 어느 누구도 그것이 틀렸다고 단언할 수 없다. 언급되는 '사실'이 없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존재하는 것은, 그저 인물의 표정과 목소리로 이루어진 장면, 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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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고향집들과 다르지 않게 루이는 다른 가족들의 환영인사를 받는다. 하지만 겉으로는 반가워할지라도 그들은 어딘가 어색하고 불편해보인다. 12년의 세월은 그리 가벼운 기간이 아니다. 게다가 제 발로 집을 나간 루이의 과거를 상상해본다면, 가족들간의 관계가 좋았을리가 없다. 그럼에도 모두들 문앞에 나와 다시 돌아온 루이를 안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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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처음 보는 형의 아내와 못 알아볼 정도로 훌쩍 자란 여동생, 향기는 같지만 아들을 반기기에는 과한 모습으로 치장한 엄마와 왠지 모르게 싸늘한 분위기가 감도는 친형. 이상하게도 영화 초반부터 이들의 모습에서 다른 집들과는 확연히 다른 이상한 점들이 눈에 띈다.


그 첫 번째는 루이가 도착해서부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가족들이 꽤나 큰 소리로 계속해서 싸운다는 점이다. 평소의 어수선한 집안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그들은 쉴새없이 별 거 아닌 이유로 다툰다. 12년 만에 가족이 돌아왔는데도 게의치 않는다. 오히려 더 큰 소리로 싸울뿐이다. 이는 보통 형의 시비에서 시작 돼, 동생과 엄마의 비난으로 번지는 형태이다.

그 사이에서 루이는 벌써부터 지친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그리고 두번째는 그들의 대화방식에 있다. 가족들은 루이에게 대화의 타이밍을 넘겨 주지 않는다.


"어떻게 왔어?", "바보, 왜 데리러오라고 안 했어?", "택시비 많이 나왔겠다.", "내가 데리러 갔을텐데.", "형수님은 처음 보지?", "밥은 먹었어?", "얘야, 택시비 얼마 나왔니?", "엄마, 그 말은 아까 했잖아."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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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잠시라도 침묵이 흐르면 이 세상 모든 공기가 사라지는 것 마냥, 그들은 쉴새없이 입을 움직인다. 오랜만에 본 가족에게 건네는 반가움의 표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오랜만이라는 세월이 너무 길었던 탓일까. 그들의 어색한 눈동자와 쉴 새없는 입술들은, 12년간의 공백을 채우려는 이들의 공허한 몸부림에 더 가까워보인다. 문지방은 넘었지만, 아직 루이는 밖에 서있다. 그의 앞에는 투명한 벽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들이 서로 섞일 수 없게 철저히 분리시켜 버린다.


실제로 이후 쏟아진 수많은 질문아닌 질문들에 그가 답하는 장면은 쉽게 볼 수 없다. 단지 이렇게 중얼거릴 뿐이다.



"그렇게 멀지 않았어.

여기가 단지 세상의 끝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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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대화를 몸부림이라고 표현한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루이와 동생의 대화에서 드러난다. 동생은 오빠와의 대화 중 끊임없이 손에서 담배를 놓지 못한다. 대화라기에는 동생의 일방적인 이야기이지만(역시 여기서도 루이에게는 대답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그 짧은 이야기 와중에도 몇 개의 담배를 연달아 피며 애써 긴장감을 숨긴다. 그러면서 오빠에 대한 동경심 뒤에 은근한 원망을 내비친다.


가족을 버리고 홀로 도시로 가 성공한 오빠, 가족에게서 재능을 물려받았지만, 그 재능을 가족에게는 쓰지 않는 오빠, 무심하지만 가시 박힌 말로, 동생은 오빠를 그렇게 부른다. 루이가 매년 기념일마다 보내는 카드를 모두 모아 간직하고 있지만, 거기에 쓰는 말이 매년 똑같은 걸 아냐며 차가운 눈초리로 바라보는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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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침내 루이에게 묻는다. 왜 왔냐고. 드디어 시한부에 대한 루이의 고백이 등장하는가, 다음 목소리를 기다리는 찰나, 동생이 말을 끊는다. 그리고는 이내 시선을 돌린다. 동생은 다시 기나긴 말꼬리를 이어나간다.

  

루이는 입을 다문다.


동생에게 그 질문이란 그냥 허례허식 섞인 문장 중 하나였을 뿐이다. 하지만 시간이 부족한 루이에게는 너무도 크게 들린다.


그렇게 길고 긴 대화에서 그 둘은, 서로의 진심을 단 차례도 나누지 못한다. 루이의 씁쓸한 표정이 담긴다.




나를 외롭게 만드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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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는 총 다섯명의 인물만이 등장한다. 집이라는 제한된 곳에서, 소수의 사람들이 단 몇 시간만에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에, 며칠, 더 나아가 몇 년의 시간을 다룬 영화들과는 다른 차원의 섬세함이 묻어난다.


그 섬세함 속에서도 눈길을 끄는 캐릭터가 있다면, 등장하자마자 루이에게, 온 가족들에게 끊임없이 소리를 지르며 눈살을 찌뿌리게 만드는 형이 아니라, 바로 그 옆의 조용한 아내이자 루이의 형수인 카트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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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불고 싸우다가도 아무렇지 않게 대화하는 다른 가족들과는 달리, 그는 다른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루이와 피를 나눈 혈연이 아니다. 결혼을 할 때 조차 루이의 모습을 본 적이 없고, 그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한 채 그와 가족이 된다. 이러한 특성들은 카트린이라는 인물을, 루이와 다른 가족들의 관계를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즉, 보다 외부인적인 성격을 띤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어쩌면 그는 루이와 심리적 갈등이 얽히지 않은 유일한 인물일지도 모른다. 나아가 이 가족이 보통의 가정과는 무언가 다름을 알아차릴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기도 할 것이다.


그 때문일까. 그의 남편이 버럭 화를 내어 엄마와 동생의 대응으로 한 바탕 싸움이 날 때도, 카트린만은 루이를 바라본다. 이런 모습을 보여 미안하다는 듯이, 혹시 오랜만에 찾아온 루이가 상처를 입지는 않았을지,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루이 역시 그런 마음을 느낀다. 카트린의 지루한 옛 이야기를 잠자코 들어주고, 그 과정에서 궁금하지도 않은 얘기 떠들지 말라는 형의 방해가 있어도, 오히려 그런 형을 나무라고, 계속해서 말해도 된다고 위로한다. 그 장면들을 보며 피를 나눈 가족보다 오히려 남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지옥같은 집에서 마음을 편히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그런 생각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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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의 방에서 그대로인 가구들을 보고 향수에 잠기던 루이는 디저트를 먹으라는 부름을 받고 방을 나서다 카트린과 마주친다. 깜짝 놀라는 카트린을 보고 루이는 어쩌면, 이 집안에서 편하게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는 아까 있었던 형의 무례함을 사과하며, 형이 자신을 아마 나쁜 놈으로 못박고 싶어하는 것 같다고 농담삼아 말한다.


그러자 내내 조용하고 상냥하던 카트린은 지나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정색을 하며 묻는다.


"왜 그렇게 말하세요?" 


놀란 루이는 대답한다. "말이 그런거죠." 그는 그저 아까의 무례함을 형의 동생인 가족으로서, 어쩌면 외부인인 카트린에게 사과하려는 단순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는 자신은 형의 그런 성격을 잘 안다며, 애써 분위기를 녹이려 한다. 하지만 카트린은 또 한 번,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을 한다.


"아, 그래요?"


루이는 다시 입을 다물 수 밖에 없다.


사실 카트린의 말에는 비아냥의 의도가 없었다. 남편은 동생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아, 형을 잘 안다고 말하는 것이 낯설게 느껴져 무심코 뱉은 말이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뱉은 말인데도 본인이 더 놀란 듯, 미안하다는 말을 내뱉고는 상황의 수습에 나선다. 하지만 어쩔 때는 악의없는 말이 더 아프게 들리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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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듣고만 있던 루이는, 그래도 아까의 일에 대해서 다시 말을 꺼내고 싶어한다. 그러자 카트린은 말을 가로 막는다. "아뇨. 말하지 마세요. 아셨죠?" 그리고는 들고 있던 와인병을 품에 꽉 쥐며 무언가에 쫓기듯이 종종걸음으로 달려간다. 카트린의 뒷모습을 루이는 그저 바라볼 뿐이다.

  

실소가 터진다. 지금 여기, 누가 가족이고 누가 외부인이지?


루이의 텅빈 눈동자가 보이자, 조금 전 통화하던 루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는 아마 연인에게 이렇게 속삭였다.



"무서워.. 나는 가족들이 무서워."


  

이 집에서 그는 철저히 혼자다.



 

집은 항구가 아니야. 마음을 다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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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결국 감정의 골을 극복하지 못한다.


이어진 식사자리에서 루이는 자신이 하고 싶었던, 해야만 했던, 이곳에 와야 할 이유의 말을 꺼내지 못한다. 해야할 말이 아닌, 그들이 듣고 싶은 말을 한다. "동생아, 언제 한 번 놀러와.", "엄마, 편지 자주 할게요. 그때는 똑같은 말로 말고요.", "형수, 조카 이야기 나중에도 해주세요. 또 듣고 싶어요.", "형, 언제 파리 와. 형 파리 좋아하잖아." 

  

형은 되묻는다.


"내가 파리를 좋아한다고?"

"응. 어려서부터 그랬잖아."


가족을 버리고 파리로 건너가 성공한 인생을 사는 동생, 자신의 꿈은 접은 채 가족을 부양해야만 했던 나, 그런 동생이 대견하면서도 미운 마음을 감출 수 없는 내 자신. 그리고 너무나도 가고 싶던 곳. 파리. 그런 나에게 파리를 오라고?


"시간 없어. 바빠. 못가."

"주말은 되잖아. 주말에는 시간 괜찮잖아."


아, 파리.


형은 가족들의 표정을 돌아가며 훔쳐본다. 얼른 대답하라는 듯이 찬찬히 고개를 끄덕이는 카트린, 묵묵히 밥을 먹는 동생,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루이를 바라보는 엄마. 그때 형의 귓가에 루이가 목소리가 들린다.

  

"나 사실 가봐야 돼."


형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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쟤 또 왜 저러니. 좋은 얘기 오가는 중인데. 한 사람이 비워 나간 공간속에서 남은 가족들은 마저 식사를 한다. 단지 카트린만 테이블에서 일어나 디저트를 정리할 뿐이다. 그때 루이의 짐을 바리바리 싸든 채, 형이 등장한다.


"가자. 태워다줄게. 택시는 지겹잖아."

"뭐? 지금?"


놀란 엄마의 목소리와 혼란스러운 표정의 동생. 그리고 그것을 그저 지켜만 보고 있는 카트린. 모두의 눈은 루이에게 쏠린다,


"뭐가. 간다며? 내가 태워다준다고."

"무슨 소리야. 그런 말 안 했어. 오빠, 자고 갈거지? 내일 내가 태워다줄게. 그치?"


루이는 말이 없다.


"왜! 또 나한테만 그러는거야. 너가 말해봐. 분명 말했지? 간다고 얘기 했잖아! 아까, 아까 미팅이 있다고 했지? 그랬지?"

"거짓말치지마!"


또 한바탕의 싸움. 이번에는 좀 심하다. 루이는 계속해서 말이 없다. 카트린의 불안한 눈빛이 보인다,


"이게 무슨 일이니. 갑자기 좋은 얘기 하다가 이게 무슨 소리야. 루이, 너가 말해봐. 뭐가 문제니, 어?"

  

엄마가 벌떡 일어난 채, 소리친다.


"그냥..."


루이는 말한다.


"미팅이 있을 뿐이에요."


카트린은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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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은 루이를 잡고 거의 내던지듯 현관 앞으로 밀어넣는다. 까무라치게 놀라며 달려오는 가족들을 뒤로 한 채, 거칠게 가방을 메워준다.

"이렇게 갑자기라니! 작별 인사 정도는 할 수 있잖아!"
"오빠, 그냥 오늘은 자고 내일 가. 내가 내일 데려다줄게. 응?"

또 한바탕의 싸움.

"또 나한테만. 나만 쓰레기보듯이 하지 말라고!"
"형, 흥분했어."
"그래그래 또 잘난 척."

"오빠 아주 무식하고 멍청해! 이게 뭐하는 짓이야!"
"그래 넌 아주 똑똑해. 말 그딴 식으로 하지 마. XX야!"
"동생한테 그게 무슨 말이야!"
"형, 이제 그만해."

"죽여버릴테야!"

한껏 흥분한 형이 루이를 밀치고 주먹을 겨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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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에서 본 형의 손에는 상처가 그득하다.

모두가 숨을 죽인다.

형이 분을 삭히지 못한다.

하지만 그는 주먹을 뻗지는 않는다.

한동안 씩씩대던 형은 진정하라는 엄마의 타일름에 안정을 되찾는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숙인 채, 베란다로 향한다. 엄마가 그런 형을 따라 나가기 전, 루이의 앞에 선다. 둘은 이마를 맞댄다. 엄마는 눈을 감고, 루이는 그런 엄마를 바로 쳐다본다. 그런 엄마가 루이에게 속삭인다.


"다음에는 더 준비하고 맞아줄게."



엄마는 등을 돌려 형에게 향한다. 동생은 울면서 방으로 달려가고, 집에는 카트린과 루이, 오직 둘만 남는다. 카트린은 여전히 놀란 눈으로 루이를 바라본다. 그런 루이는 카트린을 바라본 채, 입술에 검지 손가락을 갖다 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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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린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내 등을 돌리고. 루이는 실소를 짓는다.

루이는 어떤 침묵을 요구한 걸까. 그가 숨기고자 한 진실은 대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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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짐을 챙긴다. 모자를 눌러쓰고 밖으로 나가려는데, 뻐꾸기 시계가 울린다. 정각을 알리며 뻐꾸기 모형이 나온다. 그런데 열린 뻐꾸기 사이로, 진짜 가 날라온다. 루이는 고개를 숙여 새를 피하고, 이곳저곳에 박히며 어지럽게 비행하던 작은 새는, 이내 바닥에 고꾸라진다.

루이는 실소를 짓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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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바탕 비를 쏟아 내고, 밖에는 노을이 비친다. 루이의 눌러쓴 모자 밑으로 땀에 찌든 머리카락이 보인다. 루이는 단 네 시간만에 12년만에 돌아온 집을 나선다. 그가 문을 열기 전,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본다.

그에게 보였던 것은 죽은 새였을까, 자기 자신이었을까.

이어서 노래가 흘러나온다. 가삿말이 자막에 적힌다.


"오, 주여.
너무 힘이 듭니다.
내 고난은
신밖에 모르시니." 


[김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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