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다윈 영의 악의 기원 [도서]

완벽한 세계의 씨앗으로 살아남는 법
글 입력 2019.02.11 16:28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다윈영2.jpg
 

“씨앗이란, 한마디로 ‘옳은 것’이다. 과육의 맨 가장자리가 벌레 먹고 썩는다 해도 씨앗을 비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물론 비난해서도 안되고. 왜냐하면 씨앗의 의지는 가장 훌륭한 과실을 만들기 위해 늘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까.” p.172


그러나 정말 씨앗을 비난하지 않을 수 있을까? 박지리 작가의 장편소설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은 명백히 불공평해 보이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죄와 악에 관해 이야기한다. 1지구에서 9지구까지 구획되어, 계급사회를 방불케하는 차별이 일어나는 사회. 이 이야기는 일견 그 사회구조 속의 한 인물의 죽음을 둘러싼 추리 소설처럼 보인다. 그러나 850여 쪽에 달하는 책을 절반쯤 넘기고 난 뒤엔 그것만이 이 이야기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부당한 사회를 바라보는 각자의 시선들, 그리고 그 사회 안의, 심지어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악을 목도하였을 때 발생하는 딜레마는 우리에게 현실적인 질문을 던짐과 동시에 책 안의 세계가 단지 만들어진 가상의 공간이 아닌 우리가 살고있는 세계의 일부이자 전부임을 통감하게 한다.

이 이야기의 처음과 끝은 모두 가장 상위 지구의 정점인 1지구에서 일어난다. 9지구 출신이지만 신분을 숨기고 1지구에서 살아가는 러너 영, 아버지인 러너 영의 출신을 감추고자 친구 제이를 죽이고 자신의 인생을 바친 니스 영, 그리고 그의 아들 다윈 영. 이 세 부자와 그들 주변의 인물들은 모두 작중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독자는 그들이 가감 없이 쏟아내는 생각들을 좇으며 어렵지 않게 모든 사건의 전말을 알아 챌 수 있으나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긴장한 채 책장을 넘기게 될 수밖에 없다.



반만 뜬 눈


사람들은 모두 각자가 속한 곳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1지구의 사람들이 폭동이라 일컫는 12월의 사건은 9지구의 사람들에겐 전쟁이고 혁명이었다. 비단 그 전쟁에 관한 것뿐만이 아니다. 1지구 사람도, 9지구 사람도 각자 자신들의 지구가 '아무 범죄도 일어나지 않는 가장 안전한 지구'라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살인하지 않는다. 우리는 부정하지 않다. 그것은 1지구가 가진 자부심의 뿌리이고, 9지구의 멸종해 가는 사람들의 믿음이다.

환경은 사람들의 눈에 프레임을 덧씌운다. 그저 어느 지구에 사느냐, 그것 하나만이 오롯이 그들의 사고 전부를 지배하는건 아니다. 그들을 지배하는 것은 그들의 흠결과 영광과, 그에 대해 아는 것이다. 죄와 악에 대한 딜레마를 마주하였을 때, 작중 8명의 주요 등장인물들은 모두 자신이 아는 대로 행동한다. 살인이 죄인가? 악은 무엇이고 죄는 무엇이며, 누구에게 그것들을 벌할 자격이 있을까? 그러다가 그 앎에 배신당하고 말았을 때, 그들은 처단당하거나, 도망치거나, 혹은 진화해야 한다.
    


영광과 흠결



1지구 사람들은 다 죄인이야. 난 우리에게 우리가 가진 땅만큼의 원죄가 있다고 생각해. p.177



레오 마샬은 가장 고귀한 혈통의 영웅이다. 모두가 각자의 비밀을 감추고 있으나 레오 마샬은 숨길 것이 없다. 그렇기에 그는 누구보다도 견고한 1지구의 시민으로서 1지구를 비판할 수 있다. 그는 씨앗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계의 울타리를 칠 자격이 씨앗에게 있다고 믿지 않는다. 그는 죄인이 아니기에 스스로가 죄인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선한 영웅이 성공하는 판타지가 아니고, 작가가 본 세계는 그런 희망찬 현실도 아니다. 레오 마샬은 결국 비난과 경멸 속에서 ‘납득할 만한’ 죽음을 겪은 시체로 돌아와 1지구에 묻힘으로써 처단당한다.

그와 달리 9지구 출신이지만 1지구의 노인으로 살고 있는 러너 영은 자신의 과거에서 완벽하게 도망친 위인이다. 혁명 세력에서 누구보다 앞장서 싸우던 그가 자신의 믿음이 배신당했을 때, 그는 상위지구를 향해 달려가 끝내 자신의 어린 시절을 말끔히 지워버렸다. 그가 상위지구로 도망치며 저지른 살인은 대가 없이 그를 거둬 주었던 영 부인의 선으로 구원받았고, 그렇게 영 가문의 악의 대물림은 시작되었다.
    
그렇게 악을 물려 받은 다윈 영은 마지막까지 완벽한 프라임 보이로 남는다. 성공한 사업가인 할아버지와 문교부 차관의 아버지. 영광으로만 이루어진 사람이라는 평을 받지만,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그의 기원은 악과 흠결에 더 가깝다. 9지구 폭동 출신의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출신을 숨기기 위해 친구를 살해한 아버지의 흠결을 이어받은 그는, 그러한 가족의 죄와 악에 대한 딜레마를 마주하였을 때 진화한다. 아이에서 어른으로, 완벽한 세계의 씨앗으로. 결국 그는 똑바로 선 인간이 되기 위해서, 아버지의 죄를 묻기 위해서 친구를 살해한다. 그럴싸한 정당화를 덧붙이면서.


자기가 존재하지 않았을 때 일어난 살인이란, 문명 이전에 일어난 살인이나 마찬가지다. 공룡이 지구를 점령하고 있었을 때 일어난 살인과 다를 것이 없다. 살인이 가장 흔한 생존 방식 중 하나였던 시대에 일어난, 평상의 행위에 불과한 것이다. 누구도 기원을 끝까지 밝혀 가며 살 수는 없다.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살인하지 않은 조상을 가진 핏줄이 과연 단 하나라도 있을까? p.799



다윈의 그럴싸한 변명에 따르면, 우리는 모두 살인자의 후손이다. 이제 우리는 다시 질문한다. 살인은 언제부터 죄가 되었을까? 죄를 벌할 수 있는 자격은 누구에게 있는가? 우리는 모두 살인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살인은 일어난다. 우리가 아닌 자들에 대한 불신과 공포, 왜곡과 불안은 우리가 사는 이 사회에서도 만연하다. 마치 살인은 우리가 당하는 것만이 죄인 것 마냥, 우리가 우리라고 부르고 싶지 않은 자들의 죽음은 납득할만한 것으로 보여진다. 다만 우리가 사는 세계는 이제 표면적으로나마 모두가 같은 우리라고 포장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고 보면 재미있구나. 마음속에 알 수 없는 길을 품고 사는 무서운 인간도 결국엔 사랑으로 진화한 것이라니.” p.726





완벽한 세계의 씨앗으로 살아남는 법


사랑에서 비롯된 악은 결국 대물림되었다. 더하여 진화하였다. 물론 그러한 도덕적 딜레마에서 비롯된 진화가 비단 개인만의 산물인 것은 아니다. 진화는 언제나 그 생명이 몸담은 사회에서 비롯된다. 그들 모두가 두려워 했던 것은 사회에서 퇴출당하는 것이었다. 영 가문은 겉으로는 완벽하게 그 사회에 알맞은 인간들이었고, 우리가 꿈꾸는 이상적인 가족처럼 보였다. 허나 사회 안에서 그들이 저지른 악은 철저히 은폐되었고, 그 악으로 하여금 그들은 다시 바람직한 가족으로 남는다. 레오가 줬던 ‘유효기한이 지난 놀이공원 입장권’을 짓밟으면서 이제는 쓸모없는 것이라 말하는 다윈은 썩고 벌레 먹은 과육에는 아무 책임이 없는 완전한 씨앗이고 완벽한 프라임 보이다. 참으로 찝찝한 결말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보다 명백하게 현실적인 결말도 없다. 영광과 흠결이, 사랑과 악이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완벽한 사회에서 씨앗으로 살아남는 방법은 그것뿐이다.


다윈은 자리에서 일어나 레오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런데 그때 맞은편 검은 차창 위로 한 인간의 모습이 보였다. 무릎을 꿇지도, 두 손을 비비지도 않는 …… 똑바로 선 인간. p.832





[김민혜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아트인사이트 (ART insight)
E-Mail : artinsight@naver.com    |    등록번호 : 경기 자 60044
Copyright ⓒ 2013-2019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