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보이는 것을 믿을 수 있나요?

전시 '피카소와 큐비즘' 리뷰
글 입력 2019.02.07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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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와 큐비즘



거울의 발명과 함께 비로소 사람은 자기 자신의 모습을 선명하게 바라보게 되었다. 하지만 거울 앞에 서서 볼 수 있는 자기 자신은 극히 일부다. 옆모습, 뒷모습,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 아래에서 올려다 본 모습 등등 같은 거울도 어느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나는 다른 모습이 된다. 게다가 그건 내가 바라보는 나의 모습일 뿐, 남이 바라보는 모습과는 또 다르다. 거울이 발명되며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한층 더 분명히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지만 동시에 우리가 정말로 어떤 모습인지 파악하는 문제는 더 복잡해졌다. 자기 모습을 물웅덩이 같은 것을 통해 희미하게만 볼 수 있을 때는 없던, 오히려 선명하게 볼 수 있기에 생기는 문제다.


02_파블로 피카소_르 비유 마르크 술병.jpg
Pablo Picasso, Le Vieux Marc, c.1914
© 2018 – Succession Pablo Picasso – SACK (Korea)


'피카소와 큐비즘' 전시를 보며 거울의 발명과 입체주의가 탄생한 20세기 초의 상황이 비슷한 맥락에 있다고 느꼈다. 20세기를 전후하며 세계는 급변했다. 기술의 발전은 이전까지 없던 수많은 지식을 가져다 주었다. 세계 규모의 전쟁과 제국주의 국가들의 등장은 당시 유럽인들의 세계를 확장했다. 불가능하던 많은 것을 가능케 하며 삶의 질이 향상된 부분도 있지만 동시에 삶은 더 복잡해졌다.

오늘 보고 있는 것이 내일이면 완전히 다른 것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의심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입체주의가 탄생한 바탕도 여기에 있다. 사진과 영상기술이 발달하며 눈에 보이는 것을 기록하기가 쉬워지자 이전까지 회화가 담당하던 기능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것을 의심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 보이는 것 너머에 있는 본질을 그리고자 했던 당시 화가들의 변화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거울을 보기 시작한 사람들이 거울로 다른 각도에서 본 자신을 보고 싶어하고, 남이 보는 모습과 거울 속 자신이 얼마나 같은지 알고 싶어하듯 말이다.


10_페르낭 레제_거울 앞의 여인.jpg
Fernand Léger, Femme au miroir, 1920
© Musée d'art moderne de la Ville de Paris


이토록 혼란스러운 시대에 탄생한 입체주의니, 그 작품들을 보며 난해함을 느끼는 것도 당연하다. 예를 들어 페르낭 레제의 '거울 앞의 여인'은 제목이 무색하게 그림 속에서 거울이나 여인은 흔적만 겨우 찾아볼 수 있다. 그림은 거울과 여인을 분해해 그것들을 이루는 요소를 나열한 것 같기도 하다. 제목을 보지 않으면 무엇을 표현한 건지 짐작하기 힘든 입체주의 작품들은 사물을 그 사물이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하게 된다.

그래서일까, 입체주의 회화에는 당시 화가들의 두려움과 혼란, 설렘, 낯섦 등 복잡다단한 감정이 들어있다. 입체파 탄생의 초석을 마련한 세잔의 작품부터 시간 순서대로 차례차례 전시를 보면 그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눈으로 볼 수 있는 회화의 형태로 그려내느라 했을 고뇌를 볼 수 있다. 피카소와 브라크를 중심으로 엄격하고 분석적이던 그림은 입체파 후기에 접어들수록 형태와 색이 자유로워진다. 그러다 마지막 부분에서 레제의 초대형 그림, 튈르리 살롱전 장식화를 마주한 순간은 오늘날 점 하나, 면 하나로 표현되는 현대미술의 시작점에 선 것 같았다.

사물의 본질을 알기 위해 집요하게 분석하고 분류한 끝에는 결국 극도로 추상적인 형태만이 남았다. 오늘날 의미를 파악하기 힘든 현대미술이 오히려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것을 경계하고 대상을 더욱 분명하게 알기 위해 파고 든 결과라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07_로베르 들로네_리듬 no1 튈르리 살롱전 장식화.jpg
Robert Delaunay, Rythme n°1
décoration pour le Salon des Tuileries, 1938
© Musée d'art moderne de la Ville de Paris


입체주의는 그 파격과 새로움에 비해 빠르게 소멸한 사조다. 고전주의나 인상주의와 달리 입체주의는 30여년 남짓 이어졌을 뿐이다. 입체주의가 빨리 사라진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표현하기에 회화보다 효과적인 기술이 많아졌기 때문이 아닐까. 예술은 그렇게 변해 간다. 이제 우리는 보이는 것을 의심하는 게 당연해졌다.  형태는 사라지고 의미만이 남은 오늘날의 현대미술은 회화가 '보이는 것'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왔는지 일깨워준다. 입체주의가 탄생하는 데 영향을 준 영상과 사진도 보이는 것의 단순한 기록을 넘어서 해석이 필요한 분야가 된 지 오래다.

세상은 갈수록 더 복잡해진다. 인터넷이 제2의 현실로 자리잡으며 우리가 존재하는 세상의 층위는 더욱 다양해졌다. 보이는 것을 조작하기가 더 쉬워지면서 우리는 말 그대로 눈에 보이는 것을 곧이 곧대로 믿기 힘든 세상을 살아간다. 그 속에서 우리는 더 '입체적인' 시각을 갖기를 요구받는다. 시대 변화에 발맞춰현대미술 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은 주어진 한계를 넘어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그 시작점에 입체주의가 있다. 입체주의는 결국 한가지 질문에서 출발한다.

우리가 보는 이 세상을 믿을 수 있는가. 이 세상의 진실은 무엇이고, 그 속에 있는 나는 누구인가.

모든 예술의 밑바탕에 자리한 이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볼 수 없음'이 문제가 되는 게 아니라 너무 많은 것을 보기에 '제대로 보는 것'이 문제가 되는 세상이다. 100여년 전 대상을 해체하고 분류하며 파악하고자 했던 본질과 정체성의 문제는 아직도 우리에게 숙제고,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





피카소와 큐비즘
-파리시립미술관 소장 걸작선-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1층

기간: 2018.12.28(금)~2019.3.31(일)

관람시간: 2월까지-11:00~19:00, 3월부터-11:00~20:00

작품대여미술관: 프랑스 파리 시립미술관, 국립 이스라엘

전시작품 수: 진품유화 90여점(20여 작가)미술관

주최: 서울센터뮤지엄, 뉴스웍스

미디어 후원: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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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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