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위화가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

소설가 '위화'의 읽기엔 특별함이 있다
글 입력 2019.02.03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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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

소설가 '위화'의 읽기엔 특별함이 있다





J.R.R. 톨킨은 "방황한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모두 길을 잃은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난 겁이 많은 사람이라, '헤맨다'라는 말을 들으면 '길을 잃는다'라는 이미지부터 떠올린다. 난관에 부딪치는 순간 돌아갈 방법도, 빠져나갈 출구도 보이지 않는, 깊은 수렁에 빠진 듯한 기분을 느낀다. 막막하고 두렵다. 그대로 주저앉아 버리고만 싶다. 하지만 앞서 그 길을 걸어간 누군가가 '나 역시 비슷한 일을 겪었다'라며 손을 내밀면, 놀랍게도 마음은 차분해진다. 길은 있구나, 나에게만 벌어지는 일은 아니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 한 번 일어설 수 있게 된다.


이번에 읽은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이 내겐 바로 그런 책이었다.




위화의 '읽기'와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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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Axt 13호 (은행나무 출판사)


책의 저자는 위화다. 위화는 중국 문학에 발을 디딜 때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이름 중 하나일 것이다. 일본에 무라카미 하루키가 있다면, 중국에는 위화가 있다고 해도 좋다. 모옌이 노벨 문학상을 받기 전까지는, 중국 내에서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나온다면 모옌 아니면 위화일 것이라는 얘기가 있었다. 그 정도로 그는 중국 내에서 영향력이 큰 작가이다. <인생>, <허삼관 매혈기>, <제7일> 등을 대표작으로 하는데, 그중 <인생>은 장예모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졌으며, <허삼관 매혈기>는 국내에서도 하정우에 의해 <허삼관>이라는 이름으로 영화화된 바가 있다.

이 책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은 위화가 말하는 '쓰기'와 '읽기'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에세이다. 그가 독자들을 대상으로 세계 각지에서 강의하고 이야기한 것들을 엮었다. 작가가 말하는 작가 이야기는 언제나 재미있다. 작가들의 세계는 베일에 가려진 듯 미스터리하다. 우리가 읽는 책은 그들이 홀로 치른 싸움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고독과 싸우고, 다른 이들의 책과 싸우고, 자기 자신과 싸우고... 그 싸움이 도대체 어떻게 벌어지는지, 우리는 늘 궁금하다. 싸움 얘기만큼 흥미진진한 것도 없다.

여기에 위화 특유의 시니컬한 농담까지 더해지니 읽다 보면 웃음이 쿡쿡 나온다. '쓰기'와 '읽기'에 관심이 별로 없는 독자들이라도 이 책만큼은 쉽게 몰입할 수 있을 것이다. 타고난 이야기꾼인 위화의 입담에 매료되지 않을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읽음으로써 나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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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 (1994, 장예모 감독)


그의 작품들이 영화화가 되고, 대중적인 인기를 끄는 이유는, '이야기의 힘' 덕분일 것이다. 그의 소설은 탄탄한 서사와 절묘하고 분명한 캐릭터, 그리고 유머를 특징으로 한다. 익살과 해학은 그의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다. 서민들의 고난 가득한 삶을 묘사하면서도 그는 웃음기를 잃지 않는다. 그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파란만장한 일들을 겪는다. 계급이 뒤바뀌고, 전쟁에 참여하고, 피를 팔기 위해 오줌을 참고, 이승과 저승도 오간다.

방대한 양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기 위해선, 그가 젊은 시절 다양한 경험을 하고, 많은 책을 읽었으리라 추측할 수 있겠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았다. 작가가 되기 전, 위화는 치과의사였다. 국가에서 정해준 직업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소설을 읽을 수 없었다. 문화대혁명이라는 그가 성장한 시대에선 마오쩌둥과 루쉰 외에는 읽기가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는 '쓰기' 시작한 동시에 '읽기'를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위화는 꼭 천재처럼 보이기도 한다. 책이 없는 시대에 성장해서 대문호가 되었다니 말이다. 하지만 그 역시 글쓰기의 감옥에서 앓고, 고민하던 시절이 있었다. 온점은 언제 찍어야 하는 것인지, 문단은 어떻게 나누는 것이지부터 시작하여 어떻게 글을 구성하고 감정묘사를 해야만 하는지, 그는 아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책을 읽어나가며 동시에 쓰는 방법을 배워나갔다. 그 과정은 치열하고 열정적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라는 대문호의 작법에 빠져들어 흉내 내다, 헤어 나올 수 없는 늪에 빠지고, 그때 그에게 동아줄처럼 카프카가 나타난다.

이런 식으로 위화는 작가가 된 이후에도 끊임없이 '읽기'를 통해 배우고 나아간다. 읽었기에 쓸 수 있었고, 써야 했기에 읽어야만 했다.


제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함정에 빠져

큰 소리로 구해달라고 외치고 있을 때,

마침 카프카가 길을 가다가

제가 외치는 소리를 듣고는

다가와 저를 함정에서 끄집어내주었습니다.


-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 中





위대한 작가가 되는 법



위화.jpg

▲ 위화의 소설들 (인생, 허삼관 매혈기, 제7일)



위화는 내게 대문호, 타고난 이야기꾼의 이미지가 강한 작가였다. 작가로서의 '재능'을 타고난 사람 말이다. 하지만 그 역시 아주 기초부터 헤매고 어려움을 겪었다는 사실, 그리고 끊임없이 방황하고 장애물에 부딪쳤다는 사실을 듣고 나니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최근 재능이 없는 것만 같다는 생각에 절망하고 좌절하는 중이었다. 생각만큼 글이 잘 써지질 않고, 원하는 지점까지 나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다른 사람들은 뚝딱뚝딱 써내는 글을 나 혼자 끙끙대며 붙들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지만 위화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항상 어떻게 해야

유명 작가가 될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저는 엉덩이가 의자와 완전히 친해져야

가능하다고 대답합니다.


한 번 자리에 앉으면

장시간 그대로 있어야 하는 겁니다.




글쓰기에는 끊임없이

앞을 막는 장애물이 나타납니다.


장애물이 눈앞에 있을 때는

아주 거대하게 느껴지지만,


이를 피하거나 넘어서고 나면

갑자기 그리 거대하지 않게 느껴지고,

그저 종이호랑이에 불과함을 알게 됩니다.



나만 힘든 게 아니라는 사실은 내게 큰 위안이 되었다. 거장이 된 작가 역시 처음은 서툴고 어설펐다는 것, 고민하고 방황했다는 사실에 크게 안심했다. 카프카가 그를 늪에서 끄집어내주었듯, 위화는 나를 토닥이고 일으켜 세워주었다. 누구나 겪는 일이라고. 버티고 극복해야 한다고. 위대한 작가를 만드는 건 재능이 아닌 엉덩이라고 말이다.


*


한 권의 좋은 책은 한 명의 좋은 스승을 만나는 일과 같다는 말을 이 책을 읽으며 다시 되새겼다. 소설가 장강명의 추천사가 이 책을 읽은 뒤의 내 마음을 그대로 대변하는 듯하다.



책과 점점 멀어지는 시대이다.

이럴 때 읽는 행위란 그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이야기해준 위화에게 위안을 많이 받았다.


아, 그래. 책을 읽는다는 게 이런 거였지.


- 장강명 (소설가)



에세이란 단지 생각을 풀어놓은 글이 아니다. 에세이에는 작가의 취향, 생각, 가치관, 역사 등 그를 이루는 모든 것들이 담겨있다. 그래서 에세이를 잘 쓴다는 건, 문장이 매끄럽고 아름답다는 의미가 아니다. 잘 쓴 에세이란 글쓴이의 세계를 매력적으로 느껴지게 하고, 그래서 책을 덮고 나면 그의 창작물을 궁금하게 만드는 글이다. 이런 생각과 취향으로 쌓아올린 성에서 살고 있는 작가가 만들어낸 세계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은 참 잘 쓴 에세이다. 책을 덮고 나면, 지금의 위화를 있게 한 그 모든 소설과 영화가 보고 싶고, 그의 소설들을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그만큼 그의 세계는 매력적이었다. 작품을 통해 상상한 모습과는 조금 달랐지만, 그렇기에 더욱 매료될 수 있었다. 다시 읽는 <인생>, <허삼관 매혈기>, <제7일>은 새롭게 다가올 것만 같다.

위화의 세계가 궁금한 사람들에게, 그리고 위대한 소설가를 만들어낸 예술과 신념이 궁금한 사람들에게 이 책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내가 그렇듯 혹은 위하가 그랬듯, 글쓰기의 감옥에서 헤매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필수로 읽어야 할 책이 될 것이다.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_표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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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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