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투쟁해야 비로소 살아지는 아이들: 가버나움 [영화]

부디 이들에게 축복을
글 입력 2019.01.28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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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해야 비로소 살아지는 아이들
영화 '가버나움'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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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소와 환멸. 10살이 갓 넘어 보이는 어린아이가 가지기엔 너무나 아픈 눈으로, 소년은 판사를 바라본다. 자인이 법정에 선 이유는 '부모님'을 '고소'했기 때문이다. 왜 부모님을 고소하게 되었느냐는 질문에, 소년은 대답한다.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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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가버나움]은 레바논 최초로 아카데미 시상식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 올랐으며, 나딘 라바키 감독은 '외국어 영화상 1차 후보'에 이름을 올린 최초의 아랍인 여성 감독이 되었다. 지난 칸 영화제에서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과 황금 종려상을 두고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였으며, '15분'이라는 역대 최장 시간의 기립 박수가 터져 나왔던 작품이다.


전 세계를 울린 미친 걸작이라는 수식어를 단 이 영화, [가버나움].


무엇이 그토록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 것일까?


*


[가버나움]은 결코 편안하고 마음을 치유해주는 종류의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상처를 벌려 우리에게 그들의 비극과 마주하게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 영화를 봐야만 한다. 이 영화에 쓰인 당신의 2시간은 결코 아깝지 않을 것이다. [가버나움]은 벌써부터 올해의 가장 잘한 일 리스트에 이름을 올릴, 볼까 말까 망설였던 몇 시간 전의 자기 자신을 꾸짖고 싶어질, 그런 영화다.


영화는 자인이 부모님을 고발하는 법정씬으로 시작한다. 자인의 부모에겐 (영화를 보는 내내 아이의 수를 헤아려보지 않는 이상) 몇 명을 낳은 건지 알기 힘들 정도로 많은 아이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자인이다. 자인은 여동생 사하르를 끔찍하게 아끼는 듬직한 오빠이자, 자신의 몸보다 큰 가스통을 배달하는 어린 노동자다. 하지만 동생이 생리를 시작하고, 자인은 그 사실을 필사적으로 감춰보지만 결국 사하르는 아빠뻘 되는 사내와 팔려가듯 결혼을 하게 된다. 이게 모두 가족을 위해서라는 자인의 부모. 결국 소년은 집을 나선다.


하지만 자인은 너무 어리다.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사정을 해보지만 도무지 일자리는 구해지지 않는다. 그런 방황하는 아이를 거두는 것은, 자인과 처지가 별다를 것이 없는 에티오피아 출신의 난민, 라힐이다. 자인은 라힐이 일을 나간 사이 그녀의 아기 요나스를 돌봐주며 함께 살게 된다. 하지만 불법 체류자인 라힐이 위조 신분증 문제로 체포되고... 돌아오지 않는 라힐을 대신해 요나스의 보모가 된 자인. 지금부터 생존은 철저한 그의 몫이 된다. 자인은 과연 잘 살아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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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신매매 수준의 조혼, 아동 학대, 미혼모, 난민, 난민 사업, 불법 체류 등 가버나움은 묵직한 여러 주제들을 정교하게 엮어가며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지루할 것 같지만 단 1초도 지루하지 않다. 대신 우리는 눈물& 죄의식과 사투해야 한다. 극장의 편안한 좌석에 앉아 영화를 관람하고 있다는 사실마저 미치도록 부끄러워질 것이다. 하지만 나딘 라바키 감독은 말한다.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미안하고 부끄러워지는 마음, 그런 마음이 우리를 변화시킨다고.



나는 인간으로서 큰 변화를 겪었다.


모든 것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고,

죄의식이 떠나질 않았다.


영화를 본 여러분들도 그럴 것이다.


이런 경험을 하게 되면

더 이상 평범한 삶을

살 자격이 없는 것 같아지고

행복한 삶을 누릴 권리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 마음이 변화를 만들어낸다.


- 나딘 라바키 감독의 인터뷰 中



레바논은 25년에 걸친 내전으로 인해 15만에서 23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레바논 전체 인구의 1/4인 백만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2018년 10월 기준 유엔 난민기구에 집계에 따르면, 레바논은 시리아 난민 100만 명 이상을 수용하고 있다. 레바논 인구 4명 가운데 1명이 난민이다. 나딘 라바키 감독은 영화를 만들기 전 레바논 거리의 많은 아이들을 인터뷰했다. 그 끝엔 항상 "넌 사는 게 행복하니?"라고 물었는데, 대부분의 아이들은 "행복하지 않아요. 죽었으면 좋겠어요. 전 제가 왜 이곳에 있는지 모르겠어요. 좋은 말도 듣지 못하고, 배고파도 먹지도 못하는데."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가버나움] 속 아이들은 생존을 위해 투쟁한다. 지독하고 치열하다. 그 어려운 감정들을 어린 배우들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게 소화해낼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실제 자신의 삶과 맞닿아있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인’을 연기한 자인 알 라피아는 생계를 위해 여러 일을 전전하던 시리아 난민으로 영화보다 더 나쁜 상황에 처해있던 소년이었으며, ‘요나스’를 연기한 트레저 역시 레바논의 불법 체류자의 아이이며, 사하르 역시 거리에서 껌을 팔던 소녀였다고 한다.


외국의 몇 평론가들이 [가버나움]을 가리켜 '불행 포르노', '억지로 눈물을 짜내는 신파 영화'라 비판하여 논란이 된 일이 있었다. 이 영화 속 비극을 그저 전시된 불행으로만 느꼈다면, 그건 영화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관람자가 이 영화를 받아들인 태도의 문제일 것이다. [가버나움]은 관객들을 향해 자극적인 장면을 보여주지도, 가르치려 들지도 않는다. 그저 삶을 보여준다. 그런데 그 삶이, 누군가에겐 극적인 불행으로 비칠 수 있을 정도로, 아프고 처절할 뿐이다. 그 불행이 누군가에겐 실재하는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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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버나움]을 보고 나면, 모두가 이 영화의 홍보대사가 된다는 말을 나는 제대로 실감했다. 영화가 끝난 뒤 눈물로 건조해진 얼굴을 문지르며, 화가 났다. 많지 않은 상영관 수에, 영화를 볼까 말까 망설였던 몇 시간 전의 나에게, 그리고 영화 속 그들의 삶이 어디선가 계속되고 있으리라는 생각에 화가 치밀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넘어서, 이 영화를 사람들이 안 본다면 화가 날 것 같은 그런 감정까지 들 정도였다.


어떻게 하면 이 영화를 조금 더 효과적으로 영업할 수 있을까 5시간째 이 글을 붙들고 있지만, 뾰족한 수가 떠오르질 않는다. 어떤 설명을 덧붙여도, 직접 이 영화를 보는 것보다 생생히 그 감정을 느낄 방법이 없다는 결론에만 도달할 뿐이다.


다들 이 영화를 보시라. 기꺼이 126분을 투자하시라.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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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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