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워라밸의 시대, 잘 논다는 것 : 뉴필로소퍼 4호 [도서]

글 입력 2019.01.27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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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필로소퍼

NewPhilosopher 4호

워라밸의 시대, 잘 논다는 것



1년간의 휴학생활이 끝나간다. 짐짓 빠르게 흘러간 1년을 간단히 평가하자면 ‘잘 놀았다-’라고 말할 수 있겠다. 짧게나마 여행을 떠나고, 돈을 모아 공연들을 원 없이 보러 다니고, 바빠서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과 간만에 만나 놀기도, 밤을 새기도 했다. 두 번 다시없을 휴학 생활이지 않은가. 마음을 비우고 즐겁게 놀다 보니 유난히 빠르게 지나간 한 해였다.


그렇다고 마냥 놀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찾아오는 취업에 대한 불안감에 나름의 준비를 하기도 했다. 내 한량 같은 기질은 여기서도 드러나는데, ‘하고 싶은 일을 찾자’는 취지에서 정말 ‘하고 싶은 일’들을 했다. 그 와중에 3달간 수강했던 취업 관련 교육에서 사귄 친구들과 몇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주말이 되면 짬을 내 열정적으로 놀고 있으니, 한 해 동안 스트레스 없이 얼마나 열심히 ‘놀았는지’ 알 수 있겠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복학을 앞두고 있고, 두 학기만 지나면 영원할 것 같던 대학생활도 끝이 난다. 어쩔 수 없이 백수가 된 나는 취업을 준비해야할 테고, 노느라 바빴던 작년 한 해를 후회할지도 모른다. 원하는 진로에 대해서는 다행히 어느 정도 생각해보았지만 취업난 속에서 앞으로 준비해야 할 것들이 산더미일 테다. 복학이 눈앞에 다가오니 이제야 조급해지나보다. 더 이상 노는 것도 즐겁지 않은 것 같다. 이러는 와중에도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취업 하면 언제 놀지? 라는 게 문제라고나 할까.


지금은 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의 시대라고 한다. 월세, 생활비를 위해 눈 코 뜰 새 없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취업의 기쁨도 잠시 반복되는 야근에 지쳐가는 친구들을 보고 있자면 ‘워라밸’이라는 단어는 사치스럽게 보일 뿐이다. ‘취업하면 언제 놀지?’라는 나의 물음이 어쩌면 당연한 의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빡빡한 현실에서 논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워라밸의 시대는 왜 우리에게 오게 되었을까?




뉴필로소퍼 4호 : 워라밸의 시대, 잘 논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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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철학한다.’는 슬로건의 잡지 뉴필로소퍼 4호에서는 워라밸의 시대와 잘 논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가볍고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던 예상과 달리 ‘놀이, 게임, 스포츠’에 대한 학문적이고 철학적인 이야기가 가득하다.



현대인에게 놀이라는 무엇일까. 잠시잠깐 쉼을 통해 새 힘을 얻는, 단지 부차적인 일일까. 워라밸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놀이는 아이들에게 있어서는 삶의 전부가 되어야 하며, 어른들에게도 결코 소홀하게 다뤄져서는 안 되는 주제이다. “놀고 싶은 욕구는 근본적으로 존재의 욕구”라고 했던 장 폴 사르트르의 말이 그 명확한 뒷받침이라고 할 수 있다. 《뉴필로소퍼》 4호는 ‘워라밸의 시대, 잘 논다는 것’이라는 주제를 통해 우리 사회의 입체적인 모습과 의미를 짚어낸다. 놀이를 철학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삶의 미덕과 균형이 무엇인지 만나보자.


- 출판사 서평


 

사소한 물건인 듯 보이지만 전 세계를 열광시키는 축구공, 야구공, 농구공 하나를 떠올려보면 심각한 동시에 사소하고, 중요한 동시에 하찮으며, 궁극적 가치가 되는 동시에 아무런 가치를 지니고 있지 않은 놀이와 게임, 스포츠의 함의를 떠올려볼 수가 있다. 덕분에 뜻하지 않게 지금껏 놀아오던, 앞으로도 놀아야할 나의 일상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었다.




'일'하는 우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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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놀이 사이에 놓인 경계선 때문에 우리는 철학적으로 빈곤해진다. 특히 일이 놀이에 봉사한다거나 놀이가 일에 봉사한다고 생각할 때 더욱 그렇다. ‘주말에 놀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은 일을 싫어하는 법을 배운다.


- 마리아나 알레산드리



필자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 처음 다녔던 영어학원에서 뭣도 모르고 즐겁게 해내던 숙제를 ‘일’로 여긴 뒤부터 하지 않기 시작했다. 좋아해서 그리던 그림은 경쟁의 도구가 된 이후부터 그리기 싫어졌고, 좋아하던 글도 억지로 쓰려니 써지지가 않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지 않은가, 놀이가 더 이상 놀이로 여겨지지 않을 때 즐거움이 사라진다.



생산적이고 유용한 일에 모든 시간을 바치는 삶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단지 성공하지 못할 경우 지치고 낙담한다는데 있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인생의 모든 경험이 오로지 수단으로 전락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살면 어떤 목적을 달성하는데 도움이 되는 순간에만 가치를 두게 된다. 결과적으로 끊임없이 현재로부터 멀어지고, 지금 서있는 곳에 온전히 존재하지 못하게 된다. 이런 사고방식에 갇히게 되면 아무리 빛나는 성취를 이룬다 해도 실제 목표를 달성한 ‘순간의 기쁨’만 짧게 느낄 수밖에 없다.


- 올리버 버크만



‘취업’이 가장 큰 관심사인 지금, 취업 그 이후의 삶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다. 아마 그 때가 되면 또 다른 목표를 정해 노력을 하고 있겠지. 그렇게 현재는 지워진다. 헬조선으로 명명된 지금 일과 삶의 균형을 유지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을 테지만, 우리는 이럴 때일수록 ‘유희’의 의미와 역할을 잊을 수가 없다.


워라밸을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일을 놀이처럼 여기며 일과 놀이의 경계를 지워내는 것이다. 그러나 그게 말처럼 쉬운가, 일은 여전히 ‘하기 싫은’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렇기에 우리는 적어도 시간이 날 때마다 놀아야 한다. 놀이와 여가는 ‘무목적’ 활동이고, 그 자체를 위한 활동이며,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끼기 위한 활동이다. 다시 말하자면 현재를 즐길 수 있도록 해주는 요소라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삶 자체를 위해 ‘유희’가 깃든 삶을 살아야한다. 철학적인 말주변이 없어 멋들어지게 설명을 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충만한 삶을 위해서는 ‘놀이’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만약 1년 내내 휴일이라면, 놀이는 일만큼 지겨워질 것이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


(필자는 1년 내내 놀 수 있을 것만 같아) 개인적으로는 공감할 수 없었지만, 어느 정도는 위로가 된 말이다. 게임만 하는 삶보다 자신이 뭔가 유용한 활동을 하고 있을 때 진정한 삶의 보람을 느낀다는 슈츠의 말처럼 우리는 타인을 위해, 성취감을 위해 아마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예정되지 않은 미래를 위해 고군분투하며 살아가기만 하는 것보단 때로는 삶 자체를 즐기는 것이 좋지 않을까.

*

'진지하고 충만한 삶을 만들어나가는 핵심 비결은 인생을 너무 진지하게 살려는 태도를 버리는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책 속의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삶'과 하루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일'의 균형을 맞추는 방법은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무언가에 즐겁게 몰두하는 것이다. 책을 덮은 순간부터 1년간의 휴학생활로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해낼 수 있었다는 점이 감사하게 여겨졌다. 물론 이 경험이 일로 이어진다면 어떻게 변화할지는 모르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일속에서 유희를 느끼는 방법을 알아챌 수 있었으니.

다분히 이상주의적이고 한량과 같은 내가 남들보다 덜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도 놀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나 보다. 내게 즐거움을 주는 원동력과 같은 존재는 무엇인가. ‘놀다’의 기준과 방법마저 개인마다 차이가 있을 테니, 삶을 위한 나의 ‘놀이’가 무엇인지 다시금 떠올려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김수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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