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결국 지는 게임을 하게 되어 있다 [영화]

담담하게 털어놓는 가족의 경제잔혹사, 버블 패밀리
글 입력 2019.01.24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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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블 패밀리, 필름 속 엄마, 아빠, 딸은 아주 부유한 삶을 살았다. 울산에서 아파트를 사고, 너무 잘 돼 서울로 이사를 오고, 부모님은 건축업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또 나라에서 개발할 거라고 하는 땅을 사서 땅값이 올라가 엄청난 돈을 손에 쥐었다. 그러다, 어김없이 산 아주 비싼 땅이 그린벨트로 지정되는 바람에 그들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영상에서는 아주 호화로운 유치원 생활과 가정을 보여주었다. 발레를 배우고, 집 안에서 동영상과 셀카를 찍고 그들은 부유함이 넘치는 집에서 살고 있었다. 사람들을 초대해서 집에서 생일 파티를 하는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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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세대지만, 나는 공감을 하지 못했다


나는 사실 영화를 보는 내내 화가 났다. 세상에는 그만큼의 행복도 부유함도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왜 당신들은 한때의 부를 누렸으면서도 지금 세상을 다 잃은 척 주저앉아있는 것인지. 그렇게 행복하고 부유하게 잘살았을 때가 있으면서, 왜 지나간 부에 아쉬워하는지. 지금 가난해지고, 빚이 생긴 게 억울하다면 원래부터 가난하게 살았던 사람들은 얼마나 억울할지 조금도 생각을 안 하는 것인가? 지독하게도 이기적으로 보였다. 마민지 감독이나, 그 엄마 아빠나 계속해서 땅을 사고팔아서 잘 되어 보려고 하는 그 모습에 화가 났다.

원래 있었던 것을 잃어버리는 것과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사람. 과연 누가 더 불행하고, 누가 더 슬프고 힘들까? 당신들은 적어도 가졌던 기억, 추억이라도 있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 그 추억에서마저 박탈감을 느끼는 것이다. 둘 다 비참하게 살 거라면, 차라리 과거라도 행복했던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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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취가 로망이다(?)

부모님을 답답하게 생각해서 마민지 감독은 집을 나와서 원룸을 얻어서 생활하게 된다. 윗집 화장실에서 나오는 물이 자기 집 천장에서 새어 나와 그걸 막는 장면. 그리고 마민지 감독은 집에 빚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혼자만의 삶을 포기하고 본가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면서 하는 말, "내 삶은 이제 끝났어."

나중에 <감독과의 대화>에서 진행자는 '자취에 대한 로망'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다른 분께서 "요즘 학생들에게 자취는 로망이 아니라 정말 필요한 수단"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에서 무척 큰 공감을 했다. 로망 따위가 아니다. 우리는 더는 좁은 집을 예쁘게 꾸밀 수가 없다. 그 집 속에서 공부하고 먹고 살기 너무너무 바쁘다. 굴러다니는 빨랫감, 설거지하지 않은 접시들, 다 먹지 못한 음식들이 썩어서 냄새가 진동한다. 실내장식을 사거나, 배치를 예쁘게 하는 등의 '로망'을 실현하기보다는 정말 현실적인 문제와 싸우기 바쁘다.

서울에 본가가 있는 사람들은 졸업하면 다들 본가로 돌아간다. 그리고 본가가 지방인 사람들은 차비 때문에 한 번씩 내려가기도 힘들다. 부모님이 보고 싶어도 보지를 못하는 것이다. 한번 올라오면, 모든 일을 다 처리하고 시간을 내어 고향으로 간다. 더는 로망 같은 게 없는 그런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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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들도 나름대로 노력한다


마민지 감독의 어머니는 돈을 어떻게서든 벌기 위해 부동산에서 중개업자로 일하고, 어디든 돌아다니며 홍보, 광고하는데, 아버지는 그렇지 않아 보였다. 딸이 '빚이 얼마큼 있느냐'고 물어보면, 그는 '네가 걱정할 필요 없다. 아빠가 알아서 할게'라고, 믿는 구석도 없으면서 안심시키려는 말을 했다. 아마 그도 자기가 할 수 있다고 믿음으로서 힘든 일에서 피하고 싶은 것일 테지.

그의 아버지를 보면서,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가 생각났다. 땅을 보고 말을 돌리던 그 표정도 너무 닮았다. 가정을 키우기엔 너무 무능력해서 할머니에게 경제적인 벌이를 맡기셨던 그 모습이 생각났다.

마민지 감독은 원룸을 구해서 나와 살 때까지도 부모님이 무슨 일을 하셨는지 관심이 없었다고 했다. 그러다 우연히 종로 지하철에서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고, '왜 아버지가 낮에 돌아다니는 거지?'라는 생각으로 시작해서 영화를 찍게 된 것이다. 사실은 아버지도 돈을 벌기 위해 열심히 일을 구하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영화 속에서는 몹시 한심하게 선풍기를 틀어두다가 낮잠을 자는 모습이 나오지만, 그도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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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떡할 거냐고 묻는 딸의 말에, '모르겠다'고 하거나, '네가 좋은 대로 하라'고 하는 엄마.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나는 계속 느꼈던 화가 났다가 사라졌다가, 동정심에 휩싸였다가 다시 화가 나곤 했다. 차라리 서울을 떠나, 시골로 가거나 지방으로 가도 될 텐데 그런 것은 아예 고려사항에 넣지 않는 점도 답답했다. 뭔가를 해야 하는데, 아무런 방법이 없다는 사실도 답답했고, 결국 끝까지 아무것도 해결되는 것이 없어서 짜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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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욕심


영화가 끝나고 한 시간 가량 진행된 <감독과의 대화>에서 마민지 감독은 그 모든 것이 자신의 욕심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그 말을 하는 모습은 절대 우울하거나 처절하거나 불행해 보이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그동안 났던 짜증과 화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영화만 보고, 마민지 감독이 세상에서 자기 가족의 삶이 제일 슬프고 힘들다고 한탄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는 그저, 그런 가족이 된 배경에는 우리나라의 잘못된 경제 정책이 있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 했고, 한 가정의 이야기를 한 것이었다. 놓쳐버린 부에 대해 아쉬움, 그리고 자기에게도 땅이 있다는 사실에서 느끼는 바보 같은 안도감, 그런 것에 관해 이야기를 했다.

관객들에게도 발언할 기회를 주었는데, 다른 사람들 역시 경제정책으로 인해 손해를 보고 괴롭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듣다 보니, 더는 '내가 더 불행해, 너희는 가지기라도 했었잖아'하는 생각이 사라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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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지는 게임을 하게 되어 있다


돈이 많은 사람이 더 이기게 되는, 결국엔 '지는 게임을 하게 되어 있다' 라고 말했다. 결국은 돈이 돈을 벌어들이고, 건물주가 누구보다도 잘 될 수밖에 없는 세상.

나 같은 평범한 소시민들은 늘 건물주를 욕을 했고, 누구보다 부러워했지만, 건물주들도 언젠가 무너져버릴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였다. 그들도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곳에서 집을 짓고 살고 있었다. 그들의 죄는 그저, 나라의 정책을 따른 죄밖에 없었다. 절대 그들은 가해자가 아니었다.

그 정도까지 생각이 이르니, "너희는 적어도 과거에 가지기라도 했잖아"라는 생각의 원천을 알게 되었다. '그들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었으니, 그들도 망해도 싸'라고, 적이 아닌 사람들을 적이라고 생각한 탓이었다. 그들도 그저 조금 잘살아 보려고 하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는데도, 부유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이유로 질투하고 경계한 탓이었다.

아마 영화만 보고 나갔다면 나의 부족함은 절대 알지 못하고, 원망만 하고 나갔을 거로 생각하니 감독과의 대화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들려준 것이 무척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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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도 명쾌한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어떻게 해야 모든 사람이 다 같이 잘 살 수 있는가에 대한 해결방안은 정말 없는 걸까. 인간이 사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집을 마련하려는 방법은 없는 걸까.

그동안 너무 집짓기에만 매달렸던 것 같다. 막상 그 집에서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는데, 우리가 아무리 고층 아파트를 짓고, 그 속에서 커뮤니티가 잘 되고 말고, 고층에는 주택이 있고 아래층엔 상가가 있는 주상 복합이라던가 그런 아무래도 쓸데없는 말 따위를 외쳐서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것은 건축학과 사람들이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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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블 패밀리. 경제 거품 속에서 살아났다가, 경제 거품으로 다시 져버린 가족에 관한 이야기였다. 독립영화는 처음이라, 그래픽도 별로고 사운드도 별로일 테고 이것저것 마음에 드는 점보다는 부족한 점이 많을 거로 생각했는데, 일반적인 상업영화랑은 다르게 신선한 소재부터 시작해서 어느 연기보다 뛰어났던 가족들의 진실함이 담긴 모습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감동'을 위한 스토리가 아닌, 현실 그대로를 보여주는 그 콘텐츠 자체가 신선했고 좋았다.

뭐든 한 가족이 잘 되고 망하고 그런 게, 절대 운이라거나 의지라거나, 선택에 의해서인 것만은 아니었다. 그리고 마냥 부자들을 원망하고 질투할 것만도 아니었다. 그들도 우리랑 똑같이 그냥 살아 움직이고, 감정을 갖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매일 고민하는 사람들이었다는 것. 매우 매우 추천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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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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