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어린아이들만 오기엔 너무 아쉬웠던 에바 알머슨전 [전시]

행복과, 일상과, 슬픔을 그림 속에 담다
글 입력 2019.01.23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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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세계는 무한한 자유의 공간입니다. 완벽히 나를 위한 공간입니다.


누군가에게 내가 무엇을 할지, 또 하지 않을지 설명하지 않아도 됩니다. 물론, 여기에는 다소 책임감이 따르는데, 저에게 그 책임감은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림』




아이와 함께 보기 좋은 전시?


에바 알머슨, preview를 쓸 때까지는 그녀의 이름을 처음 들어봤었다. 전시장을 집처럼 꾸몄다길래 어떨지 호기심 정도만 가졌을 뿐 사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서울로 올라오는 날, 인터넷에서 찾아본 후기에는 '아이들과 보기 좋은 전시'라는 평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후기를 본 사람들이 오는 건지, 내가 갔던 평일 점심시간에는 엄마와 아이 관객이 무척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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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겐 추억이 될 수 있을까? 사실 나는 남들에 비해 세상을 조금 늦게 깨달은 편이었다. 세상을 인식했을 무렵의 나는 무려 초등학교 6학년쯤이었고, 나는 이미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었고 눈이 나빠서 안경을 쓰고 있었다. 한 달에 한 번씩 생리를 하는 사람이었다. 세상을 알았을 때부터 사춘기 무렵이 시작되어버려 남들보다 인격, 자존감의 형성이 조금 느렸던 것 같다.

어쩌면 그래서 남들도 나와 같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을 데려오는 전시에, "저 아이들이 뭐가 아는 게 있을까?" 하는 회의감이 가장 많이 들었다. 사진으로 남기면 분명 좋은 추억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어린 시절 사진 속의 나를 봐도 왠지 다른 사람인 것만 같았다. 어쩌면 내가 주워온 사람일지도 모르고, 사고를 크게 당해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고는 했다.

어린아이들이 많은 장소를 가면 피로해지고, 아이들이 뛰어노는 게 정신 사납고 싫다고 생각했는데, 잃어버린 나의 유년시절의 기억을 가진 그들에 대한 질투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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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내부는 아이들이 좋아할 것처럼 꾸며져 있었다. 에바 알머슨이 말했듯, 그녀의 집처럼 따스한 색깔을 갖고 있었다. 그림 속 인물들은 비례를 전부 무시하는 모습이었다. 얼굴은 지나치게 컸고, 목은 또 그 무거운 얼굴을 떠받칠 것처럼 굵었고, 허리는 전혀 없었고, 허벅지와 종아리는 거의 차이가 없다시피 할 정도로 같은 굵기였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전혀 '외모지상주의'적이지 않은 그림이었다.


저에게 있어 그림이란, 이야기와 같습니다. 저는 나를 괴롭히는 두려움, 근심, 걱정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그들에게 이름을 지어주고는 그림 속에 가두어둡니다.

『유령 사냥』


그림은 에바 알머슨에게 행복을 담기도 하고, 일상을 담기도 하고, 무서운 것을 가둬두는 수단이었다. 에바는 그림 속에 행복했던 일상들을 담으면서 소중한 것들을 다시 한 번 관찰하고 살펴보았다. 너무 무서워질 때는 그림 속에 유령을 가두어서 벗어났다.

그림, 나도 꽤 많은 그림을 그렸지만, 화가들의 전시회를 볼 때마다 저마다의 그림이 그렇게 다른 의미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곤 한다.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림이라는 예술 행위를 한다고, 누군가는 그렇게 멋진 한 문장을 적을 것이다. 예술 행위를 통해 감정을 승화시키는 방법.

하지만 나는 그런 멋진 문장보다는, 자신의 감정에 묻히는 것을 피하고자 그런 방법을 하나쯤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인생이 편해질 것인가를 고민해보았다. 단순한 기분 전환이 아니라, 우울함과 자괴감에 휩쓸리지 않기 위한 특별한 '취미'. 아마 에바 알머슨에게 그림은 취미라고 하기엔 너무 부족한 표현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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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바 알머슨의 그림에는 처음에는 가족과 동물들이 등장한다. 그녀의 그림에서 특이했던 점은 사람은 검은색의 명확한 테두리가 있는데, 동물이나 인형, 사물들에는 테두리가 없다는 점이다.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갈 누군가를 찾는다는 것, 그리고 함께 인생을 바꿀 계획을 세우는 것은 자신과의 특별한 관계가 우리를 어떻게 완벽하게 하는지, 어떻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하게 하며 어떻게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자극을 주는지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공모자』


사진을 찍을 수 없는 전시회장이었다. 그래서 사진 옆에 새겨진 글자 하나하나를 노트에 꾹꾹 눌러 담았다. 어느 하나 놓치고 싶지 않은 글귀들이었다. 에바가 삶을 바라보는 방식이 너무 아름다워서 배우고 싶었고, 그녀의 마음가짐 하나하나를 담아두고 싶었다.

그래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아이들이 그림만 보고, 엄마들은 그림을 추측만 하고 넘어가는 그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다.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는데, 관심사가 지나치게 빨리 흘러가 버리는 아이들 때문에 많은 사람이 놓칠 그 글자 하나하나가. 나만 보기 아쉬웠고, 더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새겨지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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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바 알머슨은 동생과도 아주 친했다. 그녀를 보면서 내 동생 생각도 많이 났다. 가장 친한 사람이 있다면, 하고 물어본다면 나는 어김없이 동생을 들 것이다. 우리는 술이나 커피 없이도 드러누워서 그날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남자친구와의 이야기를 하곤 한다.

때로 내가 책을 엎드려서 읽을 때 동생이 내 위에 누워서 인체공학적인 침대라고 하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 둘 다 대학에 갔지만, 가끔 동생이 서울의 내 집으로 올라와서 그동안 쌓였던 얘기를 털어놓다 보면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다. 아마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사람을 뽑으라면, 동생과 남자친구 두 사람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놀이동산을 좋아해.
놀이동산에 가면 소리도 마음껏 지르고 신나게 놀 수 있거든.
엄마와 아빠가 놀이동산에 데려다주면 좋겠다고 매일 생각했어.

『놀이동산에서』


내가 어릴 때 가장 좋아하던 만화책 <은혼>에서 백수 해결사 긴토끼라는 주인공이 있는데, 그 사람은 늘 '세상을 재미있게 사는 방법은 어린아이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라고 하곤 했다. 어린 마음으로, 어린 눈으로 세상을 보면 정말 뭐든 그렇게 재밌고 쉬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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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아주머니 몇 명은 에바 알머슨의 색채에 대해서, 비례에 대해서 토의를 했다. 표현 기법에 감탄하고, 그러데이션을 썼다는 말을 했다.

보이는 것을 보기는 쉽다. 하지만 그게 과연 우리의 삶에 적용 가능한 가르침이냐는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다. 그 그림 방식을 똑같이 따라 한다고 해서 에바 같은 유명한 화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전시회에서 비용을 지급하고 봐야 하는 것은 그런 쉽게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다. 안타까웠다.


용기라는 것은 고통스러울 것을 알면서도 바깥으로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당신은 거짓말로 모두를 속일 수 있지만, 자신은 거짓말을 하는 것을 아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진실을 말하세요.
그 과정은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이를 통해 진실한 자유를 느낄 수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황금 우리에서 나와서』


내 생각보다도 더 훌륭하고, 기대보다도 좋았던 전시였다.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살아가고, 어린아이의 눈으로 사물을 보고, 자신의 고통을 담는 법을 에바는 어떻게 이용했는지를 알았다. 그림이 어리게 생겨서 어린아이들과 보기 좋은 전시라는 평이 아주 많았지만, 또 그렇게 한정 짓기엔 너무나 볼거리도, 배울 거리도 많았던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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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그리는 화가 에바 알머슨
- Home by Eva Armisén -


일자 : 2018.12.07 ~ 2019.03.31

시간
11:00~19:00 (18:00 입장마감)

*
휴관일
12월31일(월) 1월28일(월)
2월25일(월) 3월25일(월)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5,6전시실

티켓가격
성인 15,000원
청소년 11,000원
어린이 9,000원

주최
㈜디커뮤니케이션, CMAY

관람연령
전체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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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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