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P사진전

찰나의 순간이 사진이 되어 내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글 입력 2019.01.20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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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주말 늦잠의 유혹을 뿌리치고 AP 사진전을 보러 세종미술관을 찾았다. 그날따라 안 따라주는 컨디션과 깜빡 잊고 안 챙겨온 카메라가 야속했지만, 이내 결심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내 몸이 허락해주는 만큼만 감상하고 오자고. 카메라가 아닌, 내 눈이 보고 느끼는 것에 의존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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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남긴 감정 : 에이피 사진전 – 너를 다시 볼 수 있을까.



사진전의 정식 명칭이다. 제목만 봐도 보도사진이 갖고 있는 편견을 깨 버리려는 의지가 보였다. 지극히 사실적인, 그래서 더욱 딱딱하게 느껴지는 보도사진을 통해 대중에게 친근한 접근을 시도하는 것. 이번 전시의 지향점이었다.


 


사진이 건네는 말에 귀 기울여 주세요.



우리가 마주하는 보도사진은 보통 사진만 봐도 기사 내용을 유추할 수 있을 정도로 직관적이고, 온기라곤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서늘하게 느껴진다. 마치 항상 백점만 맞을 만큼 똑똑하지만, 너무 똑똑해서 인간미가 느껴지지 않는 사람을 보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그 한 장의 사진을 찍기 위해서 사진사들이 바라보는 것은 비단 진실만이 아닌 빛의 흐름을 따라 펼쳐지는 사진 속 인물의 굴곡진 인생사다.


이 사진전은 그런 것들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추어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미처 들여다보지 못 했던 풍경에, 인물의 표정에, 그 안에 숨겨진 또 다른 진실에 귀 기울여 주세요.’




사진에 묻어 있는 온도


 

전시는 크게 6개의 파트로 나뉘며, 그 중 <너의 하루로 흘러가>, <내게 남긴 온도>, <네가 들려준 소리들> 3개의 테마를 통해 관람객들에게 보다 감정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파트마다 적혀 있는 감성적인 문구는 역사적 사건과 진실에 앞서 사진에 묻어 있는 온도를 기억해 주기를 권한다.

 


너의 하루로 흘러가.

안녕 너의 하루가 보여.

너의 하루가 흘러가고 있어.

난 너의 시간으로 섞이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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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돌 공장의 소년>



전시를 보며 찍은 얼마 안 되는 사진 중 하나이다. 내 두 눈 안에 오롯이 담겠다고 생각했는데, 이 사진은 도저히 안 찍을 수가 없었다.


생전 처음보는 아이. 이 아이는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 자신의 슬픈 눈과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도 못 한 채 계속 벽돌을 나르고 있을 테다. 공허한 눈에 마음을 빼앗겨 이 작품 앞에만 한참을 머물렀다. 아직도 지구 반대편에는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도 보장받지 못 한 채 살아가는 아이들이 많다는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너와 나의 시간이 섞이는 마법의 공간, 한 장의 사진




좋은 사진에는 하루를 찾아 떠돌았던 카메라의 눈꺼풀이 떨어져 있다. 어떤 하루는 오로지 빛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자신만의 시간여행을 다녀오곤 한다. 카메라는 숨을 쉬며 자신의 눈앞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있다. 사진에 담긴 소리들은 빛의 이름이 되어 이곳으로 떠내려 온 것이다.



각자의 시간이 공존하는 마법의 공간, 그게 바로 한 장의 사진이다. 이런 측면에서 사진은 소설과 비슷한 효력을 지닌다. 소설이 풀어낸 언어를 통해서 내가 몰랐던 다양한 인생에 대해서 알려준다면, 사진은 하나의 정지된 장면을 통해 압축된 인생을 들려준다. 내 마음을 울렸던 또 다른 사진들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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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 맨발의 미망인>



사진을 처음 봤을 땐 보랏빛 꽃의 향연이 참으로 몽환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은 이랬다.


힌두교 색채 축제인 ‘홀리’를 기념하는 축하 행사 중 한 힌두교 미망인이 보라색 색분과 꽃잎으로 가득한 축축한 바닥에 누워 있다. 남편이 죽은 후 애쉬람의 많은 미망인들은 불운을 가져온다는 이유로 가족들에 의해 추방당하기도 하고, 일부 여성들은 자발적으로 신이 존재한다고 믿는 마을로 이주하기도 한다. 축제에 맨발을 색깔로 물들이던 모습 그대로, 그 마른 발에 색분과 꽃잎을 묻혀 가며 말이다.  나의 느낌과 사진 속 진실은 엄연히 달랐다. 씁쓸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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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작은 마을에서의 점심>



보는 순간 감탄을 자아낸 사진이다. 뭐랄까, 신화 속 한 장면이 연상된다고 해야 할까? 사진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왼편의 여자아이. 아이는 손에 점심식사로 보이는 그릇을 쥐고 있고, 그 너머로 바깥의 햇살이 비추며 하나의 장관을 이루어 낸다. 잠시 눈을 돌려 뒤편의 어머니와 마주하면 어머니는 점심 식량으로 추정되는 양동이를 바라보며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다. 아마 먹을 것이 거의 없는 게 분명하다.


마지막으로 오른편의 아이를 보면 눈동자가 텅 비어 있다. 자신 몫의 음식이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게 분명한 공허함이다. 어머니의 어두운 표정은 자신보다도 큰 딸의 굶주린 배를 채워주지 못 했다는 자책감에서 비롯된 게 아니었을까. 사진 속 분위기와 대조적이어서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햇빛. 그 햇빛이 양동이를 비춰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감정이 동요했다. 변하지 않을 사진 속 진실과 마주한다는 것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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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소에서 만난 소녀와 소년>



이 사진을 보는 내내, 보호소와는 어울리지 않는 소녀의 모습에 고개를 기웃거렸다. 손톱의 앙증맞은 네일아트와 입고 있는 옷차림은 보호소와는 분명 거리가 멀었다. 아마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갑작스러운 상황의 변화 속에서 온 것이 아닐까 싶었다. 함께 앉아 있는 소년의 천진난만한 미소 속에는 아직 자신에게 다가올 미래를 잘 모르는 순수함이 남아있다. 두 아이의 해맑은 미소는 오래도록 지속될 수 있을끼.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 북한전



잘 지내? 그곳의 겨울은 너무 춥잖아. 라디소 속에도 푸른 눈이 쌓이고 사람들의 눈동자에도 푸른 눈이 얼어붙잖아. 잘 지내?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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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북한의 모습이고, 아래는 우리가 미처 몰랐던 북한의 숨겨진 모습이다. 조금은, 아니 솔직히 말하면 아주 많이 촌스럽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들의 삶 또한 우리와 별반 다를 게 없다. 퇴근길이면 만원버스에 몸을 맡기고 한참을 서서 집을 향한다.


뿐만 아니라 이번 사진전은 사랑하는 아이를 위해서 인형을 뽑아주고, 휴일이면 설레는 마음으로 놀이공원을 찾는 등 지극히 평범한 북한인들의 일상을 보여준다. 너무 당연한 건데도 알 기회가 없었기에 생경하게 느껴지는 아이러니함. 이에 다시금 섹션의 제목을 입에 올려보았다.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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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스퀘어 키스>


이 밖에도 <키워드로 보는 AP> 섹션에서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흔히 접해 온 ‘타임스퀘어 키스’ 같은 유명한 사진부터 시작해서 퀸, 비틀즈, 마돈나 등 당대 최고의 스타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까지 총 망라해 있어서 보는 재미를 더했다. 사실 보는 내내 느꼈는데 각각의 섹션의 경계가 딱히 의미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래서인지 각자의 사진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하나의 이야기를 형성해내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분명 존재했다. 200여 점이 넘는, 분명 적지 않은 작품 수임에도 기존의 대규모 전시들과는 다르게 하나의 층에서만 전시가 진행돼서 작품 사이의 간격이 매우 좁았다. 그래서인지 작품명이 바닥에 있는 경우도 허다했다. 사진을 한 번 보고, 다시 바닥을 한 번 보는 과정이 자꾸 반복되다 보니까 감상을 하는 데 있어 몰입도가 떨어지는 게 사실이었다. 또, 어떤 작품은 지나치게 위쪽에 걸려 있어서 감상을 하는 게 불편했는데, 이런 작품의 제목 또한 바닥에 표기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서 주위가 혼잡한 경우에는 사진을 한 번 보고, 제목을 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다음 번에는 작품 배열에 조금 더 신경썼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사진가는 무심한 바위 하나에서도 물이 마른 자리를 보며 신의 지문을 발견한다. 차분하고 조용하게 그는 검시관처럼 빛으로 그 지문을 뜰 것이다. 그들이 미처 이곳까지 데려오지 못했던 사물들 <풍경>은 거기서 여전히 현실일 것이지만, 여기서는 사진에 담긴 영원한 침묵으로 남아있다.


 

전반적으로는 꽤 만족스러운 전시였다. 한 시간 반의 짧은 시간동안 참 많은 사진들과 마주했는데, 이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수백가지 생각들과 마주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한동안 못 잊을 것 같은 파키스탄 벽돌공장 소년의 사진을 다시금 바라보며, 전시 기간 내에 한 번 더 가 볼 것을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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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사진전
- 너를 다시 볼 수 있을까 -


일자 : 2018.12.29 ~ 2019.03.03

시간
11:00~20:00 (19:00 입장마감)
휴관 없음

장소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1관

티켓가격
성인 13,000원
청소년 9,000원
어린이 7,000원

주최
동아일보사, ㈜메이크로드

관람연령
전체관람가







[유다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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