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를 ; 읽다] 편혜영 -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걸까.

우리는 우리가 가는 길을 알까_ 책 『죽은 자로 하여금』
글 입력 2019.01.14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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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_.jpg
 

비가 엄청나게 온 다음 날, 강물은 탁류가 되어 흐른다. 난 그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러다 이내 어딘가 보이지 않고, 덮인, 드러나지 않은 느낌에 께름칙해져 자리를 일어나곤 했다.


그 보이지 않는 강물을 왜 그렇게 하염없이 바라보았을까. 강물 안을 보고 싶어서였을까?


이 책을 읽고 문득 생각난 것 같다. 우리가 탁류 속에서 살고 있는 건 아닐까 라고. 그곳이 어디인지, 어디로 가는지, 가는 길이 맞긴 하는지. 보이지 않고 드러나지 않는 그 물속에서 몸을 맡기고 흘러가는 게 아닐까 하고.




드러나지 않고, 덮어져, 보이지 않는



죽은 자로 하여금.jpg
 

 

<죽은 이로 하여금>의 배경은 병원이다. 병원에서 비리 사건이 터지고 그 중심엔 주인공 무주가 있다.



만약에 간호사가 해파린을 잘못 주입했다고 쳐봐.

그런 일은 몇 번이나 저지른다고 해도 간호사는

조심성 없는 사람으로 보이는 게 다야.

그 때문에 누군가 죽었다고 해도 말이야.

그 간호사는 환자를 죽였기 때문이 아니라 근무 태도 불량이나 업무상 과실로 병원에서 쫓겨나. 그게 병원이야.


p.185



무주는 이석의 비리를 고발하는 사람이다. 곧 태어날 자신의 아이에게 떳떳한 아버지가 되고 싶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주고 싶다는 마음에서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선택을 한다.


하지만 그 이후, 그의 공로는 인정받기는커녕 내부고발자로 찍혀 직장 내에서 따돌림과 부서이동까지 당한다. 책을 읽어나갈수록 무주는 끔찍할 정도로 처절하고 비참하게 무너진다.


*


아니, 사실 무주는 잘못 알고 있었다. 그는 여태껏처럼 자신을 합리화하고 있었다. 그는 병원의 비리를 고발한 것이 아니라 병원의 체제 아래 비리를 고발한 것이다. 그의 고발은 병원의 기강을 다시금 견고하게 만들어주었다. 더 이상 불필요한 존재는 빼버리고 재정비하려는 병원의 체제를 말이다.


무주는 사무장이 꾸린 혁신위원회에 발탁되었었다. 병원을 새롭게 혁신해나갈 것을 찾아내라는 말에 이석의 비리 건을 찾아냈고 고민하다 그를 심판대로 올렸다.


실은 합리화하고, 이석을 고발함으로써 무주는 구성원에서 인정받고, 살아남고 싶었을 것이다. 무능함을 인증하느냐 이석을 비리로 고발하느냐 중 후자를 선택한 것이다. 그런 무주의 선택은 그가 말한 것처럼 정의감 있는 일이었을까?



나는 계속 양수씨라고 부를 작정이었어요.

언젠가는 왜 그러느냐고 물어볼 줄 알았죠.


그러면 어떤 사람은 부당한 일을 거절하기도 한다고 알려줄 생각이었어요.


p. 202



‘부당한 일을 거절하는 사람도 있다는’ 말은 무주의 합리화를 깨는 말이다.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이야, 내 잘못이 아니야, 잘못한 일이 맞긴 하잖아”라고 나를 비난해야 할 때도 다른 곳에서 비난거리를 찾았다.


합리화로 나에 대한 비난을 덮어버리는 일이 어쩌면 가장 쉬울지 모르겠다. 때론 인정하고 깨닫는 게 더 힘들 때가 있다. 무언가를 잃을 각오를 해야 할 경우도 많았다.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무주의 행동이 나에게 낯설지 않았고, 책을 읽고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죽은 자로 하여금>은 무주와 이석 중 누구의 선택이 옳고 그름에 초점 맞춰지지는 않는다. 자본주의도 비판의 대상이지만 그보다 무주라는 사람의 변화를 자세히 다룬다. 자본주의 체제 속 한 사람에게. 병원이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다는 병원의 썩은 체제와 무주가 뭐가 다르냐고.


내가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의 것을 빼앗게 만드는 게 자본주의라 합리화가 최선의 선택이라면, 그건 정말 날 위한 합리화가 맞을까? 그 속에 내가 존재하긴 하는 걸까 라고.


합리화를 함으로써 본질은 사라진다. 무엇을 하려는 하지 않으려는 자의식과 용기는 사라진다. 받아들임만 남을 뿐이다. 그건 나 자신이 살아있고 살아가는 게 맞는 걸까.




우리는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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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끝에 무주는 이런 이인시를 벗어나 서울로 간다.


모든 걸 잃었다고 할 수 있겠다. 마지막까지 붙잡았던 직장도, 옆에 있어 주던 아내도.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모든 것들이 떠나가고 무주 자신밖에 남지 않은 그곳에서 오히려 희망이 보였다.


서울로 떠나기 전 이인시를 보며 두려움과 무서움을 느꼈던 것처럼, 서울에서도 같은 감정을 느낀다. 그가 이인시로 이사 오기 전까지도 살았던 서울인데도 낯설게 보인다.


왜일까. 떨쳐 나왔을 때, 한걸음 떨어져 보았을 때 ‘내가 이런 곳에서 살았구나.’를 새삼 알게 된 것 같다. 내가 어떤 곳에 있으며, 그 속에서 어떻게,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었는지를 무주는 보지 않았을까.



화면은 고요히, 그러나 끊임없이 움직였다.

잔잔한데도 풍랑이 몰아치는 바다처럼 느껴졌다.

낙폭이 큰 파도가 자그맣고 연약한 아기집을 단숨에 쓸어버릴 것 같았다.


-


아이는 엄마와 함께 규칙적이고 힘차게 박동하고 있었다.

파도나 바람이 그렇게 하는 게 아니었다. 전적인 생의 의지로 뛰었다.


p. 50



이 책이 무엇이 ‘옳다’ ‘그르다’를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무주가 그 이후에 어떻게 행동했는지 말하지 않아도 이런 부분만으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앞으로의 무주와 무주의 가족의 희망으로 보고 싶다. 무주가 임신한 아내의 초음파 화면 속이 불안해 보임에도 검고 둥근 작은 점이 움직이는 것을 봤듯. 그런 세상이라도 쉼 없이 꿈틀대는 생명처럼.




작가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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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편혜영은 1972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와 한양대 국문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200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이슬털기』로 등단했으며, 소설집 『사육장 쪽으로』 『재와 빨강』 『홀』 등을 출간했다. 한국일보문학상, 이효석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작가 사진출처 : 블러썸크리에이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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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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