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예의를 지키며 이별하기 [기타]

추억 앞에서 비겁해지지 않는 법
글 입력 2019.01.07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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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의를 지키며 이별하기

- 추억 앞에서 비겁해지지 않는 법 -





우리는 많은 걸 욕하며 산다. 험담은 술만큼이나 사람들을 빠르게 단결시키고, 때로 우리는 같은 걸 좋아하는 것보다 같은 걸 싫어할 때 더 쉽게 친해진다. 레토르트 식품을 전자레인지에 돌리 듯 연예인, 친구, 동료, 옆자리의 사람들은 우리의 테이블 위로 올려지고 해체된다. 조리는 쉽고 맛도 괜찮고 뒤처리 역시 간단하다. 그래서 출출한 밤 냉동실을 뒤지듯 대화거리가 떨어진 사람들은 주변을 헤집는다. 먹잇감을 찾는 손은 포털 사이트의 메인, SNS, 직장, 학교를 지나 나중에는 기억을 헤집는다. 추억을 해체하면 거기엔 언제 씹어도 맛있는 간식들이 잔뜩이다. 옛 애인, 예전 직장, 옛 친구, 옛 아이돌, 옛 짝사랑.


나의 뒷담화 패턴에 대해 생각해봤다. 구남친을 비웃고, H를 비웃고, 엑소를 비웃고, 간호사들을 비웃고. 지금은 곁에 없지만 한때는 생각의 절반을 차지했던 것들이다. 지금은 자주 떠올리지 않지만 한때는 최선을 다했던 것들이다. 내가 선택했고, 사랑했고, 몰두했고, 좋아했던 것들이다. 그래서일까. 치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과 멀어졌다는 이유로 이제 와서 그것들이 사실은 아주 가치 없던 것인 양 군다는 게. 사실은 치열하게 사랑했으면서 그렇지 않은 척 한다는 게. 이제 와서 분별력이 생긴 척, 쿨한 척, 그렇게 솔직하지 못하다는 게 비겁하고 부끄럽다. 그리고 그 치졸함과 비겁함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사랑했던 것들을 헐뜯어 우습게 만들면 결국 과거의 나는 우스운 거나 좋아했던 사람이 된다. 과거의 그 시간들은 모두 낭비가 된다. 좋아서 했던 그 모든 행동들이 다 바보 같은 짓이 된다. 우리는 왜 굳이, 한때 아름다웠던 그 모든 추억을 스스로 파괴하고 폐허로 만드는가. 추억이라는 이름도 붙일 수 없게 초라한 모습으로.


나는 늘 많은 것들을 엄격한 잣대로 평가하며 산다. 사람들을 관찰하고 재단하고 비판하고 비난한다. 그런데 하다못해 한때 내가 사랑했던 것들까지 도마 위에 올려놓는다는 건, 어딘가 좀 슬프다. 헐뜯는 건 다른 것들로도 충분하지 않나. 굳이 그들까지 잔혹하게 해체한 뒤 확대경을 들이밀어야만 하나. 그래서 그들과 함께 했던 내 지난 시간들을 모두 우습게 만들어야만 하나. 그 시절의 내 마음, 결심, 그런 것들이 정말 그렇게 보잘것없었나. 한심했나. 그렇게 말해야만 하나. 그렇지 않은데. 그러고 싶지 않은데.


구남친과 연애를 했던 3년. 그가 어떤 사람이었든 당시의 내 눈에는 가장 멋지고 든든한 사람이었다. 내가 엄청나게 좋아했다. 너무 사랑해서 나답지 않은 짓도 많이 했다. 어리석은 짓들만 골라서 했다. 내 인생의 정답이 걔 손에 들리기라도 한 것처럼 매달리고 의존했다. 걔가 한 말들에 상처를 받은 것도, 걔가 한 행동을 곱씹으며 아파하는 것도 다 그만큼 사랑했기 때문이다. H랑 붙어 다녔던 1년도 마찬가지다. 그 애가 보여주는 새로운 세계가 너무 멋져서 눈이 휘둥그레진 채로 1년을 지냈다. 새로운 책, 새로운 영화, 새로운 생각들. 어쩌면 지금의 나는 걔가 토대를 닦아논 거나 다름없다. 엑소를 좋아했던 2년도 그렇다. 그들 때문에 난 새로운 종류의 행복을 느껴봤다. 이런 감정엔 뭐라 이름을 붙여야 하나 고민하기를 수 백 번. 흔히 하는 말로 도경수가 물만 마셔도 죽고 싶었다. 변백현이 숨만 쉬어도 어쩔 줄을 몰랐다. S 병원의 간호사라는 사실도 한때는 내 자부심이었다. 식당에서 남들 들으라는 듯 큰소리로 하는 일을 떠들기도 했고, 누군가를 도우면서 돈을 벌 수 있는 일은 세상에 우리 의료인 하나밖에 없을 거라고, 그런 말도 했다. 고맙다며 글썽이는 보호자의 품 속에서 삶의 이유를 찾기도 했다. 난 그곳에서 불행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왜 이젠 곁에 없는 것들을 굳이 꺼내 헐뜯는 걸까? 아마 그 뒤엔 많은 이유가 존재할 것이다. 이별의 타당성을 확립하려는 마음, 이별이 옳은 선택이었다는 재확인, 혹은 신 포도, 자기 보호, 아니면 너무 사랑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갖게 된 기억의 진열장을 올려다보면 추억이라는 이름표를 단 구슬은 몇 개 남아있지 않다는 걸 발견하게 될 것이다. 추억이 없는 삶. 실망한 기억뿐인 삶. 잘못된 선택과 낭비한 시간들만이 존재하는 기억. 그 폐허를 만든 범인은 나를 떠난 이들이 아니다. 내가 사랑했던 것들이 못나서가 아니라 그렇게 규정한 나 자신이다. 그들의 얼굴 위로 지워지지 않을 낙인을 찍어버린 우리 자신이다.


추억을 추억으로 남기는 일. 헤집지 않는 일. 내가 떠나온 자리에 예의와 존중을 지키기로 한 일. 그게 내가 2018년에 한 가장 멋있는 반성이다. 새로운 해에는 다정한 얼굴들을 더 많이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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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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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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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꼬마천사
    • "이 또한 지나가리라"
      어느날 다윗왕이 세공인에게 반지를 만들라고 했다지요 반지를 만들면서 큰 승리를 거뒤 기쁨을 억제하지 못할 경우 자만하지 않고, 큰 절망에 빠졌을 때는 용기를 함께 줄수 있는 글귀를 세기게 했는데 그 글귀가 바로 "Soon it shall also come to pass" 였다고 하지요.

      눈을 조용히 감고 마음속으로 힘든 일들을 하나씩 내려놓아 보세요 ~~ ^^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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